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 개봉하는 ‘스플라이스’(18세 이상 관람가)는 관객을 편안히 놔두지 않는 공상과학(SF) 영화다. 유전자조작으로 태어난 돌연변이 생명체 ‘드렌’을 간판으로 내세웠지만 괴물 대 인간의 뻔한 싸움은 벌어지지 않는다. 캐나다 출신의 빈센조 내털리 감독(41)이 주목한 것은 피조물 드렌과 인간이 맺는 ‘관계’의 양상. 인간 유전자를 가진 돌연변이 괴물 드렌은 인간처럼 길러지다 결국 인간을 사랑하게 돼 파멸을 맞는다. 내털리 감독의 장편 데뷔작 ‘큐브’가 보여준 SF와 공포의 기이한 접합(接合·splice)은 이번 영화를 통해 스펙트럼을 한층 넓혔다.
23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극장에서 열린 ‘스플라이스’ 시사회. 내털리 감독을 만나기 위해서 특별한 관객이 찾아왔다. “13년 전 ‘큐브’를 보자마자 열성 팬이 됐다”는 박찬욱 감독(47)이다. 독특한 소재를 앞세운 이야기 뒤에서 인간의 심리를 치밀하게 헤집기 좋아하는 두 감독은 마주앉자마자 쉼 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누구도 의식하지 못한 채 2시간이 훌쩍 흘렀다.
▶dongA.com에 인터뷰 전문
▽박찬욱=멋진 이야기다. 모처럼 관객으로서 한껏 즐겼다. 늘 SF 영화를 만들고 싶지만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사회상의 골격을 이야기와 얼마나 효율적으로 엮어낼 수 있을지 엄두가 안 난다. 내털리 감독이 절묘하게 해내는 걸 보면 정말 부럽다. ‘큐브’를 봤을 때의 충격은 엄청났다. SF 영화의 역사를 새로 쓴 작품이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거다.
▽빈센조 내털리=과분한 말이다.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빼고 박 감독의 모든 영화를 봤다. ‘꿈꾸는 안드로이드’라는 SF 영화를 기획할 때 참고가 될까 싶어 찾아봤는데 DVD를 구할 수 없었다.
▽박=‘사이보그…’는 제목만 그렇지 SF 영화가 아니다. DVD는 선물하겠다.(웃음)
▽내털리=‘스플라이스’도 SF 영역의 소재로 이야기를 열지만 주제는 과학기술이 아니다. 사람과 피조물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감정적 교류, 그로 인해 벌어지는 문제에 대한 상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박 감독의 ‘박쥐’ 역시 뱀파이어 전설의 설정을 빌려와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파고들지 않았나. 오래 묵은 이야기에 대한 독특한 해석에 큰 흥미를 느꼈다. 익숙한 소재를 영화로 만드는 일은 창작자로서 흥미로우면서도 두려운 일 아닌가. 지금까지 나온 뱀파이어 영화가 도대체 얼마나 많을까. 셀 수도 없을 거다. 어떤 식으로든 기존 캐릭터를 변용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지 않으면 비평적으로나 대중적으로나 비난의 대상이 된다.
▽박=2006년 옴니버스영화 ‘사랑해, 파리’를 보다가 내털리 감독이 만든 에피소드 결말부 이미지에서 ‘박쥐’와 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느꼈다. 시나리오를 다듬던 때였는데 서로의 피를 빠는 뱀파이어 이미지를 쓴 것이 내심 반가웠다.
▽내털리=영화를 포함해 모든 창작자에게 흔히 일어나는 흥미로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공유할 수 있는 ‘아이디어의 흐름’ 같은 것이 공기 중에 떠다니는 것 아닐까.(웃음) 나는 ‘스플라이스’를 만들면서 ‘에일리언’, ‘스피시즈’처럼 비슷한 느낌의 영화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걱정은 하지 않았다. 박 감독도 ‘박쥐’를 만들면서 ‘드라큘라’에 대해 전혀 염려하지 않았을 거다. 그와 같은 이유다. ‘박쥐’ 후반부 남녀 주인공의 러브신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단순히 육체의 쾌락이나 정신적 교감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 심지어 목숨까지 주고받는…. 배우들의 연기도 처절할 만큼 리얼했다. 짜릿한 공포였다. 배우가 한 장면에 그렇게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배우를 어떻게 그런 상태로 만들 수 있는지 궁금했다.
