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의 주인공 ‘훈’은 세상의 기준을 따르는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냐고 묻는다. 사진 제공 보람엔터테인먼트(왼쪽),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 역 현빈(가운데),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의 주인공 ‘그’는 일상에 흔히 존재하는 이별이 대체 무엇인지 묻는다. 사진 제공 봄(오른쪽)
《현빈이 주연한 영화 ‘만추’(17일 개봉),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3월 3일)가 잇따라 스크린을 공략한다. 현빈이 드라마 ‘시크릿 가든’과 해병대 자원입대로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서면서 두 영화도 자연스레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됐다. 두 영화를 소재로 ‘시크릿 가든’ 주인공인 ‘까도남(까칠한 도시 남자)’ 김주원과 ‘만추’의 주인공 ‘훈’, ‘사랑한다…’의 주인공 ‘그’가 가상 문답을 나눴다.》
▽주원=언제 적 ‘만추’인데 또 ‘만추’야.
▽훈=1966년 이만희 감독의 ‘만추’에서 모티브를 가져왔지만 이번 ‘만추’는 다른 영화야. 여자 모범수가 특별 휴가를 나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만 빌려왔을 뿐이지. 영화의 배경이 미국 시애틀이라는 점도 모던한 분위기가 나는 ‘요즘 영화’라고 할 수 있어.
▽주원=요즘 관객들은 ‘거품 키스’ ‘문자왔숑’ 같은 장면이 나오는 로맨틱한 영화를 기대하는데, ‘만추’에서는 재소자인 여자 주인공 ‘애나’(탕웨이)와 제비족 ‘훈’의 비극적 사랑이라니, 이게 웬 신파야.
▽훈=사랑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신파잖아. 누군가의 마음을 얻고 싶어 마음 졸이고, 애달프고…. 사랑은 뭔가 결핍돼 있을 때 더 간절하고 애틋하지. 어떤 철학자는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경제적 이해관계라고 했고, 다른 철학자는 권력을 향한 의지라고 했지만 두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결핍이야. 첫사랑에게 배신당하고(애나), 돈으로만 사랑을 파는(훈) 두 사람의 사랑 결핍…. 두 사람의 사랑이 그래서 더 눈에 뜨이지.
▽주원=‘사랑한다…’는 웬 쿨한 척하는 이별 이야기?
▽그=실제로 이별이 어떻게 진행되는가에 천착한 영화야. 일상의 한 토막을 그대로 떼다 옮겨놓은 듯한 이야기를 통해 이별을 준비하는 부부의 심리적 갈등을 담았지. ‘사랑한다’는 부부에서 ‘사랑하지 않는다’는 남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이 생생하지 않나.
▽주원=사랑을 제대로 표현은 한 거야?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든 영화라고 보기에는 두 영화 모두 초반부의 힘이 떨어져.
▽훈=‘만추’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관객들이 ‘아, 저래서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겠구나’라고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고 봐. 사랑에 관한 영화의 성패는 연인들의 감정 선을 얼마나 섬세하게 그려내 관객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가에 달려있다고 봐. 그런 면에서 ‘만추’는 성공한 영화이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도 객석에 남아 여운을 곱씹게 하는 묘미가 있지.
▽그=‘사랑한다…’ 초반에 계속되는 롱테이크 장면을 견디고 배우들의 미세한 동작과 표정의 변화를 따라가 봐. ‘그’가 불 붙여준 담배를 물고 ‘그녀’가 ‘그’의 가슴을 칠 때 관객들도 공감할 거야. 하지만 변변한 음악도 없고 카메라 테크닉도 생략한, 불편한 이 영화에 관객이 얼마나 인내심을 가질지는 의문이야. 실험성에 비해 메시지도 약해 보이고….
▽주원=그쪽 연기는 최선인 거야? 확실해?
▽훈=훈은 외롭지만 외롭지 않은 척하는, 괜히 껄렁거리며 슬픔을 안으로 삼키는 인물이야. 이런 캐릭터를 나름대로 잘 소화했다고 생각해. 탕웨이도 힘 있는 연기를 보여줬지. 첫사랑에게 배신당하고 살인 누명까지 쓴 애나를 메마른 입술과 떨리는 눈동자로 표현했지. 그런 점에서 ‘만추’는 훈의 영화라기보다는 애나의 영화라고 할 수 있어.
▽그=‘그’의 연기는 뭔가 부족한 점이 보여. ‘그녀’는 ‘그’가 이별을 무덤덤해할 만큼 이기적이라고 불평을 늘어놓았는데, 정작 ‘그’가 갑작스레 양파의 힘을 빌려 눈물을 훔치는 장면은 어색하지. 반면 ‘그녀’는 바람을 피운 가해자의 입장에서 흔들리는 감정이 잘 드러나. 아무튼 베를린 영화제가 ‘사랑한다…’에 주목한 이유는 몇 시간 동안 두 사람의 심리변화를 파고든 실험성에 있어. 이 점을 주의 깊게 봐 줬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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