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하나의 대상을 집중적으로 관찰하는 방식의 실험영화 ‘선철’을 선보인 미국 제임스 베닝 감독. 그는 “관객이 능동적으로 내 영화를 봐주기를 바란다”며 “영화를 이해하는 방식은 관객의 자유”라고 말했다. 전주=신성미 기자
독일 뒤스부르크의 HKL제철소. 고정된 카메라는 선철(銑鐵·무쇠) 제조 과정 가운데 한 장면을 30분 동안 비춘다. 철광석과 선철을 나르는 소형 기차와 인부 몇 명이 가끔 오갈 뿐 대사도 음악도 없다. 불꽃 튀는 소리와 기계 돌아가는 소리, 기차의 경적 소리가 귀에 들리는 전부다.
미국 실험영화 감독 제임스 베닝(68)이 만든 영화 ‘선철(Pig Iron)’이다. 이 영화는 7일까지 열리는 제11회 전주국제영화제의 ‘디지털 삼인삼색’ 프로젝트의 하나로 만들어졌다. 전주국제영화제가 3명의 감독을 선정하고 각각 5000만 원의 제작비를 지원해 30분짜리 디지털 영화를 제작하도록 했다.
2008년에 이어 두 번째로 영화제 참석을 위해 전주를 찾은 베닝 감독을 2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고사동 ‘영화의 거리’에 있는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1987년부터 캘리포니아예술대(CalArts)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1969년 이래 20여 편의 장편과 15편의 단편을 만들었다.
그는 ‘선철’을 통해 관객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에 대해 “영화를 이해하는 방식은 관객의 자유”라며 “선철 운반용 기차가 구부러진 철로를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춤추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60년 전에는 100명의 노동자가 일하던 장소에서 지금은 고작 4명이 일하는 모습을 보며 사회적 이슈를 찾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베닝 감독은 ‘선철’처럼 한 풍경을 집중적으로 관찰하는 방식의 아방가르드 영화를 만들어 왔다. 2008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RR(Rail Road)’는 달리는 기차의 모습을 43개의 장면으로 연결한 112분짜리 영화다. 그는 ‘RR’와 ‘시선을 던지다’로 2008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비평가협회상의 독립영화상을 받았다.
“관객들이 영화를 더욱 진지하고 능동적으로 봐주길 바랍니다.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관객마다 각기 다른 생각을 떠올릴 수 있죠. 영화를 통해 ‘관찰’에 익숙해지면 일상에서도 관찰과 사유를 즐길 수 있어요. 내가 실험영화를 만드는 이유입니다.”
베닝 감독은 월급 등으로 제작비를 스스로 조달하며 촬영 연출 편집 등을 혼자 한다. 그는 다음 작품을 위해 최근 두 채의 오두막집을 지었다고 한다. 하나는 ‘월든’을 쓴 19세기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살았던 오두막집을 재현해 매사추세츠 주에, 다른 하나는 천재 수학자였다가 우편물로 테러를 감행해 ‘유나바머’라는 별명을 얻은 테드 카진스키가 은둔했던 오두막집을 따라 몬태나 주에 지었다.
“두 채의 오두막집 안에서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을 담을 계획입니다. 명상적 삶을 이어갔던 소로와 반사회적 삶을 살았던 카진스키의 생각을 비교하는 작업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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