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한국의 몇 안 되는 '연기되는 여배우' 가운데 한 사람이다. 연기생활이 어느새 20년에 이른 베테랑으로 최근엔 한층 성숙한 연기를 선보이며 대중의 사랑받고 있다. 물이 오를 만큼 오른 그녀의 연기를 보고 있는 영화 프로듀서라면 누구라도 '그녀와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 수 밖에 없다.
그녀는 연기에 대한 승부욕이 강하고 매사에 '정열적'이다. 직설적일 정도로 솔직하면서 선이 굵고 배포도 크다. 물론 작품에 있어서는 철저할 정도의 완벽주의를 추구한다.
보다 중요한 점은 자기관리에 철저한 부지런한 노력가라는 점이다. 이 점은 10년 선배 이미숙과 놀랄 만큼 흡사하다. 게다가 호탕한 웃음과 시원시원한 말투 사이에 타인에 대한 속 깊은 배려까지 갖추고 있다. 톱스타 대부분이 자신의 성에 고립된 '은둔형 외톨이'들이지만 그녀는 아주 드물게 '대중 친화적인' 여배우이다.
솔직히 필자는 그녀를 배우이자 한 인간으로 사랑한다. 때문에 이번 칼럼은 객관적일 수 없음을 미리 고백하면서 시작한다.
▶ 청순가련의 대명사로 하이틴 영화 돌풍의 주역!
1990년대 배우 이미연은 386세대의 로망으로 자리매김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1971년 9월 서울에서 태어난 이미연은 세화여고 2학년 때인 1987년 미스롯데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KBS 청춘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에 최수종, 손창민 등과 함께 출연하면서 주목받았다.
청초, 단아, 풋풋함…. 청순가련의 대명사로 혜성과 같이 등장한 그녀는 이어 한 남성 모델의 품 안에서 수줍은 듯 얼굴을 가리고 찍은 한편의 초콜릿 광고로 단번에 386세대 남성 팬들의 마음을 녹아내리게 만들었다. 그녀가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미소 한번 지으면 뭇 남성들은 사정없이 쓰러져 내렸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와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에 연속 출연하며 하이틴 스토리의 여주인공으로, 입시 지옥 속에서 고통 받는 고교생들을 대변하는 하이틴 영화 돌풍의 주역으로 자리 매김한다.
이후 톱스타로 영화와 CF를 오가며 종횡무진 활동하던 그녀는, 1993년 '결혼 이야기'라는 비디오용 영화를 찍으면서 상대 배우로 만난, 당시에는 무명이었던 연기자 김승우와 전격결혼을 발표, 대단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결혼이 여배우에게는 무덤이던 시절이었다. 23세의 한창 물오른 여배우가, 그것도 재벌이 아닌 무명의 남자 배우와 결혼을 한다니 그녀의 결혼은 당연히 무수한 화제와 논란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 결혼과 함께 찾아온 공백기와 우울증
1995년 한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한 이미연-김승우 커플. 이 두 배우는 모두 최정상 스타로 발돋움했지만 결혼생활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그러나 강하고 당당했던 이미연은 결혼을 약속한 김승우가 군대를 간 사이 영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 출연했다. 남편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왔지만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죽음을 선택하는 영선 역학이었는데 공허한 주부의 내면 연기를 훌륭히 소화해 평론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청순한 이미지의 하이틴 티를 벗고 진정한 연기파 배우로 거듭나는 계기를 마련한 것.
그럼에도 1995년 이미연은 군복무를 마친 김승우와 결혼하면서 일단 대중에게는 '유부녀'로 낙인이 찍히게 된다. 자연스레 출연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원치 않는 공백기를 갖게 된다.
그러는 사이 동료이자 남편이었던 김승우는 오히려 배우로서 승승장구한다, 그녀의 소외감은 배가 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지독한 우울증으로 이어졌다. 살아오면서 단 한 번의 좌절도 겪지 않은 그에게 이 공백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후에 그녀는 바로 이 때를 회상하며 "연기하지 않고 숨쉬는 1분 1초는 그야말로 힘겨움 그 자체였다"고 고백한 바 있다.
힘겨운 3년의 공백 이후, 그녀는 악바리 같은 근성으로 새롭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영화 '넘버 3(1997)', 이 코믹하고도 신랄한 현실 비판이 담겨있는 영화 속에서 시인을 꿈꾸는 조폭의 아내로 결국 불륜을 저지르는 '현지' 역을 맡아 귀여우면서도 약간 철없는 캐릭터를 훌륭하게 선보이며 다시 한국영화의 중요한 헤로인으로 올라서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이후 그녀는 '모텔선인장(1997)' '여고괴담(1998)' '내 마음의 풍금(1999)' '주노명 베이커리(2000)' 등에서 호연하며 연기와 흥행성을 모두 인정받는 배우가 됐다. '에너제틱'하다는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리는 적극적이고 솔직한 여성으로 변신, 유부녀 배우의 전성시대를 열어나간다.
▶ 밝고 섹시함으로 무장한 제2의 전성기
그런데 잘 나가던 그녀에게 또 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2000년 11월 결혼 5년 만에 이혼. 그러나 그녀는 오히려 더 당당한 모습으로 연기에 몰입해 많은 사람들에게 더욱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기존의 고정 관념을 깨고 나이와 이혼을 초월해 제 2의 전성기를 구가하며 충무로 30대 여배우 전성시대를 열었다.
