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이름이 없다. 그냥 ‘킬러’다. 임무도 알 수 없다. 감독은 그의 여정에 훌쩍 동승하길 권한다. 사진 제공 스폰지
짐 자무시 감독(57)은 캐스팅을 먼저 진행한 뒤 기용된 배우에 맞게 각본을 쓰는 작업 방식으로 유명하다. 12일 개봉하는 ‘리미츠 오브 컨트롤’도 존 허트, 빌 머리, 틸다 스윈턴 같은 배우들과의 출연 협의가 먼저 이뤄졌다.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가 사랑하는 자무시 감독의 부름에 배우들은 두말없이 달려왔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이 배우들처럼 반색할지는 미지수다. 상업영화 틀에서 벗어나는, 느린 템포의 사색적 영화를 즐기지 않는 사람에게 이 영화는 116분짜리 수면제일 뿐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개별적으로 지닌 삶에 대한 시각이 다른 누구와도 다르다는 점, 그것이 나를 매료시킨다”는 감독의 말에 동의하는 관객에게 이 영화는 다른 어떤 영화와도 다른 특별한 선물이다.
주인공은 킬러다. 그는 알 수 없는 임무를 띠고 스페인 곳곳을 떠돈다.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은 누구도 자신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이렇다할 질문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저 바이올린, 분자(分子), 오페라 등 각자의 관심사에 대해 멋대로 떠들다가 사라진다. 이름을 떠올리기 어려운 지인(知人)에 대한 기억을 ‘폭탄주, 초콜릿, 노래방’ 등을 매개로 살려낸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는 모호하다. 자무시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여행’을 그렸다. 목적 없이 떠난 여행에도 늘 의미가 있는 법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