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1월29일 오후 2시1분 버마(현 미얀마) 근해 상공. 이라크 바그다드를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KAL) 858편 보잉 707기가 공중에서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중동에서 일하던 근로자 등 승객 95명과 승무원 20명 등 115명이 한순간에 목숨을 잃었다.
그로부터 15일이 지난 12월13일 양곤 동남쪽 해상에서 발견된 KAL기 잔해는 이 비행기가 공중폭발했음을 말해주었다. 수사 결과, 하치야 신이치와 하치야 마유미라는 일본인 ‘부녀’로 위장한 북한 공작원 김승일과 김현희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국민은 가눌 수 없는 충격 속에서 분노했다.
1989년 오늘, KAL기 폭파 사건과 김현희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마유미’가 프랑스 파리에서 촬영의 첫 삽을 떴다. 당시 ‘마유미’의 영화화와 여주인공 김현희 역을 누가 맡을지를 두고 큰 사회적 화제를 모았다. 사건의 중대성과 비극성 때문이었다. 1978년 1월 부인인 배우 최은희에 이어 같은 해 7월 납북돼 8년의 세월을 북에 갇혀 살다 탈출한 신상옥 감독의 복귀작이란 점도 주목을 받은 큰 이유였다.
신상옥 감독은 11월7일 서울 아미가호텔(현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민족의 비극을 집약하는 ‘반 테러’ 영화”로 ‘마유미’를 소개했다. 제작발표회에는 미국과 일본 등 외신기자 40여명이 참석해 KAL기 폭파 사건의 영화화에 대한 비상한 관심을 드러냈다.
제작사는 이에 앞서 여주인공을 맡을 여배우를 비공개 모집, 중앙대 연극영화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서라(본명 김영림)를 선발했다. 김현희보다 7살 어린 김서라는 외모는 물론 163cm의 키와 54kg의 몸무게, O형의 혈액형까지 김현희와 빼닮아 또 다른 화제를 모았다.
김서라는 “신문과 잡지에 실린 김현희 및 KAL기 사건 관련 기사를 정독하며 성장 과정과 습관 등을 분석”하고 최은희의 지도로 연기는 물론 일본어도 익혔다.
김서라와 신상옥 감독 등 제작진은 14억원이라는 당시로서는 대규모의 제작비를 들여 5개월 동안 17개국 로케이션을 거쳤다. 그리고 이듬해 5월 모든 제작 일정을 종료하고 6월9일 개봉했다. 7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비행기 폭파 장면 등을 미국에서 특수촬영하기도 했다. 그 필름 양만 10만자로 일반 극영화 10편을 합친 것이었다고 당시 언론들은 전했다.
23일 북한이 서해 연평도를 포격하고 도발했다. 그 도발이 되새기는 또 다른 분노 속에 KAL기 폭파 사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