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매체는 비판의 칼날을 바짝 세울 것이고, 영화사는 ‘첫술에 배부르겠느냐’며 야속한 심정을 토로할 것이다.
12월 2일 개봉하는 장동건 주연의 ‘워리어스 웨이’(15세 관람가).
최근 몇 년 새 한국 배우의 해외시장 진출 영화가 공개될 때마다 벌어졌던 익숙한 상황이 다시 한 번 그대로 반복되게 생겼다. 전지현이 2009년 ‘블러드’에서, 정지훈(비)이 2008년 ‘스피드 레이서’와 다음 해 ‘닌자 어쌔신’에서 밟았던 불운한 전철을 장동건도 뛰어넘지 못했다. 그가 한국에서 쌓은 배우로서의 경력과 평판을 감안하면 결과는 두 후배들보다 참혹하다.
수입배급사인 SK텔레콤이 이 영화를 알리기 위해 전면에 내세운 다국적 제작진의 면면은 얼핏 화려하다. 우선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배리 오스본이 제작자로 이름을 올렸다. 케이트 보즈워스(슈퍼맨 리턴즈), 제프리 러시(캐리비안의 해적) 등 지명도 있는 할리우드 배우들이 조연으로 출연했다. 김우형 촬영감독은 ‘바람난 가족’ ‘얼굴 없는 미녀’ ‘시라노; 연애조작단’ 등에서 세련된 영상미를 선보인 베테랑이다.
하지만 연출을 맡은 이승무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2003년 정준호가 주연한 사극액션 ‘천년호’의 각본을 쓴 것이 전부다. “거의 모든 촬영이 진행된 뉴질랜드 스튜디오에서 바통 터치한 다음 작품이 블록버스터 시리즈 ‘나니아 연대기’였다”는 사실이나, “20여 년 전 ‘마지막 황제’로 아카데미 의상상을 받은 스태프가 참여했다”는 것까지 강조하는 모습은 기대요소라기보다는 불안요소였다. 그리고 그 불안은, 영화가 시작되고 5분여 만에 현실이 됐다.
장동건이 맡은 주인공은 ‘텅빈 눈동자’라는 별명을 가진 이름 없는 워리어(warrior·전사)다. 첫 전투 장면부터 일휘소탕혈염산하(一揮掃蕩血染山河)를 실현한 이 동양인 전사는 ‘인류 역사상 최강의 검사’를 단칼에 무찌르고 그 호칭을 빼앗는다. 싸움이 판가름 나는 것과 동시에 스크린에 나타났던 ‘인류 역사상…’이라는 설명자막이 사망한 적으로부터 장동건 쪽으로 친절하게 이동한다. 초반 3분여의 이 배경 요약 부분은 ‘버추어 파이터’ ‘철권’ 등의 비디오 전투게임을 해본 관객에게는 익숙한 도입부다. 영화는 이런 게임과 마찬가지로 ‘피로 물든 과거를 뒤로한 채 인간다운 삶을 다시 시작하려 했던 주인공이 운명의 힘을 거스르지 못하고 다시 처절한 싸움의 소용돌이로 말려들어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처음부터 아예 드러내놓고 ‘이건 그저 가벼운 게임 같은 영화’라고 밝히는 셈. 얼기설기 짜 맞춘 엉터리 스토리나 배우들의 어색한 연기에 대해서는 불평하지 말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럭저럭 매끄러운 컴퓨터그래픽 시각효과와 실감나는 사운드 등 할리우드 기술로 빚어낸 영화의 만듦새를 즐기는 데 집중해야 할까.
그러나 ‘반지의 제왕’이 전 세계 관객의 환호를 얻은 것은 영화의 외양만큼 탄탄한 이야기 덕분이었다. 10월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워리어스 웨이’ 제작자 오스본은 “이승무 감독이 직접 쓴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이야기의 매력’에 끌렸다”고 했다. 이 영화를 보고 난 관객은 대부분 그가 손님으로서 예의를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다국적 제작진이 함께 만들어서인지 세계 여러 나라의 유명 영화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적잖다. ‘킬 빌’ ‘퀵 앤 데드’ ‘쿵푸허슬’ ‘하이눈’ 그리고 ‘반지의 제왕’…. 가장 최근의 닮은꼴 영화는 갑옷 입고 칼을 든 소녀 전사를 등장시켰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다. 그 정신없는 혼혈교배 결과의 감흥은, 서글프다. 장동건이라는 배우는 훨씬 더 짜임새 있는 영화를 통해 한국이 세계에 자랑해야 할, 아주 좋은 배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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