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의 대중가요는 세태는 물론 의미심장한 노랫말로 당대 대중의 정서를 반영한다. 노래의 힘이 크다는 말도 거기서 나온다. 트로트 명곡 ‘비내리는 호남선’이 지닌 애틋함의 정서는 혼란했던 시대, 기댈 곳 없던 대중의 가슴을 달래준 대표적인 노래로 꼽힌다.
1956년 오늘 해공 신익희 선생이 생을 마쳤다.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해공은 유세 도중이었던 이날 오전 5시50분 서울발 이리행 열차 안에서 뇌일혈로 서거했다. 해공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했고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구호로 이승만 독재 치하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해공의 죽음은 많은 국민을 서럽게 울게 했고 그 유해가 서울역에 도착하자 이들의 입에서는 ‘비내리는 호남선’이 서서히 흘러나와 합창이 되었다.
‘목이 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돌아서서 피눈물을 흘려야 옳으냐/사랑이란 이런가요 비내리는 호남선에/헤어지던 그 인사가 야속도 하더란다/….’
박춘석이 작곡하고 손로원이 노랫말을 붙여 손인호가 부른 ‘비내리는 호남선’은 급기야 해공의 추모곡처럼 들렸다. ‘해공이 자유당 정권에 의해 암살당해 그 부인이 슬픔에 겨워 노랫말을 썼다’는 루머까지 퍼져나갔다.
당시 정부 당국은 작사가와 작곡가는 물론 가수까지 소환해 폭력적인 조사를 벌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비내리는 호남선’은 해공이 서거하기 석 달 전 세상에 나왔던 만큼 이들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리고 대중이 목놓아 부르는 ‘비내리는 호남선’은 끊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