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필름마켓 ‘최악의 흉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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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8일 03시 00분


국내 영화수입업자들 “살 만한 영화 안보여”드물게 발견되는 ‘秀作’은 가격 턱없이 비싸

“이곳저곳 구석구석 둘러봐도 도무지 살 만한 영화가 없어요. 우리로서는 이 마켓이 한 해 먹고살 식량을 모내기하는 곳인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제63회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본부인 팔레 드 페스티발 부근의 한 카페에서 15일 오후 만난 김동영 새인컴퍼니 마케팅팀장의 얼굴은 푸석했다. 하루 종일 영화제 마켓을 돌아다닌 피곤함보다 만족할 만한 영화를 찾지 못한 허탈감이 커 보였다. 동행한 김태원 해외사업팀 대리는 “시장 변화에 따라 나름대로 대응전략을 세워서 칸에 왔지만 별 소용이 없다”며 “사냥터가 변했다기보다는 사냥감의 씨가 말랐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라고 했다.

○ “돈이 있어도 살 영화가 없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과 비교해 보면 영화 팬의 눈길을 끄는 ‘스타 파워’는 칸 영화제가 미미한 편이다. 그럼에도 영화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한 해 주요 행사의 으뜸으로 주저 없이 칸 영화제를 꼽는다. 해마다 세계 100여 개 나라의 영화 텃밭에서 나온 수확물을 한자리에서 보고 수출입 계약을 주고받는 커다란 시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칸 영화제 필름 마켓은 1959년에 처음 열렸다. 17일 오전까지 마켓 사무국에 등록한 수입업자 수만 1082명, 한국에서 온 수입업자는 43명에 이른다.

제63회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팔레 드 페스티발의 출입구. 세계 경제 불황의 여파로 올해 칸 영화제 필름마켓은 거래가 크게 위축된 모습이다. 칸=손택균 기자
제63회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팔레 드 페스티발의 출입구. 세계 경제 불황의 여파로 올해 칸 영화제 필름마켓은 거래가 크게 위축된 모습이다. 칸=손택균 기자
하지만 올해 칸 영화제 필름 마켓에 대한 평은 ‘변변찮다’는 것이 대세다. 14∼16일 마켓을 오가며 마주친 한국 영화수입업자들은 한결같이 빈손이었다. 16일 만난 김원국 데이지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칸에 온 게 올해로 12년째인데 이런 적이 없었다”며 “살 만한 영화가 적은 게 아니라 아예 안 보인다”고 말했다.

“좋은 영화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우리 회사는 칸을 비롯한 국제영화제 마켓을 통해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렛 미 인’처럼 작품성으로 인정받은 영화를 꾸준히 수입해 왔습니다. 올해도 그런 영화가 몇몇 있긴 합니다만 가격이 턱없이 비싸요. 흉작으로 발생한 인플레인 셈이죠.”

영화 시장이 전반적으로 자금난에 허덕이면서 드물게 발견되는 수작에 바이어들이 경쟁적으로 몰려들어 가격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부가판권 수익을 기대할 수 없어 매출의 90% 이상을 극장에서 내야 하는 한국 영화수입업체로서는 흥행성이 보장되지 않는 영화에 도박을 걸 수 없다. 김동영 팀장은 “영화 한 편에 쓰는 지출을 늘려 덩치가 더 큰 상업영화를 찾는 수밖에 없게 됐다”며 “갈수록 소품이 주를 이루고 있는 칸 마켓이 앞으로 얼마나 더 효용이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작품성 중심의 칸 영화제에서조차 ‘품질 높은 명작’을 볼 기회가 드물어진 것이다.

○ ‘하녀’ 4개국에 팔려

시사회장 안팎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하녀’는 영화제 개막 전에 프랑스를 비롯한 4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제작사인 미로비전 관계자는 “할리우드 메이저 배급사들의 러브콜도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6·25전쟁을 소재로 한 ‘포화 속으로’도 마켓 시사회 전 독일에 팔렸다. ‘시’는 스페인, 대만, 세르비아와 계약을 맺었다. 김지운 감독이 연출할 예정인 ‘악마를 보았다’도 프랑스 배급사에 팔렸다. 영국 영화전문지 스크린 인터내셔널은 칸 국제영화제 데일리에 한국 영화 붐에 대한 특집 기사를 실었다.

하지만 모든 한국 영화가 좋은 시절을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수출업체 M라인의 추소연 과장은 “한류 열풍이 한창일 때 10만 달러 이상에 팔린 것과 비슷한 품질의 영화들이 이제는 1만 달러 선에서 얘기가 오간다”며 “몇몇 화제작의 선전이 전반적 상황을 대변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칸=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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