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끝으로 느껴지는 아침 공기의 시큼한 냄새. 함박눈의 서정과 크리스마스의 낭만. 연애에 대한 욕구. 찬바람을 맞으며 느끼는 고독의 카타르시스….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들어보면 대개 이런 것들을 꼽는다.
17일 발표한 김동률의 새 앨범 ‘김동률’(kimdongrYULE)은 그가 목소리로 쓴 한 장의 크리스마스 카드이다. 90년대 말, 2000년대 초에 써두었던 멜로디를 바탕으로 그는 겨울의 추억과 낭만을 선물하고 있다. 4년 만에 나온 이번 앨범은 김동률이 크리스마스나 연말에 들을 만한 국내 창작곡 앨범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에 아쉬움을 느껴 약 10년 전부터 구상했다. 공교롭게도 그의 이름으로 만든 앨범 제목의 ‘YULE’은 크리스마스를 뜻하는 영어의 고어. 마치 언젠가 이 앨범을 만들었어야 할 운명이었다는 것을 웅변해주는 듯하다.
“예민하고 치열했던 20대의 마지막 감성이 담겨 있던 곡이다. 나의 20대 시절의 감성이 옳다고 할 수도 없다. 지금의 트렌드를 좇아야 하는 것도 있겠지만, 가슴에 와닿는다고 주위에서 말씀해주신다. 신선하다고, 추억이 떠오른다고 말해주시는 분들이 많다.”
● 보아, 존박 음반 참여를 통해 경험한 기분 좋은 ‘외도’
김동률은 감성을 유지하기 위해 긴 여행을 자주 떠난다. 다른 가수들의 피처링이나 곡을 주는 ‘품앗이’가 많은 요즘 가요계 흐름과 달리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른 가수의 음반에 좀처럼 참여하지 않았다. 대신 온전히 자신의 음반에 모든 감성을 쏟아부어왔다.
물론 작년에는 보아에게 곡을 주었고, 올초 토마스쿡의 음반을 공동 프로듀스했으며, 얼마 전까지 존박의 음반에 프로듀서로 참여하는 등 잇달아 ‘외도’를 했다. 이를 통해 김동률은 자신도 자신의 음악을 객관적으로 봐줄 프로듀서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녹음하면서 내가 얼마만큼 오버를 해도 되는지 모르겠더라. 멀리서 숲을 보듯, 누군가 내 음악을 봐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존박에게서 시작을 설레어 하고 고민하는 모습이 참 부러웠다. 보아와 작업할 때는 큰 회사의 안정된 시스템을 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김동률은 연말 공연을 봄부터 준비하는 뮤지션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유희열이 써준 이번 음반 소개자료를 보면 ‘신중하고 예민한 뮤지션이자 완벽주의자다운 음반’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는 “칭찬으로 받아들인다”고 하면서 “평균치보다 약간 그렇긴 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게 아니라면, 노력과 시간으로 커버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진짜 천재적인 소질을 가진 뮤지션들을, 모차르트를 미워했던 “살리에르의 마음으로 보게 된다”고 말했다. 물론 그는 천재를 미워하지 않는다. 대신 “나의 주제를 잘 알고 내 깜냥에 맞게 열심히 할 뿐”이라고 했다.
● “다음 계획, 이제부터 다시 감성 채워야 떠오를듯”
김동률은 별다른 방송활동 없이도 늘 공연이나 음반이 높은 인기를 누린다. 이번에도 타이틀곡 ‘리플레이’는 15일 온라인 음악사이트에 공개되자마자 주요 차트 1위에 올랐다.
그는 “발표 첫날이고, 오랜만의 신곡이어서 거품일지도 모른다. 또 갑자기 추워진 날씨도 좀 도와주는 것 같다”고 했지만 ‘스테디셀러’로서 김동률의 위력이 입증되는 순간이다.작년 이상순과 만든 그룹 베란다프로젝트로 앨범을 냈고, 이번 겨울앨범까지 잇달아 기획성 앨범을 낸 김동률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졌다.
“이렇게 앨범 하나 내놓고, 이에 대한 반향들, 나에게 미친 영향들이 가라앉고, 내가 관조적이 됐을 때에야 다음 행보를 정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