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새 월화드라마 ‘나는 전설이다’는 법조 명문가에 시집가 조신하게 살던 전설희(김정은)가 시댁과 갈등 끝에 이혼을 선언한 뒤 여성 밴드의 리드보컬로 새 인생을 개척한다는 줄거리다. 사진 제공 SBS
가정의 울타리에 머물러 있던 평범한 30대 여성이 가수의 꿈을 키운다는 줄거리의 드라마가 최근 잇따라 방영되고 있다.
지난달 31일 처음 방송된 MBC 주말드라마 ‘글로리아’에서는 나이트클럽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생계를 꾸리는 서른 살 나진진(배두나)이 우연히 대타로 나이트클럽 무대에 오른 뒤부터 가수의 꿈을 키워간다. 2일 처음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나는 전설이다’는 여고시절 록 밴드 활동을 하다 상류층에 시집가 조신하게 살던 전설희(김정은)가 시댁과 갈등을 겪다 이혼 선언 뒤 여성 밴드의 리드보컬로 새 인생을 개척한다는 내용이다. 6월부터 방영 중인 KBS2 주말드라마 ‘결혼해주세요’에서는 가족 뒷바라지만 하다 남편에게 무시 받던 주부 남정임(김지영)이 노래 경연대회에서 우승해 영국의 수전 보일 같은 스타가 된다는 내용이 전개될 예정이다.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은 왜 30대 여성이고, 하필 음악으로 새 인생을 열어갈까. 학자와 문화평론가들은 이 드라마들이 일과 살림을 병행하면서도 사회적으로 위축돼 있는 30대 여성의 불안한 심리와 환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김봉석 문화평론가는 “요즘 한국의 30대 여성은 직장을 다니거나 살림을 하면서도 ‘이게 맞는 길인가’라는 회의와 ‘진정 좋아하는 일을 할 순 없을까’라는 욕망이 뒤섞여 정신적 갈등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유성경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결혼 후 일과 살림을 병행해야 하는 한국의 30대 직장여성은 자기 삶의 변화 가능성을 접을 수밖에 없다. 드라마는 이들의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MBC 새 주말드라마 ‘글로리아’는 지능이 다섯살에 머물러 있는 언니를 돌보며 나이트클럽에서 허드렛일로 생계를 꾸려가는 나진진(배두나)이 우연히 대타로 무대에 오른 뒤 가수의 꿈을 키워 간다는 내용이다. 사진 제공 iMBC 이 드라마들은 현실의 30대 여성들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준다. 커리어와 가정 가운데 불가피하게 한쪽을 포기한 현실의 30대 여성들이 극중 주인공이 돌파구를 찾아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위안을 찾는다는 것.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20대는 첫 직장이나 학업이 적성에 맞지 않으면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지만 30대는 이미 안정된 ‘인생의 트랙’ 위에 올라와 있어야 하는 세대다. 그 트랙에서 빠져나와 일탈하려면 엄청난 ‘실존적 결단’이 요구되는 만큼 이런 드라마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드라마와의 차별성도 있다. 현택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 드라마들은 기존 ‘신데렐라 스토리’와 비슷해 보이지만 부유한 남성의 도움이 아닌 여성 스스로의 힘으로 성공을 이뤄간다는 점에서 독립의 욕구를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2008년 ‘베토벤 바이러스’의 성공 이후 음악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한층 친근해졌다는 점도 작용하고 있다. 음악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만들기가 어렵지만 완성도가 뒷받침된다면 그만큼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유독 ‘가수’로 성공한다는 스토리가 잇따르는 것은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 30대 여성의 주목받고 싶어 하는 심리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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