이혼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물고기자리(2000)'로 생애 처음 여우주연상(청룡영화제)을 수상했고, 편집음반인 '연가'의 모델로 나서 160만 장의 대박을 터트렸으며, 영화 '인디언 썸머(2001)', '흑수선(2001)' TV드라마 '명성황후' 등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보였다. 그리고 '중독(2002)'으로 대종상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쥐며 상처를 극복한 성숙한 연기력을 완벽하게 인정받았다.
이후 '태풍(2005)' '어깨너머의 연인(2007)'에서 현재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거상 김만덕'까지. 양은 상대적으로 적지만(영화가 20편이니 1년에 한편 꼴로 출연) 흥행과 작품성 면에서는 대부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나이가 들수록 깊어가는 눈빛만큼 성숙한 매력이 돋보이는 그녀는 지금 더욱 여유롭고 단단해 보인다.
필자가 처음 이미연을 만난 것은 1997년 영화 '넘버 3'를 작업할 때였다. 당시만 해도 영화 현장에 어른들(?!)과 남성들이 상당히 많았을 때라, 비슷한 연배의 동성이라는 이유로 촬영장 한 구석에서 함께 군것질(?!)하고 이런저런 수다를 나누며 짧지만 강렬한 교감을 나눌 수 있었다.
이후로도 그녀는 늘 한결같은 모습이었고, 그러는 동안 필자는 여러 번에 걸쳐 그녀로부터 뜻하지 않은 감동을 받았다. 이미연의 됨됨이를 짐작할 수 있는 장면들을 소개하면 이렇다.
그녀는 영화 현장에서 모든 스태프들, 심지어 각 부서 막내들 이름까지 하나하나 외워 불러 주면서 늘 먼저 말을 건넨다.
'힘들지?' '괜찮니' '너 왜 그래' '정신 좀 차려' '힘내고' 등…. 스타로선 좀처럼 나오지 않는 표현이다. 그러나 이는 스태프들에게는, 특히 조수들에게는 엄청난 감동이자 에너지로 돌변한다. 그녀는 영화 작업이 철저히 팀워크로 이루어진 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영화인이다.
▶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여걸’ 이미연이 넓혀가고 있는 여배우의 새로운 지평이 기대된다. 스포츠동아 임진환 기자 또 있다. 그녀는 누구와의 약속이든 항상 10~20분전에 도착해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스타일이다. 그러다보니 촬영장에도 헤어와 메이크업을 완벽하게 끝낸 채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다. 정말로 단 한번의 예외도 없었다.
장면 셋. 그녀는 자신이 함께 일했던, 자신을 위해 일을 했던 전 매니저들을 꾸준히 챙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5년 전 밴을 운전했던 매니저의 생일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전화해 그녀의 '패밀리'들을 모두 불러 모아 파티를 열어준다. 그렇게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며 각종 고민을 들어준다.
그리고 필자와 엉킨 얘기 하나. 필자가 모 작품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남자 주인공으로 당시 그녀와 무척이나 가까웠던 A씨를 캐스팅하기로 하고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눈 직후였는데, 갑자기 투자하는 측과의 여러 가지 내부적인 문제로 캐스팅이 번복됐다. 남자 주인공으로 전혀 다른 B가 캐스팅 됐다.
그러고 나니, 소심한 필자는 이 얽힌 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이 됐다, 당찬 그녀. 먼저 전화를 걸어와 "일은 일이고, 그럴 수도 있는 거고, 그렇다고 서로 안 볼 거냐? 이 정도 일로 서로 불편해지지 말자"며 먼저 손을 내밀어 왔다.
말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 필자가 다른 작품을 촬영하고 있는 현장에 캐스팅이 번복되었던 A씨를 데리고 와서는 고생하는 스태프들에게 수고가 많다며 저녁을 사고 돌아갔다. 그 정도로 그녀는 배포를 가진 여장부다.
▶ "우리 엄마는 내가 아직도 조선의 국모인줄 알아"
KBS 역사드라마 ‘거상(巨商) 김만덕’ 촬영 현장공개에서 휴식중인 이미연. 그녀의 현장 완벽주의는 정평이 나있다. 스포츠 동아 양회성 작년에 제작됐던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에 비하인드 스토리도 있다.
이 작품은 10여 년 전, 동명의 원작을 토대로 영화화가 준비된 적이 있었다. 이 때 명성왕후 역에 이미연, 명성왕후를 사랑한 무사 역에는 최민수가 캐스팅돼 준비를 했었는데 결국 이 작품은 제작자의 사정으로 중도에 무산되고 만다.
당시 명성왕후 역할을 오랜 시간 준비했던 그녀는 그 역할에 대해 상당히 미련이 남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KBS에서 드라마 '명성왕후'를 제작하기로 했고 이미연이 주연을 맡았다. 캐스팅 제의가 들어오자 이미연은 고민할 것도 필요도 없이 즉시 수락했다는 후문이다.
그녀는 자신이 끌리는 역할에는 정말 불꽃처럼 모든 것들 다 바친다. 다만 처음 약속했던 100회를 생각해 나름 체력도 안배하면서 전력 질주를 했는데 30회 연장 이야기가 나오니, 최선을 다할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드라마 사상 초유의 도중하차를 감행, 파문을 낳기도 했다. 그 정도로 자신에게 솔직하고 당당한 배우다.
언젠가 그녀가 "우리 엄마는 아직도 내가 조선의 국모인 줄 알아"라며 농담처럼 웃으며 말한 적이 있다. 조선의 국모는 아니지만 그녀는 분명 대한민국의 최고 여배우이다. 그녀의 재능과 열정과 노력, 이 모든 것들이 충무로 여배우의 진화를 도울 것을 믿으며, 나이가 든 후에도 여전히 맑고 더 깊어지는 그녀의 눈빛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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