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90년대 인기드라마 - 영화 리메이크 잇달아
‘신선한 재해석’ 실종… “세계영화시장 위기 반영”
《“무죄를 주장하며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하로 잠적한 4인의 베트남 특공대원…. 이들은 신분을 감춘 채 스스로 ‘A-특공대’라 부르며 비밀리에 활동하고 있다. 누구도 해결하지 못한 사건, 그것이 바로 A-특공대의 몫이다.”》
1987, 88년 KBS2 TV에서 방영한 미국드라마 ‘A-특공대’의 각 에피소드 첫머리에 흘러나오던 내레이션이다. 이어서 ‘빰 빠밤 빰∼’ 하는 유명한 배경음악과 함께 검은색 시보레 밴을 몰며 그들이 등장했다. 가운데 모발만 남기고 머리를 박박 민 모히칸 헤어스타일의 싸움꾼 비에이(B.A.), 잠시도 시가를 입에서 떼지 않는 백발의 대장 한니발, 격렬한 전투 중에도 2 대 8 가르마를 무너뜨리지 않는 사기 전담요원 멋쟁이, 비에이와 늘 티격태격하는 미치광이 파일럿 머독.
10일 개봉하는 ‘A-특공대’(15세 이상 관람가)는 이 드라마를 리메이크했다. 오프닝 장면에서 반송장이 될 정도로 악당에게 두들겨 맞다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툭툭 털며 일어나 시가를 피워 무는 한니발(리암 니슨). 20여 년 전과 변함없는 비현실적 마초 정신이 일단 반갑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반갑긴 한데 이건 아니다’ 싶다.
다시 ‘누구도 해결 못한 사건’에 뛰어든 네 주인공은 전과 다름없이 주먹, 총, 폭탄을 앞세운다. 확실히 달라진 것은 스크린 사이즈만큼 커진 무기의 화력과 액션 스케일이다. 118분의 상영시간 절반 이상을 격렬한 폭발음으로 채웠다. 영화 중반쯤 되면 귀가 먹먹해진다. 또 하나, 오프닝 내레이션을 맨 뒷부분에 붙인 게 달라진 점이다. 나머지는? 배우의 외모와 행동거지까지 원작과 똑같이 맞춰 냈다.
A-특공대는 총알이 빗발치는 싸움터에서도 치명상을 입지 않는다. 절체절명의 수세에 몰리다가도 한순간 기지로 전세를 뒤집는다. 심지어 탱크를 탄 채 하늘을 날면서 적의 비행기를 총과 포로 맞춰 떨어뜨린다. “그들에게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말하는 내레이션이 영화가 제시하는 개연성의 전부다.
관객이 리메이크에서 기대하는 것은 편안한 익숙함 속의 참신한 해석이다. 동물적 남성미에 초점을 맞춰 새롭게 선보인 ‘카지노 로얄’ 이후의 새 ‘007’ 시리즈는 원작의 품위에 새로운 매력을 더했다는 호평을 얻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섹스 앤 더 시티 2’ ‘베스트 키드’ 등 ‘A-특공대’와 같은 날 국내에서 개봉하는 할리우드 영화는 안이한 리메이크 행진의 위태로운 현실을 보여 준다. 이 영화는 모두 1980년대 이후 만들어진 드라마나 영화가 원작이다. 하지만 원래 이야기와 설정을 지루하게 반복할 뿐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진 못한다.
‘섹스 앤 더 시티 2’는 2004년 종영한 드라마의 두 번째 영화판이다. 나이 든 4명의 주인공이 사치스러운 헛소동 끝에 ‘세월의 흐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식의 밋밋한 자기성찰을 얻는 결말이 드라마와 다를 바 없다. “목적 없는 아방가르드 어드벤처”(월스트리트저널), “납득할 수 없는 특권의식의 싸구려 악취가 필름을 뒤덮고 있다”(뉴욕타임스) 등 미국 현지 언론의 평가도 최악에 가까운 비판 일색이다.
1984년부터 세 편의 시리즈로 만들어졌던 액션영화를 원작으로 한 ‘베스트 키드’ 역시 무술 종목을 가라테에서 쿵후로 바꿨을 뿐 ‘허약한 청소년이 무술을 연마해 한 단계 성장한다’는 얘기를 심심하게 반복한다. 영화평론가 정지욱 씨는 “세계 최대의 영화 공장 할리우드가 무성의한 ‘재탕’을 반복하는 것은 글로벌 영화 시장의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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