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TV의 낚시법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20일 03시 00분


선정적 프로로 유혹하다가 가족오락채널로…
마니아 확보한뒤 영역 넓혀…
케이블 방송의 독특한 생존 전략


리모컨으로 케이블채널을 옮겨 다니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저 많은 채널은 어떻게 시청률을 올릴까.’

1995년 국내에 도입된 케이블TV는 이후 채널이 급격히 늘어 현재 아날로그 케이블방송은 70여 개, 디지털 케이블방송은 100∼140개에 이른다. 채널이 많은 만큼 시청자를 끌려는 채널 간 경쟁도 치열하다. 이 케이블 채널들의 생존 전략을 들여다봤다.

○ 마니아 확보한 뒤 저변 넓혀라

게임전문채널 온게임넷은 올해 2월부터 아이돌그룹 티아라의 쇼핑몰 창업 과정을 보여주는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티아라닷컴’을 방송하고 있다. 온게임넷에서 게임이 소재가 아닌 버라이어티를 방송하는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온게임넷은 게임 리그 위주로 방송했지만 올해부터 채널 슬로건을 ‘게임 라이프 채널’로 바꾸고 드라마,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등도 함께 편성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온게임넷을 운영하는 온미디어의 이영균 부장은 “기존 마니아층은 보유하되 이 채널을 보지 않았던 새로운 시청자층도 유입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티아라닷컴’은 다른 게임 리그들과 비교해 전체 시청률은 낮지만 여성 대상 시청률은 더 높다.

바둑전문채널 바둑TV는 이달부터 소설가 이외수 씨가 진행하는 토크쇼 ‘이외수의 별난 생각’을 방송하고 있다. 바둑과 무관한 유명인이 바둑TV 프로그램 진행을 맡는 것은 이 씨가 처음이다. 이세신 바둑TV 편성기획팀장은 “재즈 피아니스트 진보라 씨 등 문화계 인사들이 게스트로 나오는 토크쇼로 바둑TV가 ‘문화 채널’의 이미지로 나아가기 위한 시도”라고 말했다.

○ ‘19금(禁)’ 이슈로 인지도 높인 뒤 변신

통상 방송계에서 ‘비용 대비 효과’가 가장 뛰어난 프로그램은 ‘19세 이상 관람가’ 프로그램으로 알려져 있다. 자극적인 영상만으로도 어느 정도 시청률이 나오기 때문이다.

tvN은 2006년 개국 초기 ‘스캔들’ ‘tvNgels’ 등 선정적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노이즈 마케팅’으로 채널 인지도를 빠르게 높였다. 이후 가족오락채널로의 변신을 선언하며 더욱 대중적인 프로그램들을 편성했다.

개국 초기 19세 이상 관람가 프로그램이 자체 제작물의 50%에 이르렀지만 지금은 한 편도 없다. 그 대신 신하균 이보영 백윤식 등 유명 배우진이 출연하는 드라마 ‘위기일발 풍년빌라’를 사들여 편성했고 이달 11일부터 언어영역 이근갑 강사 등 유명 강사가 출연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 특강 프로그램 ‘공부의 비법’을 방송하고 있다. ‘공부의 비법’은 첫 방송에서 전체 가구 시청률 1.14%(AGB닐슨)를 올렸고 40대 여성에서는 순간 최고시청률이 1.85%까지 올랐다.

tvN 정영환 방송기획팀장은 “자극적 프로그램만으로는 폭넓은 시청자를 끌어들이기 힘들고 광고주들이 꺼리기도 한다”며 “케이블은 재방송 비율이 높은데 19세 이상 관람가 프로그램은 낮에 틀 수 없어 재방송 효율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지난해 초 ‘르포전문채널’을 표방하며 출범한 채널뷰는 ‘스페셜 르포 여기자가 떴다’와 같은 르포 프로그램도 방송하지만 ‘섹시걸 노출 몰카’ ‘도전 몸짱 스트리퍼’ 등 19세 이상 관람가 프로그램을 여럿 방송하고 있다.

○ 채널 장르 아예 바꾸기도

시청률이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 채널의 성격을 180도 바꿔버리기도 한다. 올리브TV는 2000년 요리전문채널 ‘채널F’로 개국했지만 시청자가 주부층에 국한되는 한계가 있어 2005년 라이프스타일 채널을 표방하는 올리브로 변경했다. E채널도 2000년 정보통신채널로 출발해 2005년 드라마·버라이어티로 장르를 변경했다. E채널을 운영하는 티캐스트의 김성수 사업기획팀장은 “2000년 불었던 정보기술(IT) 붐이 사그라지면서 채널 자체에 수요가 줄어 성격을 바꿨다”고 말했다.

송종길 경기대 다중매체영상학부 교수는 “미국 같은 경우 케이블방송 가입자가 많아서 세분된 전문 채널이 살아남기 쉽지만 국내는 시장이 작아 케이블채널이 표방하는 장르 이외의 프로그램도 편성해 시청자를 잡는 시도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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