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주양(류승범·왼쪽)과 형사 최철기(황정민)의 대결은 ‘부당거래’의 겉포장일 뿐이다. 영화의 초점은 사회의 부조리에 휘말려 무너지는 인간 군상에 대한 ‘연민’에 있다. 사진 제공 영화인
《기시감(旣視感). 28일 개봉하는 ‘부당거래’ (18세 이상 관람가)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들었던 생각은 ‘에이 또 검사, 형사, 조폭인가’였다. 탁월한 수사 능력을 가졌지만 학맥 연줄이 없어 승진 심사에서 번번이 물을 먹는 형사 최철기(황정민), 법조계 원로 실세인 장인 덕에 능력 이상으로 승승장구하는 검사 주양(류승범), 두 사람 사이를 오가며 힘겨루기의 무게 추 역할을 하는 조직폭력배 장석구(유해진)의 얽히고설킨 대결.》 ‘경찰, 검찰, 범죄자의 추격전, 총싸움 칼싸움 액션에 선악의 경계를 흩뜨리는 비리 이야기를 적당히 버무렸겠지….’
섣부른 편견이었다. 검찰, 경찰, 범죄자가 등장했던 최근 어떤 영화보다도 피비린내가 적다. 인체를 난도질하는 잔혹한 범죄 현장 묘사도, 총칼이 난무하는 마구잡이 싸움질도 없다. 몇 차례 주먹다짐이 있을 뿐, 문맥상 필요한 총격과 칼질 장면은 슬쩍 은유적으로 처리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상처를 눈앞에 들이대듯 보여주던 요즘 다른 액션영화와는 다르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 느껴지는 마음속 잔향은 훨씬 깊고 크다.
지난 주말 사석에서 만난 영화 팬 두 사람은 이구동성 “류승완 감독(37)의 대표작은 데뷔작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년)”라고 했다. 그의 7번째 장편인 ‘부당거래’는 관객의 그런 생각을 바꿀 수 있을 회심의 수작이다. 25일 오전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류 감독에게 팬들의 의견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는 “유명함과 유능함은 다르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다”고 말했다.
“포스터에서 내 이름을 되도록 작게 새기고 배우들만 부각시키자는 의견을 냈다. 내 영화라고 하면 일단 무조건 ‘배우들이 돌려차기 많이 할 걸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내가 저질러놓은 영화들이 그랬으니 누구 탓도 할 수 없다. 하하.”
‘아라한 장풍대작전’ ‘짝패’ 등의 전작은 대개 ‘흥미롭고 경쾌하지만 허술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때로는 이야기의 짜임새에, 때로는 캐릭터 설정의 디테일이나 에피소드의 개연성에 대한 지적이었다. 10년 전 자신이 만든 코미디영화를 리메이크한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2008년)에서는 자만과 안주의 기미까지 보였다.
“데뷔작에서 ‘사람 사는 게 의지대로만 되는 게 아니다’라는 얘기를 했다. 그런데 다들 불가능하다 했던 영화를 20대 때 만들어 좋은 평가를 들으니 ‘나는 할 수 있다’는 기분에 젖었다. ‘다찌마와 리…’가 흥행에 실패하고 나서 정말 많이 힘들었다. 맘대로만 안 되는구나 싶더라.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맞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부당거래’는 상영시간 내내 ‘사람’을 주시한다. 성공을 위해 조폭을 기용하고 가짜 범인을 만들어내는 형사 최철기의 사연은 공분(公憤)보다 연민 어린 공감을 자아낸다. 시사회장을 한참 벗어나 곰곰이 되씹게 된 대사는 ‘식구’였다. 이 영화에서는 유난히 ‘식구’라는 단어가 자주 들린다. 경찰도, 검찰도, 조폭도 모두 주변의 동료를 식구라고 부른다. 인물들은 하나같이 그 식구를 책임져야 한다는 일념으로 좌충우돌 부딪치다가, 배신하고, 배신당하고, 처절히 무너진다. 표면에 드러난 소재만으로 사회고발 드라마로 바라볼 때 ‘부당거래’는 그리 흥미롭지도 새롭지도 않다. 치밀한 현장취재로 빚어낸 장면들 속에 감춰진 한 유사 가장(家長)의 몰락 이야기. 그것이 이 영화가 류승완의 전작과 구별되는 전환의 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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