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문희, 남정임과 함께 ‘트로이카’를 형성하며 인기를 누린 배우 윤정희에게 2010년은 특별한 한 해로 기억될 만하다.
10월29일 열린 제47회 대종상 영화제를 비롯해 청룡영화상에서까지 영화 ‘시’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으니 말이다. 그는 1994년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만무방’ 이후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해 똑같은 영광을 안았다.
윤정희는 전성기 시절, 한국 배우들 가운데 “가장 지적이고 성실한 배우로 평가받았다”고 한국영상자료원은 기록하고 있다. 중앙대에서 연극영화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프랑스 파리로 2년 예정의 유학을 떠나며 영화에 대한 열정을 학문으로 이어갔던 그녀였으니 이런 평가는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결혼과 함께 은퇴한 문희와 남정임에 이어 유학으로 인한 윤정희의 공백은 충무로 관계자들에게 커다란 아쉬움을 남겼다.
1973년 오늘, 윤정희가 영화 ‘야행’ 출연을 결정했다. 그해 5월26일 프랑스 파리3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떠났던 윤정희는 오랜 고민 끝에 김수용 감독의 ‘야행’에 출연키로 했다.
20여 일 뒤 파리에서 일시 귀국한 그녀는 김수용 감독의 연출 아래 신성일과 호흡을 맞췄다. 그녀와 절친했던 최은희, 엄앵란, 문희, 고은아 등 동료가 귀국을 환영하는 조촐한 파티를 열어주기도 했다.
겨울방학을 맞아 잠시 돌아온 윤정희의 국내 체류 일정이 워낙 짧아 영화는 18일 만에 촬영을 마쳤다. 당시로써는 최단 기간 촬영한 영화였다. 상대배우 신성일은 촬영에 앞서 윤정희와 수시로 전화통화를 하며 연기에 대해 의논을 하기도 했다.
영화 ‘야행’은 한 여성의 성과 결혼, 욕망을 그린 이야기. 고교 시절 교사와 사랑에 빠져 아이까지 낳았지만 그가 베트남전에서 목숨을 잃은 뒤 직장 동료와 동거를 시작한 여자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성적 판타지를 그렸다.
하지만 당국의 제작신고 뒤 허가를 받지 않고 제작된 영화를 규제하는 이른바 ‘사전제작 제재’에 묶여 ‘야행’은 3년 가까이 창고에 갇혀 있어야 했다. 제재가 풀린 후 영화는 검열 과정에서 무려 53곳이 잘려나간 채 1977년 4월 개봉했다.
윤정희는 ‘야행’ 촬영을 마치고 1974년 2월5일 다시 파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같은 해 7월 말 귀국해 ‘꽃상여’와 ‘황혼’ 등 영화 촬영을 이어갔다. 역시 방학을 이용한 영화 촬영이었지만 윤정희는 10월에 다시 귀국, 영화와 드라마 등에 출연했다. 프랑스 영화 유학이 일시 중단된 셈이었다.
파리 유학 시절 윤정희는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를 만나 교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1976년 결혼해 다시 파리로 건너갔다. 영화 공부를 재개한 그녀는 마침내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