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호(41), 박철민(44), 오달수(43). 요즘 영화판을 주무르는 ‘웃기는’ 조연들이다. 아니, 웬만한 주연도 부럽지 않다. 성지루, 류해진, 성동일 등이 이들을 위협하고 있지만 상반기 한국영화만 보면 이들 삼총사의 활약은 특히 두드러진다. 주연 배우가 티켓 파워를 가지듯 많은 관객이 세 사람의 웃기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보려고 극장표를 산다. 일명 ‘코믹 트로이카’로 불리는 이들은 영화의 양념이 아니라 메인 재료로 돋보이는 연기를 하지만 웃음의 코드는 조금씩 다르다. ○ ‘동정파 코믹’ 김상호
코믹 트로이카 가운데 최연소인 김상호는 시원하게 민머리를 드러낸 용모 때문에 한번 보면 잊어버리기 어렵다. 어눌한 말투와 순박해 보이는 웃음은 동정심을 자아낸다. ‘타짜’에서 사정없이 얻어맞은 뒤 멍든 얼굴로 구성지게 트로트를 부르던 모습이 김상호표 코믹 연기의 전형이다.
그는 올해 ‘적과의 동침’ ‘심장이 뛴다’ 등에 출연했다. ‘적과의 동침’에서는 정치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눈치를 보는 소시민 백씨 역을 맡았다. 자칫 얄미워 보이는 캐릭터이지만 그의 순박한 웃음 앞에 관객은 무장해제된다. 9일 개봉하는 ‘모비딕’에서는 주인공 황정민의 동료 기자로 나와 어느 때보다 극중 비중이 높아졌다.
김상호는 “주연은 불특정 다수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는 부담이 있지만 조연은 이런 부담이 없어 자연스러운 연기가 가능하다. 그래서 관객이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동정파 코믹 연기가 나오기까지는 인고의 세월이 있었다. 2001년 배창호 감독의 ‘흑수선’으로 데뷔하기 전까지 10년 가까이 연극판에서 내공을 다졌다. ‘모비딕’을 연출한 박인제 감독은 그의 독특한 매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곱창집에서 처음 그를 만났는데, 마치 과거에 출연했던 영화에서 툭 튀어나온 것 같은 회화적인 느낌이었죠. 이야기를 나눌 때도 마치 연기하듯 말하는 모습이 곱창집을 영화세트로 느끼게 했어요.”
○ ‘학구파 속사포’ 박철민
“여기 커피 안 팔아요. 이 커피는 내가 마실 커피. 여기 가정집이에요. 우리 집에서 나가세요.”
지난해 화제작 ‘시라노; 연애조작단’에서 박철민이 숨 가쁘게 쏟아낸 대사다. 이 대사처럼 그는 속사포 같은 말투로 관객을 정신없이 몰아붙인다. 올해 ‘위험한 상견례’ ‘수상한 고객들’에 출연했으며 ‘7광구’ ‘마당을 나온 암탉’ ‘투혼’ ‘달무리’ 등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야말로 박철민 세상이다.
그의 뛰어난 언변은 중앙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경력과 무관치 않다. 그때 연마한 대중 연설 능력이 영화에서도 빛을 발한다는 분석이다. 여러 일간지를 동시에 구독하는 ‘공부하는 배우’이기도 하다. 애드리브(즉흥 대사 또는 연기)에 능하다고 알려졌지만 실제 그의 대사와 연기는 모두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다.
‘시라노; 연애조작단’ ‘마당을 나온 암탉’ 등을 제작한 명필름 심재명 대표는 “박철민은 애드리브 대사를 준비해 와 감독과 철저하게 상의하는 스타일”이라며 “코믹 연기에만 능한 것 같지만 ‘혈의 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악역도 잘한다. 뭘 하든 든든한 배우”라고 평가했다.
○ ‘모태 능청’ 오달수
한때 영화계에선 ‘모든 영화는 오달수가 출연하는 영화와 출연하지 않는 영화로 나뉜다’는 말이 있었다. 그만큼 오달수가 관객을 끌어 모으는 힘은 남다르다. 그는 올해도 ‘조선 명탐정’ ‘그대를 사랑합니다’ ‘헤드’ 등에서 변함없는 영향력을 자랑했다. 개봉을 앞둔 ‘도둑들’ ‘푸른 소금’ 같은 굵직한 작품에도 얼굴을 내밀었다.
그의 장점은 선한 웃음 뒤에 똬리를 튼 능청스러움. ‘방자전’에서 방자에게 춘향을 유혹할 ‘작업의 기술’을 전수하는 ‘마노인’이나 김명민의 코믹 연기를 더욱 빛나게 한 ‘조선 명탐정’의 ‘개장수’가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이다.
하지만 오달수의 연기에서 기시감(어디서 본 듯한 느낌)을 느끼는 관객이 늘고 있다는 점은 그가 풀어야 할 숙제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모든 작품의 적재적소에서 관객의 긴장을 풀어주는 게 그의 장점”이라면서도 “이제는 양념이 아닌 주체적인 연기, 치명적 악역 같은 파격적인 변신이 필요한 때”라고 평가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