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다…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당당한 앵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20일 03시 00분


■KBS 장애인 앵커 최종후보 10명 ‘마지막 오디션’ 현장

KBS가 한국 최초로 뽑는 ‘장애인 앵커’ 선발 최종 라운드에 오른 후보자들. KBS는 19일 오후 이들을 대상으로 최종 면접시험을 실시했다. 앞줄 왼쪽부터 김지혜, 임현우, 박수빈 씨. 뒷줄 왼쪽부터 안영회, 김지은, 박소리, 심준구, 이창훈 씨. 최종 후보는 10명이지만 2명은 촬영을 원하지 않았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KBS가 한국 최초로 뽑는 ‘장애인 앵커’ 선발 최종 라운드에 오른 후보자들. KBS는 19일 오후 이들을 대상으로 최종 면접시험을 실시했다. 앞줄 왼쪽부터 김지혜, 임현우, 박수빈 씨. 뒷줄 왼쪽부터 안영회, 김지은, 박소리, 심준구, 이창훈 씨. 최종 후보는 10명이지만 2명은 촬영을 원하지 않았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19일 오후 4시 서울 여의도 KBS 신관 3층 보도국 스튜디오. 천장에 달린 조명 10여 개가 환하게 켜졌다. 카메라 2대가 후보자의 정면과 측면을 모니터 4개에 비췄다. KBS 보도국 뉴스 앵커 최종 면접시험이 시작됐다.

이창훈 씨(26)가 6명의 심사위원 앞에 놓인 책상에 앉았다. 이 씨는 두 손을 종이 원고 대신 점자 단말기에 올리고 또박또박 뉴스를 읽어나갔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그의 눈이 문득 초점을 찾지 못하고 움직였다. 생후 5개월 때 병으로 시력을 잃은 그는 지금껏 TV를 본 적이 없다.

안영회 씨(44)는 TV를 ‘들어본’ 적이 없다. 청각장애인이기 때문이다. 들을 줄 모르면 말하기도 힘들지만 안 씨의 발음은 다소 어눌해도 명확했다. 수화를 사용하는 한편 똑똑히 말하는 법을 별도로 익혔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KBS가 올해 처음 실시하는 장애인 앵커 공개 모집 최종 면접 후보 10명에 들었다. 모두 523명이 지원한 이번 공채에서 1차 서류전형과 2차 카메라테스트 및 실무 면접을 뚫고 최종 면접에 올라온 이들은 남자가 셋, 여자가 일곱, 나이는 22∼44세로 다양했다.

면접이 시작되고 후보자가 차례로 스튜디오에 들어설 때마다 진행자들은 바빠졌다. 시각장애인 후보에게는 컴퓨터 문서를 점자로 변환하는 점자 단말기 또는 스크린 리더(문자를 음성으로 변환해주는 프로그램)가 깔린 노트북을 제공했다. 청각장애인의 경우 수화 통역사가 동행해 면접관들의 질문을 통역했다. 휠체어에 앉은 지체장애인 후보들은 도우미들의 도움을 받아 경사가 있는 스튜디오 입구를 오갔다.

박소리 씨(30)가 면접장에 들어서려고 일어섰을 때 하늘하늘한 스커트 아래로는 늘씬한 다리 하나만이 보였다. 박 씨는 대학 때 다리뼈에 암이 생겨 한쪽 다리를 잃었다. 그는 높은 의자에 걸터앉아 장애를 당당히 드러내는 앵커가 되고 싶다고 했다.

‘유명 인사’들도 눈에 띄었다. 뇌병변 장애를 극복한 ‘얼짱 수영선수’로 유명한 김지은 씨(28)는 “국가대표 장애인 수영 선수를 넘어 이제 국가대표 장애인 앵커로 알려지고 싶다”고 말했다. MBC 프로그램을 통해 ‘엄지 공주’로 알려진 윤선아 씨(32)도 면접시험을 치렀다. 키가 116cm인 윤 씨는 가벼운 충격에도 뼈가 부러지는 약한 몸을 무릅쓰고 출산에 성공해 감동을 주었던 인물이다.

아직 최종 관문을 통과하지 않았지만 후보들의 표정은 밝았다. 임현우 씨(31)는 군에 복무하면서 아나운서의 꿈을 키우던 중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장애인 인식교육 강사로 일하고 있는 임 씨는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장애인에겐 꿈과 용기와 희망이 된다”며 웃음 지었다. 10대에 안질환으로 시력을 서서히 잃게 된 심준구 씨(43)에게도 이날 면접은 희망을 주는 자리였다. “어제 본 것을 오늘 보지 못하고, 오늘 보는 것을 내일 보지 못하게 되는 현실은 말 그대로 공포였죠. 소년 시절에 갖지도 못했던 꿈을 이제 이뤄보고 싶습니다.”

이날 심사에는 윤준호 보도국 편집주간과 장애인 전문 프로그램인 ‘사랑의 가족’의 문봉기 PD, 양옥경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등 6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뉴스 전달력과 발음, 용모 등 기본적인 앵커의 자질과 사상 첫 장애인 앵커로서의 도전정신 등을 두루 살펴 최종 합격자 1명을 선정해 25일 발표할 예정이다.

최종 합격자는 프리랜서 앵커로 활동하게 된다. KBS 보도국 관계자는 “합격자는 뉴스 프로그램에서 단신이나 생활뉴스, 국제뉴스 등을 약 5분간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KBS는 앞으로 정기적으로 장애인 앵커를 선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장애인 앵커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영국 BBC는 2009년 안면 장애인인 제임스 패트리지 씨를 BBC 채널5의 정오뉴스 앵커로 기용해 화제가 된 바 있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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