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독립영화제 최우수작 ‘혜화, 동’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8일 03시 00분


18세 부모… 감당하기엔 너무 어린 사랑의 무게

영화 ‘혜화, 동’의 제목은 주인공 혜화(유다인)가 겨울 동안 겪은 사랑 이야기라는 뜻이다. 사진 제공 인디스토리
영화 ‘혜화, 동’의 제목은 주인공 혜화(유다인)가 겨울 동안 겪은 사랑 이야기라는 뜻이다. 사진 제공 인디스토리
속치마가 보이도록 발버둥치며 울어야 꼭 슬퍼 보이는 건 아니다. 때론 눈물을 꾹꾹 눌러 가슴에 담는 게 관객에게 더 큰 울림을 준다.

민용근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혜화, 동’(17일 개봉)은 사랑의 의미를 조용히 읊조리는 영화다. 사랑에 실패한 여자 주인공 혜화(유다인 분)는 ‘내가 이렇게 슬픈데 왜 몰라주느냐’고 울부짖지 않는다. 대신 떠나간 연인이 찾아오자 다시 담담히 받아들일 만큼 웅숭깊다.

영화의 초반 분위기는 스산하기만 하다. 철거를 앞둔 재개발 지역의 겨울 풍경을 배경으로 실패한 사랑을 그린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올 때쯤이면 주인공들의 조용한 울음을 이해하고 따뜻한 메시지에 공감하게 된다.

18세 고교생 혜화와 한수(유연석)는 사랑했지만 혜화가 임신을 하자 한수는 어디론가 떠나버린다. 5년이 지난 어느 날 다시 찾아온 한수는 죽은 줄 알았던 둘 사이의 아이가 입양됐다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혜화의 주변을 맴돈다.

아이와 함께 지워졌던 사랑이 다시 찾아오자 냉정하게 대하는 혜화지만 한수와 같은 매니큐어를 칠한 손톱을 잘라 간직할 만큼 그의 사랑은 뿌리 깊다. 동물병원에서 일하며 재개발 지역의 떠돌이 개들을 돌보는 혜화는 마음에 두고 있던 다른 사람이 떠나자 한수에게 점점 흔들린다. 혜화는 입양된 아이를 그 부모 몰래 데려오지만 그 뒤에는 또 다른 사연이 기다리고 있다.

영화는 두 사람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교직하며 그들이 타의에 의해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그린다. 18세, 너무 어렸기에 두 사람은 사랑의 결과를 감당할 수 없었고 주변은 그들을 갈라놓는다.

민 감독은 이 영화로 지난해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 감독상과 서울 독립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기름기를 뺀 사랑에 대한 담담한 묘사는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를 연출한 허진호 감독을 떠올리게 한다. 감독은 이 영화에서 ‘양념(음악, 특수효과, 카메라 워크)’은 최대한 배제하고 관객이 사랑의 의미란 ‘재료’ 맛을 최대한 곱씹게 한다.

주연을 맡은 두 배우는 이렇다 할 필모그래피를 내세우기 힘들지만 절제된 연기를 선보인다. 유다인은 몇몇 TV 광고에 얼굴을 비쳤으며, 유연석은 ‘올드보이’에서 유지태의 아역으로 나왔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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