어떤 이들은 이를 '아우라(aura)'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아우라가 없는 배우는 제아무리 출중한 미모와 실력을 갖췄다 해도 해도 정상급 연기자로 발돋움하기 어렵다. 그러고보면 '제 2의 OOO'를 표방하고 나온 신인 연기자들은 최악의 마케팅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재 활약하는 여배우 가운데 이미숙(49) 만한 '아우라'를 가진 여배우가 또 있을까.
그녀는 20대 데뷔 시절부터 늘 화제의 중심이었고, 뭇 남성의 연인이었다. 심지어 불혹의 나이도 훌쩍 지나 50대에 다다른 지금까지도, 그녀는 누군가의 아름다운 연인이며 여성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한국의 대표배우란 타이틀을 포기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여배우들이 결혼을 하고 나이가 들면 제 역할을 찾지 못하고 은막에서 사라지거나 여성 캐릭터를 포기하는데 말이다. 이들은 대개 이른바 억척스러운 아줌마 역할이나 인고의 세월을 보내는 엄마 역할의 일명 '생활 연기자'로 시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이었다.
이 같은 충무로의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그녀는 거의 독보적으로 어리고 예쁜 여배우들과 당당히 맞서고 있으며, 중년의 아름다움과 카리스마로 오히려 좌중을 압도한다.
또한 그녀는 섹시함과 청순함, 야성적 백치미와 도회적 지성미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카멜레온이다. 말 그대로 '천의 얼굴'로 다수의 명작을 남긴 대한민국 대표 여배우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여전히 많은 여배우들이 가장 좋아하고 닮고 싶은 여배우로 항상 그녀를 지목하고, 많은 영화 관계자들이 그녀의 행보를 주목한다. 물론 그녀가 구축한 독특하고 강인한 아우라 때문일 것이다.
▶1980년대 최고의 여배우, 이미숙 천하
이미숙은 여고 졸업반이던 1979년 미스롯데 선발대회에서 인기상을 수상하면서 연예계에 입문, 같은 해 '모모는 철부지'라는 영화로 충무로에 데뷔했다.
1984년 소외 계층의 비극적 삶을 다룬 영화 '고래사냥'에서 윤락가에 팔려온 벙어리 처녀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내면서 그 해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 기록과 함께 본격 스타대열에 합류한다.
이어, 전국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이산가족찾기 생방송 이후 만들어진, 남북전쟁으로 인해 서로 다른 삶을 살게 된 두 자매의 엇갈림을 통해 전쟁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영화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로 대종상과 백상예술대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까지 입증한다.
3S로 대표되는 정부의 문화정책에 발맞췄기 때문인지 1980년대 충무로 화두는 '섹시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미숙은 이 같은 시대적 분위기를 거부하지 않았다. 1986년, 에로티시즘과 해학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던 영화 '뽕'에서는 농염한 관능적 연기를 펼치는 팜파탈을 연기해 대중적 인기까지 갖춘 여배우로 부각된 것,
그녀의 1차 절정으로 1980년대식 감성을 자극했던 청춘멜로의 대표작 '겨울 나그네(1986)'를 꼽을 수 있다. 청순가련한 대학생으로 분하여 창부-여대생의 극단적인 이미지의 교차지점을 완벽하게 선보인 것. 이 작품은 흥행에서의 대성공은 물론 칸영화제에 출품될 정도로 작품성까지 인정받았고, 국내 각 영화제 여우주연상도 싹쓸이하기에 이른다.
말 그대로 영화계가 온통 '이미숙 천하'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20여 편의 영화를 통해 한 시대를 풍미하며 최고의 여배우로 군림했던 이미숙은 1987년 결혼과 함께, 대부분의 여배우들이 그러하듯 가정이란 울타리 속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아쉽게도 그녀 역시 선배들의 전철을 따라 대중들의 뇌리에서 사라지는 듯해 보였다.
▶결혼과 은퇴, 그리고 10년만의 화려한 컴백
그로부터 10년 뒤인 1998년, 드디어 이미숙이 복귀를 결심한다.
제목부터 파격적이었던 영화 '정사'를 통해 동생의 약혼자(이정재 분)와 금지된 사랑을 나누는 주부로, 차갑고 농염한 섹시함을 들고 나온 것. 이 영화는 '연상女-연하男'이란 새로운 문화 코드를 유행시켰고 그녀는 "역시 이미숙"이라는 찬사와 함께 화려하게 컴백에 성공했다.
나아가 이미숙은 이 영화를 통해 20대 여배우들의 전유물이던 한국 멜로영화 여자주인공의 정년을 대폭 연장시킨 주역이 됐다.
이어 한국 영화의 중흥기에 그녀는 당당한 주역으로 자리매김 한다. '단적비연수-은행나무침대 2'(2000) '베사메무쵸'(2001) '스캔들-조선남여상열지사'(2003) '뜨거운 것이 좋아'(2008) '여배우들'(2009) 등을 통해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나이가 들수록 더욱 섹시하고 매력적이라는 평을 듣는 여배우가 된다.
이렇게 긴 공백을 넘어 오랜 세월 동안 그녀가 은막의 주인공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또 당당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원천은 끊임없는 '노력'이었다. 본인 스스로도 "과거에 연연하거나, 노력하지 않으면 그만큼의 노화가 온다. 나는 미래를 준비하는 배우"라고 밝혔듯이 말이다,
그녀는 이른바 말더듬이다. 어린 시절, 고혈압으로 갑작스레 타계한 아버지를 부둥켜안고 오열하던 어머니를 지켜본 충격을 6년간 악몽으로 간직했던 탓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배우에게 '말더듬이'라는 핸디캡은 얼마나 치명적인가. 그녀에게 배우가 되어가는 과정은 언어적 결함을 극복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실제 평소에는 말을 너무 빨리해서 말을 더듬거나 발음이 제대로 안 되는 그녀가 공개석상이나 카메라 앞에서는 전혀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지 않은가. 끊임없는 노력 덕분이었다.
또한 그녀는 공부하는 여배우의 서막을 연 장본인이기도 하다. 결혼과 함께 활동을 중단한 시기에도 조용히 일본과 하와이 유학, 고려대 대학원 진학 등 끊임없이 공부하고 스스로를 연마하면서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
그래서 그녀는 지금까지도 완벽한 미모와 몸매를 유지하고 있으며, 어느새 30년 연기인생에 접어들었음에도 여전히 카메라 앞에서 그 불길 속에 몸 전체를 사르는 화신처럼 전부를 내던진다. 부단한 노력이 없이는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이제는 '배우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 됐다고 자신을 표현하는 그녀는 언젠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여배우가 '여자'로서의 느낌이 사라지면 그냥 배우일 뿐이에요. 그런데 전 여배우라는 호칭을 오래오래 듣고 싶어요. 그런 여성적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심어주는 것이 배우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90세까지 연기를 하고 싶은데…, 60세가 되더라도 베드신에 도전하고 싶어요."
그녀의 바람대로 그녀가 60대에 펼칠 베드신 연기가 너무도 기대된다.
그런 이미숙과 닮은꼴 배우는 사실 적지 않다. 아니 최근에 많아졌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다. 20대 톱스타를 거쳐 결혼으로 장기간 활동을 중단하고 다시 화려한 컴백, 그리고 제 2의 연기인생을 이어가는 여배우들 말이다.
그런데 그 많은 '제 2의 이미숙' 가운데 그녀보다 더 '정열적'이고 '호탕'한 여배우가 또 한 명 있으니 그가 바로 이미연(38)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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