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이문원의 쇼비즈워치]강호동의 ‘잠정 은퇴’가 남긴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16일 15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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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강호동이 지난 9일 잠정 은퇴를 선언했다. 직접적인 원인은 5일 불거진 탈세 의혹이었다. 강호동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세금 문제는 이유를 막론하고 관리하기 못한 제 불찰이고 잘못"이라며 "이 시간 이후로 잠정 연예계를 은퇴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추석 내내 연예미디어는 강호동 은퇴를 둘러싼 상황들을 보도하느라 열을 올렸다. 추석 연휴 탓에 하루짜리 이슈가 5일짜리 장기 이슈로 확대된 것이다.

그러자 특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잠정 은퇴 선언 후 하루 만에 강호동의 은퇴 철회를 요구하는 강호동닷컴이 개설됐다. 방문객이 몰려들어 서버가 다운되는 바람에 포털사이트 네이버 카페로 옮겨 개설되기까지 했다.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서도 '강호동 은퇴 반대 서명'이 시작됐다. 그 며칠 전 '강호동 퇴출 서명운동'이 시작된 바로 그곳이다.

이 같은 현상을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스포츠월드 9월14일자 기사 '역시 최고! 강호동의 위기극복법'은 "방송 인생 최고 위기라는 이번 사태에서도 강호동은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은퇴 카드'를 사용해 상황을 반전시켰다.

역시 씨름꾼이다. 강한 압박을 받을 때 순간적으로 힘을 빼서 오히려 상대방이 자기 힘에 거꾸러지는 기술을 사용한 것."이란 해석을 내리고 있다. 한 마디로 잠정 은퇴 '강수'를 통해 동정론을 불러 일으켰단 얘기다. 잠정 은퇴 선언을 비판적으로 바라본 미디어들은 많건 적건 이와 유사한 결론들을 내렸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모든 상황을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 강호동 측 의도야 그랬을 수도 있지만, 대중이 그에 맞춰 착실히 반응해줬다고 보긴 힘들다. 애초 '은퇴'도 아니고 '잠정 은퇴'란 표현을 굳이 선택한 까닭 정도는 모두 눈치 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시간이 흐르며 강호동 건에 '탈세'란 단어를 붙일 이유가 없었다는 점이 속속 드러난 까닭으로 보는 게 더 상식적이다.

계기만 생기면 트리플 액셀 같은 스포츠 전문용어도 금세 익히는 한국대중의 학습능력이 강호동 건으로 옮아가자 '탈세'와 '과소납부'의 차이도 쉽게 이해하게 됐고, 거기서 비롯된 문제의식이 잠정 은퇴 선언이란 계기를 맞아 반대방향으로 흘렀다고 보는 게 더 설득력 있다. 대중은 바보가 아니란 얘기다.

●미디어가 알아서 선동했던 강호동 이슈

이런 식의 해석이 가능한 까닭이 있다. 이번 강호동 건은 대중으로부터 문제의식이 불거져 미디어가 이를 받은 형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폭적으로 미디어가 '끌고 간' 이슈였다.

사실상 미디어는 그 첫 보도에서부터 다소 부정확한 정보로 대중을 격양시켰다. 강호동 건 관련 첫 보도로 여겨지는 노컷뉴스 9월5일자 기사 '[단독]국세청, 강호동씨 세무조사 수십억 추징'은 "국세청이 최근 '국민MC' 강호동 씨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여 수십억 원 대의 추징금을 부과한 것으로 확인됐다"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알려졌다' '추정된다'도 아니라 '확인됐다'는 단언이다. 그러나 이 같은 내용은 9일 뒤인 14일 조선일보 기사 '[단독] "강호동 탈세 고의성 없어 추징액 3년간 7억원 정도"'를 통해 부정됐다. 제목대로 3년 간 통틀어 7억여 원 정도란 내용이다. 수십억과는 차이가 크다.

