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서바이벌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 12일 방송은 그의 가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엘비스 프레슬리를 떠올리게 하는 옷차림에 빅뱅의 탑이 썼던 '블라인드' 선글라스를 끼고 빨강 파랑 초록 옷을 입은 댄서들과 남진의 '님과 함께'를 부르기 시작하자 스텝도 관객들도 몸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무대와 객석을 들썩이게 했던 그의 노래가 끝나자 관객들은 "김범수!" "김범수!"를 연호했다. 이날 경연에서 그는 1등 가수로 뽑혔다.
"사람들이 연호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제 귀를 의심했어요. 오랫동안 그 잔향이 귓속에 남아있을 것 같아요. 행복하게…."
'나가수'는 사람들이 가수 김범수를 재발견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전까지 김범수는 '얼굴 없는 가수'였다. 1999년 '약속'으로 데뷔한 뒤 얼굴을 내보이지 않았다. 뮤직 비디오엔 실루엣만 흐릿하게 나올 뿐이었다. 이후 '하루' '보고 싶다'가 연달아 히트했지만 TV에서 그의 얼굴을 보기는 힘들었다. 노래는 잘하지만 이른바 '비디오(외모)'가 되지 않는 가수의 비애였다. 나가수 첫 방송에서도 김범수는 겸손했다. "제가 노래를 부를 땐 눈을 감으셔도 상관없습니다."
그랬던 그가 회를 거듭하면서 180도 변신해 '비주얼'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여성 댄서들과 펑키한 춤을 추다 관객에게 빨간 손수건을 건네고(민해경의 '그대 모습은 장미'), 징이 박힌 검은 가죽 재킷을 입고 나와 노래하다 "땡큐!"를 외친 다음 뒤로 돌아 양손을 벌리는 터프한 마무리(유영진의 '그대의 향기')를 선보였다. 안경부터 바지까지 흰색으로 맞춰 입는 앙드레김 스타일을 하고 나왔을 땐(조관우의 '늪') 진행자인 이소라가 이렇게 소개했다. "나가수의 비주얼 담당입니다."
김범수가 입고 나와 동료 가수들의 입을 딱 벌어지게 한 옷들은 모두 그 자신이 아이디어를 냈다. 소속사인 폴라리스 관계자는 "편곡을 마친 뒤 김범수가 '이러이러한 옷이 어울리겠다'고 의견을 내면 코디가 그에 맞춰 옷을 구한다"고 설명했다. 화제가 됐던 '늪'의 의상은 앙드레김과의 각별한 인연을 고려해 선택했다. 앙드레김은 생전에 그의 '사랑해요'를 좋아해 콘서트 때마다 앞자리 티켓을 사서 관람했고 패션쇼 피날레에도 김범수의 음악을 사용했다. 김범수는 앙드레김 의상실에서 이 옷을 빌려 입었다. 배우 이병헌이 패션쇼에서 선보였던 의상을 의상실에서 김범수에게 맞게 고쳐줬다.
그러나 의상만으로 성공한 것은 아니다. 김범수의 과감한 비주얼 실험을 성공으로 이끈 것은 그의 가창력과 자신감이다. 회를 거듭할수록 그는 무대 위에서 '날았다'. 댄스와 록, R&B와 트로트 등 여러 장르를 가로지르고 1등부터 7등까지 다양한 평가를 받으면서 위축됐던 마음이 풀어지고 무대를 즐기게 됐다는 평가다. 나가수의 자문위원인 장기호 서울예대 실용음악과 학과장은 김범수에 대해 "기교가 완벽한 가수"라며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창법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열창 중간 중간에도 "청중 평가단이 평가를 잊고 놀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다"며 흥겨움을 잊지 않았다. 노래 도중 흥을 돋우는 "겟올라잇" "섹소폰" "와우!"는 애드리브가 아니라 치밀한 계산과 거듭된 연습을 통해 나온 '추임새'다.
김범수의 비주얼 실험이 성공한 배경에 대해 간호섭 홍익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는 "자신에게 가장 맞는 자리를 만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간 교수는 "가창력을 전제로 한 무대에 서다보니 기존의 콤플렉스를 떠올릴 필요가 없고, 여기에 패션이라는 비주얼과 흘러나오는 자신감이 그를 빛나게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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