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만취 상태에서 경황없이 저지른 행동이라 해도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결코 용서될 수 없는 행동이다. 여기에 진실을 은폐하려는 거짓말까지 했다면 사태는 더 심각하다. 드라마 ‘내조의 여왕’을 통해 늦깍이 인기를 얻은 뒤 현대물과 사극을 오가며 폭넓은 연기력으로 사랑을 받던 연기자 최철호(40). 그는 본인의 표현을 빌리면 “인기를 지키려는 비겁하고 얄팍한 생각”에서 말한 거짓말로 인해 기자회견에서 대중들에게 ‘공개 사죄’까지 했다. 그동안 꽃중년 스타의 대표 주자로 사랑받던 그가 왜 지금 연기활동을 그만둘 수도 있는 배우 인생 최대 위기를 맞게 됐을까.
11일 기자회견을 자청한 최철호의 얼굴은 며칠 간 잠을 이루지 못한 듯 푸석했다. 이날 오후 6시 회견장인 서울 반포 팔래스 호텔 다이너스티홀에 도착한 그는 먼저 카메라를 향해 몇 초간 허리를 숙이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이어 가슴에서 준비한 종이를 꺼내 읽어 내려가면서도 연신 “죄송합니다”라고 말했고, 팬들에 대한 미안함과 가족들에게 대한 죄스러움을 전할 때는 눈시울을 붉혔다.
● 최철호 “피해 여성은 연기자 지망생…술이 일으킨 잘못”
그동안 이번 파문을 두고 관심을 모았던 것은 폭행을 당한 여성과 최철호가 어떤 관계인가하는 점이다. 그는 처음에는 술자리에 동석한 후배 연기자 손일권의 여자친구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곧 거짓으로 드러났다. 더구나 폭행을 당하고도 피해 여성이 경찰에 최철호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밝히면서 사건 조사는 사실상 종료돼 그 배경에 궁금증이 쏠렸다.
이에 대해 최철호는 피해 여성이 “무명이지만 연기를 하고 싶어 하는 후배며, 현재 출연하고 있는 드라마 ‘동이’의 열성 시청자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가 밝힌 피해 여성에 대한 설명은 여기까지. 기자들이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질문을 했지만 최철호는 “식사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지 않는가. 그런 후배 중에 하나”라고 더 이상의 언급을 피했다. 최철호는 ‘후배’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한 이유에 대해 ‘술이 부른 큰 잘못’이라고 밝혔다. 최철호는 “당시 (여자 후배의) 말들이 거슬렸고, 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 연기에 대한 것이 많았던 듯 하다”고 밝혔다.
● 폭행보다 더 큰 비난 일으킨 거짓말, “인기 잃을까 두려웠다”
8일 여자 폭행 논란이 불거졌을 때 최철호는 소속사를 통해 “억울하다. 나는 여자를 때린 적이 없으며 오히려 피해자다. 술자리에서 나도 행인들에게 한 차례 맞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다음 날인 9일 SBS ‘8 뉴스’에서 폭행 장면이 담긴 CCTV 동영상이 방송되고, 이어 SBS 홈페이지에 경찰 지구대에서 조사를 받던 최철호의 행동을 담은 영상까지 공개되자 뒤늦게 사실을 인정했다.
최철호는 이에 대해 “지난해 잠깐 얻은 인기를 잃을까 두려웠다. 저를 포장하는 실수까지 저질렀다”며 “변명으로 용서가 안 될 행동이란 점임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동안 언론의 취재 과정에서 그의 폭행설을 여러 차례 강력하게 부인한 소속사의 주장 역시 자신이 거짓말로 둘러대 속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 ‘눈물의 기자회견’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누리꾼들은 사건이 알려지자 ‘사건 수습에 급급해 거짓말을 한 것이 결국 더 큰 논란을 발생시켰다’ ‘어떻게 거리에서 여성을 폭행할 수가 있냐’며 강하게 비판을 했다. 최철호가 출연 중인 MBC 드라마 ‘동이’ 시청자 게시판에는 하차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최철호는 10일 오후 ‘동이’ 시청자 게시판에 글을 올려 “공인으로서 큰 실수를 했고, 그 실수를 처음부터 솔직하게 고백하지 못한 저의 허물 때문에 동이라는 작품에 큰 누가 되어 더욱더 죄송스럽습니다”라고 사과를 했다.
그러나 이 사과문 이후에도 여론은 그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현재 드라마 ‘동이’측은 이번 사안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동이’ 관계자는 “민감한 상황이라 아직 출연 여부에 대해 확답할 수 없다”며 “본인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제작진과 상의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최철호는 기자회견에서 “제작진의 결정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며 거취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가 눈물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한 이번 기자회견을 드라마 애청자들과 팬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따라 앞으로 최철호의 연기 활동 여부가 좌우될 전망이다.
허민녕 기자 justin@donga.com 김민정 기자 ricky337@donga.com 사진|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