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50년 만의 리메이크작 칸 경쟁부문 진출 ‘하녀’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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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하고 야비하다… 치밀하고 치열하다

《“저 이 짓…. 좋아해요.” 13일 개봉하는 ‘하녀’(18세 이상 관람가) 중반부에 나오는 주인공 은이(전도연)의 대사다. 이 영화의 티저 예고편이 앞세운 메인 카피이기도 하다.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tease)하기에 좋은 미끼다. 관객은 대개 ‘이 짓’에 대해 ‘섹스’를 떠올릴 것이다. 입을 반쯤 벌린 채 야릇한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포스터 속 전도연의 모습은 이런 추측을 뒷받침한다. 순박한 하녀가 바깥주인과 통정(通情)하다 강제로 유산을 당한 뒤 복수를 꾀한다는 내용. 야할 수밖에 없다.》
화끈한 노출-집요한 심리해부
견고해진 계층 간의 갈등 그려
미수에 그친 前作의 실험 완성

바깥주인 훈(이정재·왼쪽)이 목욕할 욕조를 정성껏 닦는 하녀 은이(전도연). 이 유혹은 ‘하녀’의 서두에 불과하다. 영화는 불륜을 매개로 계층 간의 갈등을 정교하게 파헤친다. 사진 제공 올댓시네마 ☞ 사진 더 보기
바깥주인 훈(이정재·왼쪽)이 목욕할 욕조를 정성껏 닦는 하녀 은이(전도연). 이 유혹은 ‘하녀’의 서두에 불과하다. 영화는 불륜을 매개로 계층 간의 갈등을 정교하게 파헤친다. 사진 제공 올댓시네마 ☞ 사진 더 보기
헛된 기대는 아니다. 전도연은 거침없이 훌훌 벗는다. 그만 벗는 것이 아니다. 바깥주인 훈 역의 이정재도 탄탄한 나신(裸身)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어서 저들이 섹스하기를’ 고대한 관객의 바람은 일찌감치 해결된다. 배우들은 영화가 시작하고 채 20분이 지나기도 전에 옷을 벗어젖힌다. 상영 시간은 106분. 이제 나머지 86분 동안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여기서부터 50년 만에 다시 만들어진 이 기괴한 영화는 냉정하고 집요하게 인물들의 심리를 헤집기 시작한다. 2010년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가 지난 1년간 세계에서 만들어진 숱한 영화 가운데 임상수 감독의 ‘하녀’를 공식 경쟁 부문 후보 18편에 포함시킨 이유는 벗은 몸과 숨 가쁜 섹스 뒤에 감춰져 있다.

이 영화의 원작은 한국 영화계의 괴인(怪人)으로 유명한 고 김기영 감독이 만든 동명 작품이다. 1960년 11월 9일 동아일보는 김 감독의 ‘하녀’에 대해 “K시에서 일어났던 하녀의 유아살해 실화를 번안한 이야기. 휙숀으로도 무리가 있고 심리나 성격 묘사가 거칠어 ‘리얼리티’를 찾는다면 불만스러우면서도, 줄거리 운반에 기를 쓰지 않고 인간의 심리에 카메라를 들여다 댄 실험정신은 저버릴 수 없다”고 평했다.

원작은 방직공장 음악선생(김진규)이 젊은 하녀(이은심)의 유혹을 받으면서 벌어지는 비극을 그렸다. 4·19혁명으로 나라에 새로운 기운이 일어나던 시기. 질투에 눈이 멀어 어린애를 죽이거나 쥐약을 먹고 동반 자살을 하는 등의 내용은 ‘괴기를 위한 괴기의 남조(濫造)’라는 비판도 받았다.

1960년 김기영 감독이 연출한 영화 ‘하녀’의 한 장면. 사진 제공 한국영상자료원 ☞ 사진 더 보기
1960년 김기영 감독이 연출한 영화 ‘하녀’의 한 장면. 사진 제공 한국영상자료원 ☞ 사진 더 보기
반세기를 뛰어넘은 지금 가정부와 고용인 남성의 불륜은 ‘파격’이 아니다. 아무리 노출 수위를 높이고 정사 신을 자극적으로 찍어도 그것만으론 50년 전 원작이 관객에게 안겼던 쇼크를 다시 일으킬 수 없다. 자살한 사람을 흥미로운 듯 구경하는 행인의 모습을 훑은 첫 장면에서 임 감독은 50년 전 얘기를 똑같이 반복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주인공들은 원작보다 한결 세련되고 점잖다. 여섯 살 난 주인집 딸이 하녀에게 건네는 말. “아빠는 예의가 상대를 높이는 듯 자기를 높이는 거래요.” 여기에 열쇠가 있다.

원작보다 반듯하고 안정적인 인물들은 더 깊고 넓고 견고해진 계층 간의 갈등과 인간성 상실을 보여준다. 불륜의 첫 밤을 보낸 다음 날 아침. 남자는 옛날 같은 번민 없이 씩 웃으며 수표를 건넨다. 바늘 틈 하나 찾을 수 없게 치밀하게 정리된 공간 속에서 사위는 장모에게 “당신 딸이 낳아야 내 아이인 것 같습니까?” 같은 비이성적 언사를 대수롭지 않게 쏟아낸다.

더 벗은 건 문제가 아니다. 새 ‘하녀’는 쌓인 세월만큼 더 야비해진 세상을 더 치열하게 파고들었다. 원작 ‘하녀’를 다룬 동아일보 기사의 제목은 ‘미수(未遂)했으나 주목할 실험’이었다. 팔팔한 괴짜 후배는 미수에 그쳤던 괴작(怪作)을 치밀하게 완성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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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영상 = ‘하녀’ 얼마나 야하길래…예고편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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