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공포 대신 철학적 물음을 던지는 영화 ‘더 라이트: 악마는 있다’의 주연 배우 앤서니 홉킨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2005년 작 ‘콘스탄틴’은 엑소시즘(퇴마의식)을 담은 작품. 이 영화는 세상을 뒤흔들어 쑥대밭으로 만드는 악마의 모습을 화려한 비주얼로 묘사한다. 이제는 엑소시즘 영화의 고전이 된 1973년 작 ‘엑소시스트’도 악령이 몰고 오는 극한의 공포로 관객이 눈과 귀를 가리게 만든다.
공포영화 마니아가 ‘더 라이트: 악마는 있다’(21일 개봉)를 본다면 적잖이 실망할지 모른다. 제목과 포스터 보고 ‘콘스탄틴’류의 엑소시즘 영화를 기대하겠지만 ‘더 라이트…’ 에는 화려한 컴퓨터그래픽이나 극한의 공포가 없다. 악령 영화치고는 심심하다. 오히려 종교영화에 가깝다. 서늘한 공포 대신 신의 존재에 대한 철학적, 종교적 물음을 던진다. 이 물음을 공포영화 형식으로 풀어간 솜씨가 돋보인다.
장의사인 아버지를 벗어나기 위해 신학교에 진학한 마이클(콜린 오도너휴). 그는 신에 대한 믿음이 없어 퇴교하려던 날 교통사고로 죽어가는 행인을 만나며 신을 느낀다. 그의 신에 대한 회의론을 잘 아는 스승은 퇴마사가 돼 보라며 바티칸행을 권한다. 바티칸에서도 그는 퇴마의식을 하는 신부들에게 악마를 찾을 게 아니라 정신의학을 배우라며 도전한다. 그러나 퇴마의식의 ‘달인’인 노(老)신부 루카스(앤서니 홉킨스)를 만나며 마음이 흔들린다. 과학으론 설명할 수 없는 그의 악령 퇴치를 보며 신의 존재를 다시 생각한다.
영화는 악마의 존재를 통해 역설적으로 신의 존재를 설명한다. 악마가 있다면 이에 맞서는 절대자가 있다는 식이다. 영화 제목을 ‘신은 있다’로 바꿔야 하지 않나 싶은 이유다. 그리스도교의 본산인 바티칸의 신부들을 소재로 끌어들이며 신학적 물음에 설득력을 더한다.
마이클이 “우리가 악마면 (악마와) 어떻게 싸우나”라고 루카스 신부에게 묻는 대사는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인간과 악마가 애초부터 한 몸이 아닌가라고 말하는 이 장면은 어떤 공포영화보다 섬찍하다. 인간의 숨겨진 악마성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담겼기 때문이다.
과학은 증명의 미학이다. 설명할 수 없으면 믿지 않는다. 하지만 보이는 것만 믿는다면 상상력은 불가능하다. 세균이나 다른 행성의 발견 등 과학적 성과는 상상력이 없으면 불가능했던 일이다. 과학은 종교에 합리성을, 종교는 과학에 영감을 주며 동시에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 여러 학자의 주장이다. 이런 점에서 영화는 과학의 절대성만을 믿는 관객에게 권할 만하다.
홉킨스의 연기를 보는 것도 이 영화의 큰 재미. ‘양들의 침묵’에서 엽기적인 살인마 한니발 렉터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그는 이 영화에서도 무서운 연기를 뽐낸다. 노신부의 한없이 자상한 눈빛이 어느 순간 악마가 씌운 광기 어린 그것으로 변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그의 연기를 보며 선과 악의 양면성을 지닌 인간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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