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감독답게 밝고 해맑은 표정을 지어 보인 ‘마당을 나온 암탉’의 오성윤 감독. 그는 영화에서 꼬리에 꽃을 꽂은 암탉 ‘잎싹’처럼 머리에 꽃도 꽂았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쿵푸팬더’ 같은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이나 ‘원령공주’ 등 일본 아니메(애니메이션)에 익숙한 관객에게 한국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28일 개봉)은 오히려 낯선 느낌을 줄 수 있다. 현란한 3차원(3D) 화면이나 빠른 스토리 전개는 없다. 그 대신 파스텔 톤의 따뜻하면서도 신비로운 배경 화면과 정감 어린 캐릭터, 그리고 여백의 미가 그 자리를 메운다. 그렇다고 ‘…암탉’이 지루할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부동산 중개업자 수달과 경상도 사투리로 배꼽 잡게 하는 박쥐가 토속적인 웃음을 선사한다.
‘…암탉’의 ‘아빠’ 오성윤 감독(48)은 “원작의 뛰어난 소재와 주제를 담을 특별한 그릇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3D로는 원작의 독특한 느낌을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아 파스텔풍의 그림으로 승부를 걸었다”고 설명했다. 황선미 작가가 쓴 동명의 동화가 원작이다. 100만 부 이상 팔린 이 밀리언셀러는 초등학교 5학년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이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오 감독은 2005년 주연배우인 동물 연구부터 시작했다. “학교 운동장 2배 크기인 양계장에 갔어요. 2만 마리가 철창에 갇혀 동시에 ‘구구구’ 울부짖는 걸 보고 패닉에 빠졌어요. 오렌지색 불빛 아래 하루 종일 알만 낳는 닭들은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닭○○○’라는 욕이 있듯 사람들은 닭이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독립적이고 머리가 좋은 동물이에요.” 닭을 쫓는 족제비 캐릭터를 만들어 내기 위해 그는 애완용 족제비도 기르며 세세한 근육의 움직임을 연구했다.
시나리오가 완성된 이후에는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목소리 연기 녹음부터 했다. 가녀리면서도 진취적인 암탉 ‘잎싹’의 목소리 연기에는 문소리, 남성적 카리스마가 넘치는 청둥오리 ‘나그네’에는 최민식, 익살스러운 수달 ‘달수’에는 박철민이 캐스팅됐다.
“2년 전 시나리오대로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를 녹음했죠. 이걸 바탕으로 그림을 그린 다음 다시 목소리 연기를 보강했어요.” 2번에 걸친 세심한 녹음 덕분에 만화 캐릭터의 표정과 움직임은 배우들에게 ‘빙의’가 된 듯 자연스럽다. 특히 뛰어난 코믹 애드리브를 선보이는 박철민의 연기는 달수의 익살스러운 표정과 찰떡궁합이다. 할리우드의 경우 그림이 완성된 뒤 배우들이 그림을 보며 목소리를 입히는 것이 일반적이다.
12만 장을 그리는 작화 작업은 체력전이었다. “스태프가 매일 12시간씩 2년을 꼬박 일했어요. 그래서 애니메이션은 손이 아닌 엉덩이로 그린다는 말이 있어요. 우리만의 독특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신념 때문에 당초 예정보다 2년이 더 걸린 6년 만에 완성됐죠.”
1970년대 ‘로보트 태권브이’ ‘철인 007’ 등을 내놓으며 전성기를 구가했던 국내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이후 쇠퇴의 길을 걸었다. ‘마리 이야기’(2000년) ‘원더풀 데이즈’(2003년) 등 대작 애니메이션으로 부흥을 꿈꿨지만 관객 동원에 실패하며 다시 좌절했다.
“‘마리 이야기’ 등이 실패한 이유는 그림은 좋지만 스토리가 빈약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암탉’은 원작에는 없는 달수 등 다양한 캐릭터를 추가하고, 청둥오리들의 파수꾼 경주를 넣어 이야기를 보강했어요. 어린이 관객이 재밌게 볼 수 있을 걸로 기대합니다.”
오 감독은 이번이 장편 데뷔작이다.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89년 애니메이션 작업을 시작한 이후 ‘목 긴 사나이 이야기’ 등 단편 몇 편을 연출했고 주로 프로듀서로 일했다.
“나이에 비해 늦은 감독 데뷔이지만 후회는 없어요. 훌륭한 이야기를 만났으니까요. 종교적이면서도 철학적인 결말을 가진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부모와 아이들이 많은 이야기를 나눴으면 합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 ‘…암탉’은 닭장 나온 암탉 오리알 품었네 ▼
닭장에 갇혀 매일 알만 낳던 암탉 ‘잎싹’은 알을 품어 병아리를 만들어 보겠다는 소망을 안고 양계장을 탈출한다. 탈출한 잎싹을 노리던 족제비를 청둥오리 ‘나그네’가 물리치면서 잎싹은 나그네의 알을 대신 품게 된다. 나그네가 족제비에게 물려간 뒤 잎싹은 청둥오리 새끼 ‘초록’의 엄마가 된다. 잎싹은 초록이가 성장해 철새들을 따라 비상할 때까지 돌보며 늪에서 살아간다. 숲의 공인중개사 수달 ‘달수’가 잎싹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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