▽박=특별한 묘수는 없다. 그저 배우들과 술을 자주 마신다.(웃음) 밤새 술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두서없이 나눈다. 그렇게 서로를 알게 돼 신뢰가 생기면 현장에서 내면을 끄집어내는 과정이 조금은 편안해진다. 물론 그에 앞서 더 중요한 것은 영화의 중심이 될만한 좋은 배우를 캐스팅하는 일이다. 한 명의 좋은 배우가 중심을 잡아주면 그보다 조금 미흡한, 성장 중인 배우도 그 배우 덕분에 자신의 가능성을 기대 이상으로 끌어내는 것 같다.
▽내털리=술을 마신다니…. 처음 듣는 흥미로운 방법이다. 작업 과정에 대해 좀더 질문해도 될까.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스토리보드를 꼼꼼히 만드는 스타일인지 궁금하다.
▽박=‘공동경비구역 JSA’ 때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영화사가 나를 못 믿어서 그랬다. 그 전에 만든 두 영화가 다 흥행에 참패했기 때문이다. 계약할 때 조건이 전체 스토리보드를 먼저 만드는 거였다. 마지못해 시작했는데 한번 해보니까 여러 모로 좋더라. 그 뒤부터 계속 스토리보드를 완벽하게 준비해서 작업하고 있다.
▽내털리=나는 스토리보드를 좀 얼기설기 만드는 편이다. 그림이 너무 완벽하면 거기에 집착하게 돼서 현장에서 발생하는 예상 밖의 좋은 기회들을 놓치게 되는 것 같다.
▽박=동의한다. 스토리보드는 경우에 따라 현장에서 더 좋은 영감을 얻기 위해, 심하게 말해 버려지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거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스태프와 배우들이 ‘지금 뭘 찍고 있는지’ 인지하고 참여하게 만들기 위한 도구로써 스토리보드의 역할이 크다고 본다. 감독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들 넋 놓고 기다리는 현장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완벽한 그림’의 스토리보드라니….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나보다.
▽내털리=아주 좋아한다. ‘스플라이스’에서 주인공 커플의 침실에 걸려 있는 일본풍 만화 그림을 직접 그렸다. 제작비도 아낄 겸.(웃음) 지금은 아내와 내가 쓰는 침실에 걸어 놨다. 거기 써 있는 일본어 문장은 일본인인 아내가 쓴 거다. ‘그들이 오고 있다(they are coming)’는 뜻. 부부의 침실에 어울리는, 노골적인 영어 농담이다.
▽박=‘스플라이스’는 내털리 감독과 같은 캐나다 사람인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플라이’를 연상시키는 점도 많다. 개인적으로 가깝게 지내는가.
▽내털리=그냥 안면만 있다. 내게는 대선배(big brother)니까. 워낙 뛰어난 천재라서 나 정도가 비할 바 아니다. 아, 시나리오 작가인 돈 매켈런을 통해서 크로넨버그 감독이 박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를 매우 흥미롭게 관람했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
▽박=‘엑조티카’의 아톰 에고이안 감독도 그렇고…. 캐나다 감독들에게는 뭔가 기기묘묘한 구석이 있다. 미국과 바로 붙은 이웃이지만 정말 다르다.
▽내털리=캐나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아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안고 산다. 이웃에 세계 제일의 초강대국이 있어서다. 영화계도 마찬가지다. 비슷한 생김새의 사람들이 미국 영화와 같은 언어로 영화를 만들지만 세계 어느 나라 관객도 캐나다 영화를 미국 영화처럼 즐겨 봐주지는 않는다. 캐나다 관객조차 그렇다. 포레스트 휘태커가 주연한 영화 ‘라스트 킹’의 한 장면에서 주인공이 지구의를 무작위로 돌려 손가락이 짚는 곳으로 떠나겠다고 마음먹는 장면이 있다. 처음에 캐나다가 나오니까 못 본 척 지구의를 스윽 다시 돌린다. 캐나다는 살기 좋은 곳이지만 여행자를 흥분시키는 나라는 아니다. 심심한 공간이다 보니 괴상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웃음)
▽박=크로넨버그 감독의 ‘플라이’도 원작 영화가 있는 리메이크였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재탕’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스플라이스’도 비슷하게 연상되는 여러 가지 이미지가 있지만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정사 장면이 특히 인상 깊었다. 관객에게 주는 충격이 상당할 것 같다. 할리우드의 유명한 제작자인 조엘 실버의 이름이 공동기획자 크레디트에 있긴 했지만, 처음부터 그가 진두지휘해서 제작한 블록버스터였다면 그 정도로 ‘확 깨는’ 장면은 볼 수 없었을 거다. 러브라인 분위기만 잡고 정사가 이뤄지지 않을까봐 솔직히 내심 걱정했다. 정말 저질러버려 줘서 반가웠다.(웃음)
▽내털리=드렌과 인간의 섹스…. 시사회마다 반응이 천차만별이다. 욕먹고 깜짝 놀란 적도 있다. 금기의 선을 넘는 순간의 불편한 쾌감과 욕망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나 싫어하는 관객이나, 이유는 모두 그 장면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박=금지된 관계는 더 강한 욕망을 부른다. 사람이 근원적으로 갖고 있는 어두운 특성 아닐까. 현실에서 인정받을 수 없는 욕망이기에 영화를 비롯한 예술 작품에서 강렬하게 드러나는 거다. 그것이 영화와 예술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예술은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밝히기 위해서 있는 것이니까. 나는 영화가 ‘금기를 무시해도 괜찮다’기보다는 ‘금기의 경계선을 반드시 넘어야 한다’고 믿는다.