이어 7일이 되자 사업가 A씨가 서울중앙지검에 강호동을 탈세 혐의로 고발한 내용이 대서특필됐다. 고발장 내용 중 눈길을 끈 것은 "강호동은 연예활동과 개인사업 등을 합해 중소기업 매출보다 많은 연 300억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이 믿거나 말거나 수치가 제시되자 고발장 내용은 또 다시 일파만파로 기사화돼 퍼져나갔고, 뒤이어 각종 악의적 보도가 판을 쳤다. 대중의 위화감을 자극하는 선정적 형태로 보도태도가 맞춰진 셈이다. 그것도 근거 자체가 없는 수치를 놓고서 말이다.

곧이어 인터넷에서 강호동 퇴출운동이 펼쳐지고 있다는 기사가 포털사이트 메인페이지를 장식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당시까지만 해도 이 서명운동은 딱히 참여자가 많지 않고, 하루에도 이런 식의 서명운동이 수없이 펼쳐지는 상황으로 보아 딱히 주목할 사안이라 보긴 힘들었지만, 어찌됐건 이쯤부턴 이슈가 기사를 만드는 게 아니라 기사가 이슈를 확대시키는 상황에까지 접어들었다. 실체가 없는 것이 실체를 만들어냈다. 사실상 대중선동에 가까웠다.

결국 이번 강호동 건의 본질은 미디어가 부정확한 정보들과 부정확한 표현, 부정확한 상황묘사, 부정확한 규정으로 점철해 일렬로 강호동을 '때리러' 달려든 상황에서 찾아봐야 한다는 얘기다.

누구도 손 쓸 수가 없었다. 이 정도로 '어마어마한' 때리기가 실시간으로 진행되니 대중도 일단 이에 호흡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기사가 제시한 분노에 분노하고, 기사가 제시한 실망에 실망하고, 기사가 제시한 퇴출 얘기를 듣고 똑같이 퇴출을 거론했다.

그러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강호동 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전문가들의 인터넷 포스트들이 늘어났다. 이들 포스트는 워낙 화제에 오른 건이니 인터넷 검색을 통해 쉽게 노출됐다.

또한 각종 포털사이트 뉴스 댓글 란을 통해서도 마찬가지로 의문을 제기하는 댓글들이 늘어갔다. 납세자연맹 등 전문단체들까지 나섰다. 단적으로 말해, 워낙 상식 밖 비판보도들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쌓인 문제의식들이 강호동 잠정 은퇴 선언으로 봇물이 터지게 됐다는 순서다.

한 마디로, 선동에 대한 상식의 승리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승리엔, 대중 본인이 일으킨 것이 아니라 미디어가 선동한 이슈는 지속력이 그만큼 약할 수밖에 없다는 배경이 놓여있다. 이런 경우 미디어 약발이 빠지면 대중은 상식을 되찾게 된다.

●강호동 비판 미디어 태도, 어떤 식으로 진행됐나

그렇다면 애초 미디어는 왜 그토록 강호동을 '때리고' 싶어 했을까. 본질적으로는, 상업적 판단이라 볼 수밖에 없다. '강호동 스캔들'은 이미 지난달 KBS2 '1박2일' 하차 건으로 그 상업적 효과가 증명된 콘텐트였다.

여기서부턴 이른바 '원투 펀치' 효과로 아예 '밟아버리는' 태도로 가는 게 상업적으론 더 유리할 수밖에 없다. 로스엔젤리스 타임즈 영화평론가 케네쓰 튜런이 지적한 현대 연예미디어의 습성, 즉 '무조건 찬양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밟아버리거나' 둘 중 하나로 가야만 미디어의 상업성이 보전된다는 공식이 그대로 적용된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번쯤 더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다. 이번 강호동 추징금 부과 건을 놓고 이슈를 선도하며 가장 열성적으로 비판여론을 유도한 미디어들을 살펴보면, 지난달 '1박2일' 건에서 가장 열성적으로 이슈를 선도한 미디어들과도 거의 일치하고 있다.

더 파고들어가다 보면, 이들은 '1박2일' 건에서 사이드로 비판 아이템이 된 신생 종합편성채널 상황에 대해서도 비판적 입장을 고수한 미디어들이기도 하다.

