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의 연인은 이몽룡이 아니라 그의 몸종인 방자였다’는 발칙한 상상에서 출발한 영화 ‘방자전’(2일 개봉·청소년 관람 불가)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기대만큼 야하질 못했다. 전작 ‘음란서생’에서도 보듯 김대우 감독은 야한 이야기를 미학적 통찰과 비장미를 통해 담아내길 즐기는데, 섹스신 역시 ‘아름다우면서도 비장한’ 기조를 유지하려는 감독의 의도가 이런 결과를 낳지 않았나 싶다. 이 영화의 상상력대로라면 섹스신 역시 더 질펀하고 저질스러워야 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 영화에서 정작 야한 것은 ‘몸’이 아닌 ‘말’이다. 여기선 ‘작업’의 귀재로 ‘마 노인’(오달수)이란 자가 등장하는데, 그는 물경 2만 명의 여성과 몸을 섞었다는 전설적 바람둥이 ‘장판봉’ 선생의 비급을 방자에게 전수하면서 방자(김주혁)로 하여금 춘향(조여정)의 몸과 마음을 훔치도록 돕는다. 각종 유머를 섞어 언급되는 작업의 기술들은 일부 과장되고 비현실적이지만, 또 일부는 현실에서도 통할 만큼 유용하다. 방자전에 등장하는 작업의 기술을 ‘현실성’과 ‘창의성’ 측면에서 평가해 봤다. ○ ‘차게 굴기’ 기술
이몽룡(류승범)이 춘향의 마음을 얻기 위해 구사하는 기술. 몽룡이 ‘논어, 맹자를 읽다가 저절로 터득했다’고 하는 기술로, 다리를 다친 춘향이 ‘몽룡이 날 업어주겠지’ 하고 기대할 때 차갑게 외면함으로써 춘향을 살짝 미혹(迷惑)하게 만드는 심리전술이다.
창의성 ★★, 현실성 ★★★★(별 5개 만점). 매우 진부하나 여전히 유용한 기술. 일명 ‘나쁜 남자’ 전술이라고도 한다. 어젯밤엔 40분간 키스해 놓고 오늘 낮엔 통화하다가 “바빠서, 이만…” 하며 돌연 끊거나, 여자친구가 자동차에 오르내릴 때면 매번 문을 대신 여닫아주던 행위를 일언반구도 없이 일시 중지하는 행위가 이에 해당한다. 여성이 남성에게 원하는 최고의 선물은 다이아몬드 반지가 아니라 ‘자극’이라 했지 않던가. ‘이 남자, 변심했나?’ 하는 스트레스와 긴장을 유발함으로써 남자의 사랑을 미치도록 갈구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명심해야 할 것은, 이 기술은 여자가 남자에게 충분히 빠져 있을 때 구사해야 한다는 점.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남자가 기술에 들어갈 경우 미친 놈 취급만 받는다.
○ ‘툭’ 기술
마 노인이 소싯적 무수한 여인을 상대로 사용한 필살기. 여성 앞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던지며 눙치다가 돌연 빛의 속도로 손을 뻗어 여성의 신체를 ‘툭’ 하고 만짐으로써 허를 찌르는 뻔뻔한 스킨십 기술이다.
창의성 ★★★★, 현실성 ★☆(☆는 ★의 2분의 1). 여간 센스 있는 남자가 아니라면 감히 구사해선 안 되는 기술. “만져도 돼?” 하고 무식하게 묻는 것보단 고차원적이라 하겠으나,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구사하다간 형사고발을 당해 구속될 수 있다. 다만,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그리스를 상대로 골을 넣는 드라마틱한 순간엔 응용해볼 만하다. 감격에 북받친 듯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껴안거나 어깨동무를 하는 식.
○ ‘뒤에서 보기’ 기술
마 노인의 속성 기술로, 여성과 나란히 옆에 앉아 있을 때 사용된다. 남자가 스킨십을 해오리라고 여성이 예상할 때 예상을 뒤엎고 남자가 30cm쯤 뒤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여성의 어깨 뒤편만 ‘모든 정성과 사랑을 담아’(마 노인의 표현) 시종 뚫어져라 바라보는 기술이다.
창의성 ★★★★★, 현실성 ☆. 손 대신 불타오르는 시선으로 상대를 마사지하는 기술로, 매우 신선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요즘 세상에 이런 답답한 기술을 구사했다간 여자친구에게서 “아유, 그만 보셔.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냐?” 하는 짜증스러운 반응을 얻기 십상이다. 다만, 이 기술은 극장에서 응용해볼 만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는 보지 않고 옆에 앉은 여자친구만 그윽한 눈동자로 응시하는 것. 이때 여자친구가 다소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왜 자꾸 봐?” 하고 물어오면 나지막한 목소리로 여자친구의 귓바퀴에 살짝 바람을 불어넣으면서 “영화가 도무지 눈에 안 들어와. 너 때문에…” 하고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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