▽내털리=영화를 통해 현실에서 금지된 영역으로 관객을 이끄는 작업은 늘 흥미진진하다. ‘박쥐’에서 백옥처럼 하얗게 칠한 공간이 핏빛으로 물들던 클라이맥스 장면이 생각난다. 시각적 효과도 무서웠지만, 사람의 내면을 파고들어 본성을 한 꺼풀 벗겨내는 듯한 느낌을 줘서 더 섬뜩했다. ‘스플라이스’ 중반부에 드렌이 지붕 위에 서서 갑자기 감춰져 있던 날개를 펴고 본성을 드러내는 장면이 있다. 내면의 욕망이 갑자기 표출되는 순간의 느낌을 관객에게 전하고 싶었다.
▽박=‘스플라이스’에서 영화적으로 나를 특히 매료시켰던 장면은 남자주인공이 물탱크에서 드렌을 죽일 듯이 목 조르는 장면이었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말하기가 조심스러운데…. 비극적 순간을 행복한 순간으로 전환하는 위트가 기발했다. 주연배우 애드리언 브로디의 표정에서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기를 불길하게 여겨 죽였던 원시시대 사람들의 모습이 연상됐다. ‘스플라이스’는 극장을 나와서 한번쯤 더 돌이켜 볼만한 생각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영화다. 관객이 영화의 주제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도록 만들려면 감각적으로 극단적인 자극을 줘야 한다. 나는 그래서 “자극적 표현을 일삼는다”는 비판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
▽내털리=코미디와 폭력을 동시에 보여주는 장면이 박 감독의 영화에 많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의도 때문인가.
▽박=그렇게 모순적인 조화의 순간을 만드는 것이 내가 영화를 만드는 이유이자 목표다. 그런 방법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을 관객과 나눌 수 있다.
▽내털리=박 감독을 세계 시장에 통하게 만든 특별한 강점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미 영화시장 관객은 감각적 자극에 집중하는 ‘B급’ 영화와 지적 성찰을 담은 예술영화를 완전히 분리해서 소비한다. 영화관도 확실하게 나눠져 있다. 박 감독이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이유는 그런 관습을 깬 의외성의 힘이 컸을 것이다.
▽박=‘큐브’도 감금된 인간의 심리에 대한 분석을 폭력적 장면을 통해 엮어낸 작품 아니었나. 야만적 폭력과 심도 있는 철학의 거리가 멀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털리=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에서 영향을 받은 시나리오였다.
▽박=인간의 유전자에 본능적 공격성이 있다는 암시를 주는 ‘스플라이스’의 실험실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폭력적 본성을 타고난 캐릭터를 내 영화에 등장시킨 적은 없다. 하지만 인간에게 그런 면이 어느 정도 있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내털리=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지만 분명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암시를 넣었다. 오래 전에 ‘전쟁은 언제쯤 사라질까’라는 주제를 다룬 라디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청취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많은 미국인을 인터뷰해서 만든 것이었는데 ‘전쟁이 언제쯤 사라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80% 이상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공격적인 본성을 없애기 어렵다는 얘긴데, 기묘한 결과를 보인 자연 실험이 거기에 덧붙여져 흥미로웠다. 아프리카에서 원숭이를 대상으로 실시했던 실험이다. 많은 원숭이가 갇혀 있는 우리에 처음에는 먹을 것이 가득 든 상자를 언제든 열 수 있도록 놓아 뒀다. 원숭이들은 매우 평온하게 좁은 공간에서 잘 지냈다. 하지만 음식 공급을 제한하자 곧 수컷들이 싸움을 벌이더니 결국 모두 다 죽었다. 여기부터가 재미있다. 암컷만 남은 우리에 새로운 수컷들을 집어넣자 싸움이 벌어지지 않은 거다. 먼저 터를 잡은 암컷들이 신참 수컷들을 싸우지 않고 잘 지내도록 교육시켰기 때문이다. ‘여자 말을 잘 듣는 것’이 평화의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웃음)
▽박=하하. 그러고 보니 영화 속에 나온 다른 돌연변이 생명체는 인간 유전자가 섞이지 않았는데도 죽도록 싸웠다. 수컷으로 성이 바뀌자마자 그랬지. 내털리 감독은 인간 유전자가 문제가 아니라 남자들이 문제라고 생각하나보다.