결국 이 같은 일부 미디어 코드가 강호동 추징금 부과 건까지 밀려들어왔다고 볼 수도 있다. 애초 그 첫 보도부터 "특히 최근 종합편성채널들이 앞 다퉈 연예인과 거물급 PD 등에게 거액의 이적료를 주고 대거 영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되고 있다.

강씨의 경우도 KBS '1박2일' 하차를 두고 '종편행'이 강력하게 거론되기도 했다"는 내용이 첨부돼 있었다.

이번 강호동 건은 2007~2009년 소득에 대한 부분이었으므로 시기적으로 봤을 때 종합편성채널 상황과 무관하고, 나아가 이적료와 세금 과소납부는 전혀 다른 차원 문제란 점 등에서 오히려 종합편성채널과 강호동 건을 '붙여놓는' 게 더 어색하지만 말이다.

결국 이런 식으로 '코드'를 맞춘 선도 미디어의 정보와 논조를 클릭 수 확보에 혈안이 된 인터넷 연예미디어들이 그대로 이어받은 뒤 더 독한 어조로 확대 재생산하고, 결과적으로 각종 복잡한 성격의 비판보도들이 넘실대게 됐다는 순서다.

물론 이런 식으로 '생각이 많은' 보도행태는 대중파급력에 있어 한계가 있다는 게 순식간에 뒤바뀐 강호동 여론으로 충분히 증명되고 있긴 하다.

●같은 과소납부 건에서 갈린 배용준과 강호동 상황

그런데 여기서 의아한 부분이 생긴다. 지난 9일 '맛있는 블로그'의 '모르겐'은 '강호동 퇴출 운동은 '부자감세에 대한 잘못된 분노표출''이란 포스트를 올렸다.

포스트는 강호동 건에 대해 "이런 문제는 자유소득이 있는 자들에게서 종종 발생하는 일이다. 연예계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최근에는 배용준이 자신의 소득 중 74억 원을 필요경비로 잡았지만 관할청이 필요경비를 전혀 인정해주지 않아 23억의 추징금을 부과 받은 바 있다. 이에 배용준은 국세청을 상대로 '종합소득세 부과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밖에도 필요경비에 대한 납세자와 국세청의 의견 대립은 무수히 많았다"면서 "반면 강호동은 국세청이 같은 이유로 추징금을 부과하자 재판을 통한 이의제기를 하기보단 순순히 인정하고 국민에게 사과까지 했다.

필요경비 과다산정으로 인해 추징금이 부과된 사람이 국민에게 사과를 한 것은 강호동이 최초일 것이다. 그리고 퇴출 운동으로까지 확대된 것도 강호동이 처음일 것"이라 짚었다.

여러모로 강호동 건의 본질을 가장 명확히 짚은 포스트였지만, 더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배용준 상황과의 비교에 있다. 포스트 내용대로 배용준은 올 초 강호동보다 3배에 달하는 추징금을 부과 받고도 이에 국세청을 상대로 소송까지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배용준 건 당시 대중의 반발은 딱히 심하지 않았다. 퇴출운동 따윈 전혀 없었다.

아무리 강호동 건이 몇몇 미디어의 '생각'에 의해 이끌어진 형태라 해도 배용준 역시 연예미디어 입장에선 킬러 콘텐트인 게 사실이다. 그리고 배용준 추징금 부과 이슈도 강호동 건만큼의 '물량 공세'는 일어났다. 그러나 배용준 건은 대중으로부터 전혀 반향을 일으키지 못해 하루도 아닌 반나절 이슈로 끝나버렸다. 그 차이가 대체 어디서 비롯됐느냐는 것이다.

●'서민형' 연예인들은 사회 기득권층 '냄새' 풍기면 곤란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강호동은 '서민성'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21세기는 뭐니 뭐니 해도 대중주의의 시대다. 경제 불황 장기화와 함께 밀려온 대중주의는 가벼운 것, 대중적인 것, 촌스러운 것, 서민적인 것들에 대한 대중의 애착을 자아냈다. 대중의 사회적 콤플렉스를 다독이는 효과를 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호동은 대중이 그런 마이너리티 정서를 쏟아 부을만한 요건들을 고루 갖추고 있는 인물이었다. 육중한 체구에 다소 우악스런 외모를 지니고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로 크게 떠들어댔다. 같은 지방출신이더라도 이경규처럼 서울 말씨를 쓰려는 일말의 노력조차 않고 거친 영남사투리로 방송했다.

