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문제적 메가폰’ 김기덕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29일 03시 00분


올해 칸국제영화제 ‘아리랑’ 상영에 앞서 모습을 드러낸 김기덕 감독. 동아일보DB
올해 칸국제영화제 ‘아리랑’ 상영에 앞서 모습을 드러낸 김기덕 감독. 동아일보DB
올해 영화계에서 가장 문제적인 인물은 김기덕 감독(51)이다. 그는 올해 칸영화제 상영작 ‘아리랑’에서 자신을 떠나 대기업과 함께 영화를 만든 제자 장훈 감독을 실명으로 비판해 파문을 일으켰다. ‘아리랑’은 이 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받으며 다시 한번 화제가 됐다. 이어 김 감독은 올여름 장훈 감독의 ‘고지전’ 개봉에 앞서 이 영화 때문에 자신이 시나리오를 쓴 ‘풍산개’의 상영관이 줄어든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후 그는 언론에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해외에 머물며 영화 ‘아멘’을 찍었다.

○ 김기덕의 영화는 현재진행형

그의 영화는 관객과 ‘소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다음 달 8∼21일 서울 종로구 씨네큐브 광화문에서는 ‘김기덕 신작 열전’이 열린다. ‘아리랑’과 신작 ‘아멘’을 볼 수 있는 자리다. ‘아멘’은 스페인 산세바스찬 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다. 9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였는데 이번이 이 작품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이후 ‘아멘’은 극장에서는 물론이고 DVD나 주문형비디오(VOD) 서비스로도 볼 수 없다. 해외 영화제 출품이나 해외 배급도 하지 않는다.

‘아멘’은 ‘비몽’(2008년) 이후 김 감독이 3년 만에 선보이는 극영화. 연락이 끊긴 남자친구를 찾기 위해 유럽에 간 한 여자(김예나)의 여정을 그린 로드무비다. 여자는 이탈리아 베니스로 가는 밤 기차에서 방독면을 쓴 한 남자(김기덕)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이 남자는 여자의 주위를 계속 맴돈다.

이 영화는 김 감독이 촬영, 편집 등 전 제작 과정을 맡아 신인배우 김예나와 단둘이 찍었다. ‘아리랑’처럼 영화 촬영용 카메라를 쓰지 않고 디지털렌즈교환식(DSLR) 카메라로 촬영했다. 김예나는 “김 감독은 ‘표정을 좀 더 우울하게 했으면 한다’ 등의 간단한 연기 지시만 했을 뿐 촬영 내내 별로 말이 없었다”고 전했다.

○ “대가다운 자기 성숙을 영화로 보여줘야”

김 감독만큼 국내의 평가가 엇갈리는 감독도 드물다. 스스로 ‘반(半)추상 영화’라고 밝히는 그의 영화는 현실적인 소재(‘수취인불명’ ‘해안선’ 등)를 다루면서도 상징적이고 회화적인 장면으로 독특한 영상세계를 구축해왔다. 이에 대해선 “한국 영화의 전인미답의 발견”이라는 찬사와 “소아병적 자기 상처의 무한 재생”이라는 평가가 엇갈린다.

‘파란대문’(1998년) ‘섬’(2000년) ‘나쁜 남자’(2001년) 등은 성매매 여성으로 설정한 여주인공에 대한 가학적 표현으로 “여성에 대한 극도로 착취적인 상상력이 위험하기 짝이 없다”는 페미니스트들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이 전부인 그에게 기본기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런 공격이 나오고 자신이 만든 저예산 영화가 상영상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김 감독은 2006년 은퇴를 선언했다.

해외의 평가는 여전히 호의적이다. ‘아리랑’은 30여 개국 60여 개의 영화제에 초청받았으며 일본 독일 이탈리아 등 10여 개국에 판매됐다. 영화 수출을 담당하는 화인컷의 김윤정 팀장은 “외국에서 ‘아리랑’의 독특한 형식미와 미장센을 높이 평가한다”고 전했다.

국내 한 평론가는 “김 감독은 한국에서 작은 영화로 생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싸웠고 이 과정에서 상처받고 떠났다”며 “그의 재능이 아깝다. 영화계의 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평론가는 “그는 많은 사랑을 받은 행복한 감독이다. 그런 그가 왜 관객과의 소통을 거부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대가다운 자기 성숙을 영화를 통해 보여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 김기덕 감독에 대한 국내외 평가

―“영화는 학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의 다른 경험이 다른 감동을 준다.”(미국인 달시 파켓·영화전문지 버라이어티 전직 기자)

―“예쁜 이미지에서 끔찍함을 뽑아내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수취인불명’은 내가 본 최고의 이야기다.”(독일인 마크 지크문트·서울영상위원회 해외사업팀)

―“일본의 어떤 감독도 이런 강한 영화를 만들지 못한다. 일본인 모두가 그의 작품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한번 매료되면 빠져나올 수 없다.”(일본 유바리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 시오타 도키토시)

―“위대한 예술가들이 시대와 소통하지 못한 경우는 많았다. 하지만 김 감독이 그만큼의 초월성을 가질 만한 존재인지는 의문이다.”(국내 한 여성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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