▽내털리=농담 같지만 나름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렇게 진지한 주제의 장르영화를 만들기는 갈수록 어려워진다. 심각한 얘기는 아예 처음부터 안 먹힌다. 보드게임이나 TV 퀴즈쇼 같은 스타일의 가벼운 이야기만 환영받는 세상이다. ‘스플라이스’도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10년이 지나도록 미국에서 투자사를 찾을 수 없었다. 영화제 때문에 포르투갈에 갔다가 우연히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을 만났고, 그를 통해 프랑스 고몽 영화사의 도움을 받아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헬 보이’, ‘판의 미로’ 등을 연출한 델 토로 감독이 ‘스플라이스’의 제작을 맡았다.) 그에게는 조금 더 상업적이고 보편적인 스타일로 시나리오를 수정할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박 감독에게는 혹시 너무 만들고 싶은데 영화 제작을 허락받지 못한 시나리오가 없는지…?
▽박=영화감독으로서 꿈이 하나 있다. 미국 서부개척시대 인디언 대학살을 다룬 대작을 만드는 거다. 갈수록 요원해지는 꿈이다. 한국 투자사는 쳐다보지도 않을 내용이고, 할리우드 스튜디오도 웨스턴의 시대는 갔다고 생각하니까. 인디언이 주연이라 더 어려울 거다.
▽내털리=꼭 보고 싶다. 고비를 하나 넘으면 더 큰 기회가 찾아오지 않겠나. 요즘 나는 SF 소설 ‘뉴로맨서’를 원작자 윌리엄 깁슨과 함께 각색하고 있다. 수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복잡한 이야기라 골치가 너무 아프다.
▽박=각색이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한 소설인데 놀랍다. 그 작품을 잘 각색할 수 있다면 영화로 만들지 못할 작품이 없을 거다.
▽내털리=맞다. 아마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도 각색할 수 있게 되겠지…. 하하. ‘뉴로맨서’의 수많은 원작 팬도 부담이 된다. 어떻게 만들든 비난을 퍼부을 테니까. 원작자 깁슨이 개방적으로 토론에 응해줘 다행이다. 소설에서 모호하게 마무리된 결말 부분의 내용을 조금 명확하게 정리하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내가 책을 읽으며 나름대로 이해했던 결말을 이미지로 구성하고 있다. 솔직히 제작비가 고민이다. ‘박쥐’ 제작에 500만 달러(약 60억 원)를 썼다는 게 정말인가. 믿을 수 없다…. 그보다 5~10배 정도는 들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노하우를 좀 배우고 싶다. 가능하다면 아예 일부 장면을 한국에서 찍는 것도 고려할 수 있을 것 같다.
▽박=한국에서 작업한다면 관계 기관을 통해 글로벌 펀드의 투자를 받을 방법이 있을 거다. 한국에는 지적인 소설은 굉장히 많은데 장르영화로 만들 만한 작품은 만나기 어렵다. 윌리엄 깁슨 외에 또 어떤 SF 작가를 좋아하는지? 혹시 중국 작가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라는 단편집을 읽어봤나.
▽내털리=두 명의 초능력자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읽어봤다. 그 작가를 좋아한다면 지난해 세상을 떠난 영국 소설가 제이 지 발라드의 작품을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슈퍼 칸’, ‘러닝 와일드’ 같은 작품은 박 감독이 정말 좋아할 거다. 어른들이 갑자기 모두 죽어버려서 아이들만 남겨진 도시의 이야기 등을 다뤘다. 그 작가의 ‘하이 라이즈’라는 작품도 영화화할 계획이다. 고층 빌딩에 사는 사람들이 문화적. 생체적 퇴화를 겪는다는 줄거리다. ‘스플라이스’의 흥행 결과에 여러 작품의 운명이 달려 있다.
▽박=크로넨버그 감독은 ‘토탈 리콜’을 만들려 하다가 결국 끝을 보지 못하고 폴 버호벤 감독에게 메가폰을 넘겼다. 그런 전철을 따라 밟지 말고 ‘뉴로맨서’를 꼭 끝까지 완성해 주길 바란다.
▽내털리=크로넨버그의 ‘토탈 리콜’ 시나리오는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상으로 만들어졌다면 정말 흥미로웠을 거다. 내 인생을 건 대 도전인 ‘뉴로맨서’와 박 감독의 꿈인 ‘인디언 대학살’…. 두 작품을 위해서 건배하자.(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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