누가 봐도 '촌놈' '서민'이었고, 가볍고 편하게 대할만한 친근한 이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에겐 '무식함'이란 코드가 있었다. 그 자신이 그런 걸 표방했다. 잘난 사람, 똑똑한 사람, 약삭빠른 사람들이 득세하는 시대에 '무식함' 또는 '무식함을 표방한' 강호동은 정확한 위안효과를 내줬다.

바로 여기서 배용준과 강호동의 길이 갈린다는 것이다. 같은 세금 관련 문제가 불거지더라도 배용준은 딱히 타격을 입지 않는다. 그는 언제부턴가 귀족적인 이미지로 갈아타버렸고, 사회 기득권층으로 인식된 지 오래다. 그의 세금 관련 이슈는 대중으로부터 '배신감'을 자아내진 않는다. 오히려 다소 일상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강호동의 경우는 다르다. 강호동이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호화스런 생활을 해도 대중은 그에 대리만족을 느낄지언정 비난을 하진 않았다. 자신이 지닌 서민성을 대변해주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단 한 번도 귀족적 이미지, 사회 기득권층 이미지를 내비친 적이 없기에 더 그랬다.

그러나 '돈 때문에' 신생 종합편성채널 행을 결정했다는 보도, '탈세를 했다'는 보도가 나오면 상황이 달라진다. 강호동은 순식간에 '똑똑해' 보인다. '약삭빨라' 보인다. '잘나' 보인다. 사회 기득권층의 냄새가 난다. 이러면 한꺼번에 여론이 뒤집어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잠정 은퇴 선언에서 드러난 강호동의 진정한 역량

결국 이번 강호동 추징금 부과 건이 증명해준 것은 이른바 '서민형' 연예인들이 지닌 커리어 관리의 위험성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대중을 이끄는 연예인, 대중을 압도하는 연예인들과 달리 대중에 친근함을 주며 접근하는 연예인들은 그만큼 대중의 변덕스런 심기에 휘둘릴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대중의 자잘한 콤플렉스와 피해의식 등에 공격받을 가능성이 높고, 특히 예능MC들의 경우 그런 공격이 자기 커리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높다. 아무리 사생활 스캔들이 잦아도 콘텐츠 파워에 힘입어 자기 커리어를 개선해나갈 수 있는 배우, 가수들과 달리, 예능MC들은 '자기 자신'이 곧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뜨기는 쉽지만 유지하기가 간단치 않은 게 바로 서민형 연예인들, 그 중에서도 서민형 예능MC들의 특성이란 얘기다. 그만큼 '관리의 소중함'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끝으로 강호동의 잠정 은퇴 기자회견 내용을 다시 살펴보자. 강호동은 "무식한 강호동이가 몇날 며칠을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라며 "젊었을 때는 씨름, 연예인이 돼서는 방송밖에 모른 채 달려왔다. 자숙의 시간 동안 세금문제뿐만 아니라 바쁘다는 핑계로 놓치고 살아온 것은 없는지, 오만해진 것은 아닌지 내 자신을 돌아보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대중으로부터 사랑받은 원인점이 자신의 '서민성' 부분에 있음을 명확히 알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러니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 이를 다시 한 번 강조해준 것이다. 그러면서 세금문제가 자신이 '놓치고 살아온' 부분이었단 점도 은근히 내비쳤다. 적어도 자신이 컨트롤한 부분은 아니었단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강호동이 밑바닥에서부터 국민MC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것은 단순히 그가 지닌 조건, 코드가 21세기 대중성향과 '우연히' 맞아떨어져서만은 아니란 점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는 늘 이런 식의 '무식한 현명함'을 통해 각종 난관을 뚫고 최고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이런 게 바로 강호동의 진정한 '역량'인 것이다. 강호동의 '잠정 은퇴' 후 '복귀'에 기대가 모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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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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