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권재현]자본 권력에 대한 풍자극 ‘리회장 시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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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3일 17시 50분




누가 연극을 풍자라 했던가요. 2000년대 연극은 권위주의 시절 그토록 관객을 달아오르게 했던 풍자의 힘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풍자의 대상인 권력이 서슬 퍼렇던 시절이 지났기 때문일까요. 문득 요즘 연극에 남은 풍자는 이제 현대예술의 징표가 된 자기풍자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구연극에선 그 정도가 더 심해서 거의 자기모멸, 자기학대 수준으로 병리화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 만원관객을 끌어 모았던 정치풍자극 '비언소'가 올해 'B언소'로 새롭게 태어나 대학로 차이무소극장에서 선을 보였지만 왕년의 흡입력을 보여주는 데 한계를 보였습니다. 1951년생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이상우 한국예술종합대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과 유인촌 문화부 장관을 직접 겨냥한 날 선 풍자를 통해 이 작품의 업데이트를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관객의 반응은 예전만큼 뜨겁지 못했습니다.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정치풍자가 너무 일상화한 탓일까요. 아니면 포스트민주화세대에게 민주화세대의 정치풍자가 부담스러워서일까요.

그 가운데 또 다른 민주화세대의 풍자극이 펼쳐집니다. 극단 우투리의 '리회장 시해사건'입니다.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김광림 씨는 이상우 씨보다 한 살 적은 1952년생으로 같은 한예종 연극원 교수이기도 합니다. 제목에서부터 엿볼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으로 대표되는 한국 재벌에 대한 적나라한 사회풍자극입니다. 'B언소'가 화장실을 무대로 키치적 상상력을 통해 적나라한 정치풍자를 펼친다면 '리회장 시해사건'은 한국 전통연희양식에 기댄 복고적 사회풍자를 펼칩니다.


연극은 우리그룹이란 재벌그룹 회장인 리석희의 장례식으로 시작해 그 죽음의 이유를 역추적해 갑니다. 한국적 춤사위와 4음보 장단대사에 맞춰 진행되는 1막1장의 장례식 장면에서 리 회장은 경제보국에 몸 받친 가업을 물려받아 우리그룹을 세계적 기업으로 키웠다고 찬미됩니다. 하지만 2장부터 포착되는 리 회장의 실체는 한국사회에서 비판의 표적이 되는 부패한 재벌의 원형입니다.

분식회계로 장부를 조작해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를 토대로 뇌물로 정관계를 구워삶고 탈세를 통한 경영권 편법승계로 기업을 사유화합니다. 노조는 아예 설립신고조차 못하게 차단하고 그룹차원에서 관리해오던 로비명단인 '블루 노트'가 폭로되고도 교묘히 법망을 벗어나는 무소불위의 권력입니다. 그는 심지어 경제부처 국장들과 검찰 고관들에게 '임명장' 주는 행사를 후계자인 작은 아들 리 상무에게 맡기며 말합니다. "내가 그런 쫄떼기들 상대하게 됐냐?"

연극은 리 회장의 장례식 장면을 생시인지 꿈인지 모호하게 끌고 갑니다. 이런 모호함의 전략은 현실의 재벌과 연극 속 리 회장을 모호하게 섞어버리는 데서 효과를 발휘합니다. 앞의 대사가 연극과 현실의 경계를 아득하게 만드는 효과는 바로 리석희 회장 역의 이석희 씨가 1997년 세풍사건의 주역으로서 한국형 금권정치의 상징적 인물이라는 점에서도 발생합니다. 이 씨는 당시 국세청 차장의 직위를 이용해 기업들을 상대로 한나라당의 대선자금을 불법 모금한 혐의로 징역1년6월형에 처해졌던 인물입니다. 대학시절부터 아마추어 연기자로서 꾸준히 활약해왔던 이 씨 본인은 "연극은 연극일 뿐"이라며 자신의 개인사와 연극내용이 오버랩 되지 않기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현실적 그림자가 연극에 스며들기 때문에 꿈과 생시, 연극과 현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도는 이 연극의 극적 긴장을 강화하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실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전근대적 표현을 절절히 체화한 리 회장의 권력에 대한 연극의 풍자는 신랄합니다. 그렇기에 조선시대 양반 권문세가에 대한 민초의 응어리를 거침없이 토해냈던 마당극 양식을 차용한 점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집니다. 현실의 리 회장을 그릴 때는 서양연극의 문법에 가깝지만 장면을 전환하거나 리 회장의 꿈/장례식 장면에선 전통적 음율과 춤사위를 적극 도입했습니다. 조주선 명창이 장이 바뀔 때마다 짤막한 창 한 소절씩을 들려주는데 그 노랫말은 인생의 허망함을 설파한 불경에서 끌어온 것입니다.

복고적 양식을 취함으로써 정치권력보다 더욱 특권화하고 있는 자본권력을 매섭게 풍자할 수 있는 원동력을 끌어낸 점은 박수를 보낼만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통제 불가능한 리 회장의 패악이 귀신의 힘을 빌린 방자에 의해 응징된다는 극적 해소의 틀마저 전통적 서사에서 빌려온 점은 양복을 입고 갓을 쓴 것처럼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오죽하면 귀신의 힘을 빌려야할까라는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는 바가 없지 않지만 비현실적 존재에 기대어 극을 종결짓는 극작법을 지칭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보다는 전통적 풍자의 힘을 현대적 자기풍자의 미학과 결부시켰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연극 속 리 회장은 확실히 계몽주의의 세례를 받은 현대를 벗어난 존재입니다. 만민평등의 민주화시대 '법 앞의 평등'을 거침없이 위반할 수 있는 존재, 탈종교의 시대에도 중세에나 가능할 신성불가침의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존재, 가족가치를 최우선시하는 시대 자기 욕망실현을 위해 사돈도 자식도 언제든 용도 폐기할 수 있는 존재…. 리 회장은 누구보다 영민하게 그 이유를 꿰뚫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그룹에서 월급 줘서 멕여 살리는 직원만 수십만 명이야. 관련 업체 다 쳐서 그 가족들까지 치면 대한민국 인구 절반을 우리 그룹이 멕여 살리고 있다구. 그 이상 어떻게 더 적덕을 하냐?"


그런 리 회장은 '햇님 달님 설화' 속 호랑이를 연상시킵니다. "일자리 줄 게 떡 다오, 주가 올려줄게 떡 다오, 경제성장 시켜 줄 게 떡 다오…." 그렇다면 우리들은 그 호랑이의 주문에 말려들어 우리가 간직해온 정신적 자산을 다 내주고 결국은 영혼까지 잡아먹히고 마는 떡장수 할머니 아닐까요. 전통적 풍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자기풍자와 만날 수 있습니다. 리 회장이란 욕망의 괴물을 불가사리로 키운 것은 바로 돈이 최고라는 우리 내면의 황금만능주의이기 때문입니다.

연극은 이를 무시하고 모든 죄를 리 회장에게 뒤집어씌운 뒤 극히 무도한 방식으로 응징합니다. 그를 위해 리 회장과 그의 아들 리 상무는 비현실적으로 악마화됩니다. 그것은 집단적 적개심을 풀어내기 위해 희생양을 처단할 때 보여준 고대 원시적 제의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연극이 세상의 정화를 목표로 한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가 공유한 무한욕망의 죄악을 뒤집어씌운 리 회장에 대한 징치를 통해 이뤄질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러한 현실을 외면하거나 눈감아온 우리 자신에 대한 씻김을 통해 이뤄져야하지 않을까요.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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