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고증’ 아예 신경 끈 ‘해품달’ 인기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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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17일 03시 00분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세자 이훤(여진구·오른쪽)은 첫사랑 허연우(김유정)를 세자빈으로 맞는다. 하지만 정쟁에 휘말리면서 비극적 운명을 맞는다. 팬엔터테인먼트 제공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세자 이훤(여진구·오른쪽)은 첫사랑 허연우(김유정)를 세자빈으로 맞는다. 하지만 정쟁에 휘말리면서 비극적 운명을 맞는다. 팬엔터테인먼트 제공
‘픽션 사극’이 안방극장을 평정하면서 사극 트렌드의 새 장을 열고 있다.

MBC 수목드라마 ‘해를 품은 달’(‘해품달’)이 방영 4회 만에 전국 시청률 23.4%(AGB닐슨미디어리서치)의 폭발적 상승세를 기록했다.

이 드라마는 허연우(한가인·아역 김유정)를 둘러싼 이훤(김수현·아역 여진구)과 그의 배다른 형 양명대군의 갈등과 함께 궁중 안팎에서 벌어지는 권력투쟁을 그렸다. 연우는 이훤의 세자 시절 세자빈으로 간택됐지만 왕실과 외척의 정치 싸움에 휘말려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잃은 채 무녀(巫女)로 살아간다. ‘성균관 스캔들’ 작가 정은궐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 팩션 대신 픽션 사극이 대세

최근까지 사극은 역사적 사실(팩트)을 기반으로 허구의 스토리(픽션)를 결합한 ‘팩션’이 대세였다. ‘다모’가 퓨전 사극 시대를 본격화한 뒤 최근 사극 열풍을 이끈 ‘뿌리 깊은 나무’ ‘공주의 남자’ ‘무사 백동수’도 모두 역사적 사실에 가공의 캐릭터와 스토리를 더해 만들었다.

반면 ‘해품달’은 조선시대가 배경이지만 등장인물과 사건은 100% 허구인 ‘픽션 사극’이다. 배경만 과거일 뿐 현대극과 다를 바 없다. 심지어 최근 10, 20대에서 유행인 뇌 구조 분석 장면이 등장하고 대사 중에는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에 빗댄 ‘차궐남’(차가운 궁궐 남자)이라는 조어도 나온다. 꽃미남 출연자에 ‘자체 발광’ 컴퓨터 그래픽을 그려 넣는 ‘황당한’ 비주얼도 선보인다.

10, 20대 연기자들이 이끄는 트렌디한 드라마 구조는 방학을 맞아 10대 시청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TNmS에 따르면 ‘해품달’ 4회까지 10대 평균 시청률은 6.9%로 20대 시청률(5.5%)을 앞선다. 10대는 원래 평일 TV 시청률이 가장 낮은 그룹이다. 최근 종영한 ‘뿌리 깊은 나무’ 역시 10대 평균 시청률(4.6%)은 20대 시청률(5.6%)에 못 미쳤다. 10대 시청률이 20대를 앞서는 경향은 지난해 같은 시기 방영된 ‘드림하이’와 같은 학원물에서나 볼 수 있던 것이다.

○ 사극 장점 살리고 단점 버려

픽션 사극은 기존 퓨전 사극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역사 고증 논란을 털어버리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실존 인물과 사건을 기반으로 하는 사극은 주인공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시대적 표현이 정확한지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해품달’은 이런 부담이 사라진 자리를 주술과 무녀 등 판타지 요소로 채워 드라마적 상상력을 키웠다.

최근 픽션 사극은 아이돌 가수 등 신인 연기자들의 드라마 ‘등용문’으로 자리 잡았다. 현대극만큼 풍부한 감정 연기가 필요하지 않은 데다 기존 사극보다는 비교적 젊은 감각의 대사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해품달’은 역사적 사건을 사실 그대로 표현해야 한다는 인식 자체를 무너뜨리며 역사 드라마의 지평을 확대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드라마와 역사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역사를 왜곡해 기억하게 될 수 있다거나 역사의식이 실종될 것을 걱정하는 시각도 나온다.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는 “역사를 드라마적으로 구성하는 것을 넘어 드라마를 역사적으로 구성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드라마라는 꿈의 영역과 역사라는 사실의 영역 사이에 ‘건강한’ 경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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