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고위층 자제가 삼엄한 경호 속에 해외 공연을 즐긴다. 학생들은 반값 등록금을 외친다. 유명인사가 알고 보니 학력을 속여 온 사실이 밝혀진다.
최근 TV 화면을 탄 이 장면들은 바로 지상파 방송사들이 내보내는 드라마 줄거리다. 요즘 드라마를 보면 “신문 보고 만드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뉴스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KBS2 TV ‘스파이 명월’은 한류스타 강우(문정혁)와 결혼해 그를 월북시키라는 지령을 받은 북한의 스파이 명월(한예슬)의 활약상을 그린 코믹 첩보물. 강우의 광팬이자 북한 고위급 장성의 외동딸인 여성이 싱가포르에서 강우의 콘서트를 즐긴다. 명월은 동료 스파이들과 도끼눈을 뜨고 흥겨운 공연장엔 어울리지 않는 살벌한 경호 활동을 벌인다. 올 2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차남 김정철이 건장한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싱가포르의 에릭 클랩턴 공연장에 나타났던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이 드라마에는 시골 다방 마담인 고정 간첩 리옥순(유지인)도 나온다. 20년 전 남한의 군 장성을 포섭하는 ‘밤에 피는 꽃’ 작전을 펼쳤던 미인계의 달인이다. 문민정부 시절 국방부 고위층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으며 로비를 펼쳤던 린다 김을 연상하게 한다.
뉴스 따라잡기에 가장 열성적인 드라마는 SBS ‘시티헌터’다. 주인공 시티헌터(이민호)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 몹쓸 사회 지도층 인사를 혼내주는 현대판 홍길동. 시티헌터는 대학 운영자금을 빼돌린 재단 이사장의 돈을 훔쳐 학생들에게 나눠줌으로써 ‘반값 등록금’을 실현한다. 대기업의 ‘백혈병 산재’ 문제가 나오는가 싶더니 최근 학력 인플레 이슈가 불거지자 재수생인 대통령의 딸 최다혜(구하라)는 뜬금없이 “고졸이면 어때” 하면서 대학 진학 포기를 선언한다.
최근 끝난 MBC ‘미스 리플리’는 ‘신정아 사건’을 소재로 한 드라마. 드라마 막바지에 유명인사가 된 여주인공 장마리(이다해)가 “일본 동경대를 나왔다”고 거짓말한 사실이 들통 나 그녀와 내연남 장명훈(김승우)이 검찰에 불려가고 기자들이 과열된 취재경쟁을 벌이는 장면은 신정아 사건의 복사판과도 같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는 “현실 정치를 다룬 ‘대물’과 보수와 진보 세력의 대결을 그린 ‘선덕여왕’이 화제가 된 후 시사적인 내용을 다루는 드라마들이 많아졌다”며 “방송사로서는 남자 시청자들까지 끌어들이는 효과를 거둘 수 있지만, 복잡한 이슈를 단순화하고 대중영합주의로 흐를 부작용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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