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아침에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어 벽에 매단 끈을 잡고 힘을 써야 겨우 상체를 세운다. 등 뒤의 지퍼 내리기는 언감생심이고, 계단이라도 만나면 쿵푸팬더와 동병상련이 된다. 몸무게가 150kg은 가뿐히 넘어 보인다. 영화 ‘헤어드레서’(14일 개봉) 여주인공 카티(가브리엘라 마리아 슈마이데)의 우울한 몸매다.
몸이 계급이라는 이 시대, 카티는 독일 사회의 최하층민이나 다름없다. 몸매뿐 아니라 다른 조건도 심란하기는 마찬가지. 통일 후에도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동독 출신인 데다 이혼녀다. 엄마 곁을 지키는 속 깊은 딸과 조그만 아파트가 위안거리다.
카티는 그래도 남다른 재주가 있다. 육중한 몸과 달리 섬세한 손은 머리를 하러온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래봐야 고객은 복지시설의 노인뿐이지만 언젠가는 손재주를 마음껏 펼칠 미용실을 갖는 것이 그의 꿈이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이리저리 취직자리를 알아보던 카티는 대형 상가에 자리한 고급 미용실로 면접을 보러 간다. 하지만 “이곳은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곳인데, 당신은 전혀 아름답지 않다”는 면박만 당한다. 오기가 난 그는 대출을 받고 딸이 모아놓은 용돈을 훔쳐 가게를 차리지만 이마저도 면접 본 미용실의 견제로 문 닫을 위기에 처한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어 우울할 것 같지만 카티는 항상 밝다. 이런 그녀 곁에는 남자들이 있다. 술집에서 만난 덩치 큰 아저씨는 카티와 첫 키스를 하려고 안달이고, 베트남 출신 남성과는 뜨거운 하룻밤을 보낸다.
‘파니 핑크’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을 연출한 도리스 되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전작들처럼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따뜻하고 유쾌하게 그려내는 솜씨가 여전하다. 장마철, 우울하고 스산한 마음을 베이비파우더처럼 보송보송하게 만들어 줄 영화가 그립다면 선택할 만하다. 15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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