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중화권에서 톱스타로 각광받아온 남성 5인조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가 지난주 일본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돌연 활동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동방신기는 '활동 중단'이라는 표현으로 마지막 가능성을 열어두긴 했다. 하지만 지난해 계약 문제로 불거진 한국 소속사 SM 엔터테인먼트와 영웅재중, 믹키유천, 시아준수 세 멤버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채 사실상 해체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 2위의 음반시장인 일본에서 BoA에 이어 한류스타로 발돋움한 동방신기의 활동 중단은 팬들은 물론 동아시아 대중음악계에도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등 각국 주요 언론이 해체 소식을 속보로 전하며 관심을 보일 정도다.
동방신기는 지난해 계약 문제가 불거진 뒤에도 일본에선 새 음반을 내는 등 활동을 지속해 왔다. 그러나 일본의 대표적인 연말 가요프로그램 NHK '홍백가합전'에 출연한 멤버들이 세 명과 두 명으로 갈려 따로 대기실을 쓰면서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는 뉴스가 나오는 등 해체 가능성은 이미 예견됐다.
한류의 중심에 선 동방신기. 그룹의 이름처럼 동아시아 각국에서 국경과 언어를 초월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그들은 정상의 자리에서 갈라서는 길을 선택했다.
▶ 입 다문 SM vs. 입 연 avex
동방신기의 활동 중단 소식은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발표됐다. 이 그룹의 일본 활동을 총괄해온 일본 최대의 기획사 및 음반사 avex가 동방신기의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이 사실을 밝힌 것이다. avex는 아무로 나미에, 하마사키 아유미, 코다 쿠미, EXILE, BoA 등 일본의 대표적인 톱스타들이 소속돼 있거나 음반을 내는 회사다.
avex는 "동방신기로서의 활동을 중지하지만 앞으로도 특별한 재능과 장래성을 가진 젊은이 5명을 온 힘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동방신기도 일본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팬, 관계자 여러분에게 여러 가지로 걱정을 끼쳐 드려 죄송하다"며 사과문을 올렸다.
반면 동방신기를 데뷔시킨 한국 SM 엔터테인먼트는 이번 일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동방신기의 한국 홈페이지에도 그룹 활동 중단이나 멤버들의 개별 활동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
동방신기가 데뷔한 뒤 일본 시장에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한 SM 이수만 사장 역시 말을 아끼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avex의 막스 마츠우라(본명: 마츠우라 마사토) 사장은 트위터를 통해 동방신기 활동 중단과 관련된 괴로운 심경을 꾸준히 밝히고 있다.
마츠우라 사장은 "(동방신기를 유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며 "개인적인 슬픔은 팬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그들의 꿈을 이뤄 주고 싶다"면서 동방신기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는가 하면, "최근 몇 개월 동안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못하고 팬 여러분에게 걱정을 안겼다"고 안타까워했다.
마츠우라 사장은 동방신기가 일본에서 톱스타로 성장한 만큼 "avex로서는 얼마나 타격이 될까"라고 우려했다. 이번 사태를 해결하지 못한 책임과 관련해 자신이 avex 사장직을 그만둬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까지 올렸다.
그는 동방신기의 재결합을 향한 팬들의 기대를 의식한 듯 "이수만은 훌륭한 크리에이터니까 언젠가는 반드시…", "한국 측에서 허락해 준다면…" 등의 글도 남겼다.
▶ J-POP 한류 불씨 꺼지나
동방신기는 한국의 아이돌 그룹임에도 일본 측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SM과 세 멤버 간의 갈등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동방신기의 최근 활동 본거지가 사실상 일본이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일본 일간지 석간후지는 동방신기의 활동 중단으로 avex가 입을 손실액은 최대 50억엔(6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동방신기는 최근 일본에서 새 음반과 DVD를 낼 때마다 기록을 갈아 치우며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마츠우라 사장이 트위터에서 자신의 사장 직 유지 여부를 거론한 것은 엄살이 아니다.
동방신기는 일본에서 데뷔한지 5년째이지만 처음부터 톱스타로 부상한 것이 아니다. 한국에선 이미 정상에 오른 그들이지만 일본에선 신인으로 데뷔해 처음부터 한 계단 씩 올라갔다.
동방신기는 BoA가 일본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현지화 전략을 이어받아 각 멤버가 일본어를 익히며 외국인이 주는 이질감을 최소화시켰다. 작은 무대도 마다하지 않고 서면서 이름을 알리는데 주력했다. 그 결과 지난해 초반부터 급성장하며 톱스타 대열에 합류했다.
BoA가 미국 진출 등으로 일본 활동에 주춤한 사이 동방신기는 오리콘 싱글, 앨범, DVD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고 해외 그룹으로서는 최고의 기록을 세우는 등 새로운 한류스타로 부상했다. 그러나 그룹이 해체되고 나면 이 같은 한류 불씨 자체가 꺼질 수도 있다.
빅뱅, 카라 등 최근에도 한국 아이돌 그룹들이 꾸준히 일본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지만 아직까지 BoA나 동방신기만큼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며 성공한 사례는 없다. avex가 지난해 연말부터 한국 여성 아이돌 그룹 슈가 출신의 아유미를 ICONIQ으로 변신시켜 내놓았지만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이제 막 정상에 올라 본격적으로 엄청난 수익을 내기 시작한 동방신기가 한국 소속사와의 계약, 갈등 문제로 활동을 갑자기 중단한 것은 향후 한국 가수들의 일본 진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한국 연예 소속사와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결정적인 사례가 됐기 때문이다.
▶ 동방신기 개인 활동의 성과는?
동방신기가 개인 활동에 나설 것임을 공식적으로 밝히기 이전 영웅재중은 이미 일본 드라마 캐스팅이 결정됐다. 그는 후지TV가 15일 방영하는 '스나오니 나레나쿠테'(솔직하지 못해서)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다.
이 드라마는 황금시간대인 목요일 밤 10시에 방영된다. 에이타, 우에노 쥬리 등 출연진도 일본의 톱스타들이다. 이로써 영웅재중은 동방신기 활동 중단 이후 가장 먼저 일본 드라마에 출연하며 개인 활동에 나서게 됐다.
믹키유천 역시 일본 드라마에 출연한다. 그는 6월 방영 예정인 Bee TV '러빙유'에서 젊은 한국인 재벌 역할을 맡았다. 당분간 영웅재중과 믹키유천은 일본에서 배우 활동을 활발히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
동방신기가 현재 일본에서 정상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현지 언론도 두 사람의 드라마 출연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다. 그룹 못지않게 개인 활동에 대한 기대감도 큰 것이다.
그러나 다섯 명이 한 그룹으로 활동하면서 쌓아온 '동방신기'라는 브랜드를 버리고 각자 활동하면서도 지금과 같은 인기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룹과 개인 활동을 병행하는 것에 비해 시너지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SMAP, 아라시 등 그룹과 개인 활동을 병행하며 오랫동안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스타들이 많다. 키무라 타쿠야는 배우로서 톱스타이지만 SMAP의 멤버라는 배경으로 더욱 관심을 모았다. 진행자로 이름을 날리는 SMAP의 나카이 마사히로, 인기 드라마와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던 아라시의 마츠모토 쥰이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SPEED, DA PUMP, 모닝구무스메 등 그룹이 해체되거나 그룹에서 탈퇴 혹은 졸업한 뒤 개인 활동에 나선 멤버들 중 상당수는 예전의 인기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룹 활동 당시에 버금갈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 스타는 핑클의 이효리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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