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영화는 치유제 또는 고통의 칼날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7일 03시 00분


北김정은에게 그리스 영화 ‘송곳니’ 추천… 이유는 잘 알겠지요?

영화는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래서 영화는 치유의 매개체이기도 하고, 사랑스러운 장난의 방편이기도 하며, 때론 마음을 고문하는 고통스러운 칼날이 되기도 한다. 자, 지금부터 나는 ‘국내외 화제의 중심에 선 인사들에게’ 다음과 같은 영화를 권해드리고자 한다. 이 영화로 치유 또는 고통 받으시길.

① 러시아로 귀화해 ‘빅토르 안’이란 이름의 러시아 쇼트트랙 대표팀 선수로 최근 국제대회에 출전한 ‘쇼트트랙 황제’ 안현수=강제규 감독의 ‘마이웨이’를 추천합니다. 전쟁이 만든 운명의 장난으로 처음엔 일본군으로, 다음엔 소련군으로, 마지막엔 독일군으로 참전한 남자의 기구한 운명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거울처럼 비쳐 보시길. 군복은 바뀌어도 마라토너의 꿈을 접지 않은 주인공처럼 유니폼은 바뀌어도 쇼트트랙에 대한 순수한 사랑만은 변치 말기를.

② 걸 그룹 ‘소녀시대’ 멤버 제시카=애니메이션 ‘월·E’를 추천합니다. 멸망하고 모든 생명체가 사라진 지구에 월·E라는 로봇과 바퀴벌레 딱 한 마리만이 살아남아 영원한 우정을 나눈다는 얘기. 왜 이 영화를 추천하느냐고? 올해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데, 혹시 멸망하더라도 나랑 제시카랑 딱 둘만 지구상에 살아남았으면 좋겠다는 나의 이기적 소망을 담은 영화이기 때문이에요. 흐흐. 제시카! 그대가 있기에 내가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주인공처럼 나날이 어려져요.

로버트 로드리게스 감독의 SF 영화 ‘패컬티’. 동아일보DB
로버트 로드리게스 감독의 SF 영화 ‘패컬티’. 동아일보DB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최근 수평적 나눔 실천을 목표로 하는 기부재단 설립안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정치 참여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우리 사회 발전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지 생각하고 있다. 정치도 그중 하나일 수 있다”며 여전히 애매한 발언을 계속하시는 안 원장님께는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감독의 영화 ‘희생’과 미셸 공드리 감독의 영화 ‘수면의 과학’을 추천해드립니다. 이 난해하고 복잡하기 짝이 없는 영화들을 보시면 ‘아니, 도대체 뭔 말을 하려는 거야?’ 하고 짜증 제대로 나실 겁니다. 지금 우리들의 마음이 그래요. 정치, 하시는 거예요, 안 하시는 거예요?

④ 아이돌그룹 ‘인피니트’의 멤버 과 ‘틴탑’의 멤버 천지=너희들이 하도 잘생겨서 소녀들이 추종하는 바람에 요즘 내 여중생 조카도 너희 나오는 TV 프로 챙겨보느라 공부를 안 해 전교 꼴등한다. 응징하는 뜻에서 ‘트리 오브 라이프’라는 명상적 영화를 너희에게 추천해 주마. 아마 보다가 지루해서 죽을 걸?

⑤ 최근 일본 국회 외교연설에서 독도에 대한 부당한 영유권을 주장한 겐바 고이치로 일본 외상=당신에게는 일본 영화가 적합할 터이니 ‘아내의 동창회’ ‘에츠코의 음란한 비밀’, 아니면 ‘IT 버블과 같이 잔 여자’ 같은 일본 에로영화를 적극 추천합니다. 제목만 보고 무지하게 기대하고 봤다가 결국 하나도 야하지 않음을 확인하는 순간 밀물처럼 밀려드는 배신감과 상실감을 그대에게 선물하노라!

⑥ 새까만 겨울점퍼 떼로 입고 다니며 몰려다니는 중고교 ‘1진’들=너희에겐 영화 ‘맨 인 블랙’을 추천하마. 까만 옷 떼로 입고 다니려면 약한 애들이나 괴롭히는 대신 지구를 지킬 정도의 포부는 있어야지…. 아, ‘패컬티’라는 영화도 추천해주마. 이 영화, 외계생물체에 감염된 고등학교 교직원들이 휙 눈이 뒤집혀서 학생들을 인정사정없이 도륙하는 내용이다. 이거 보고 선생님들 무서운 줄 알아라.

가부장적 아버지의 운명적 결말을 담은 그리스 영화 ‘송곳니’. 컴퍼니 엘 제공
가부장적 아버지의 운명적 결말을 담은 그리스 영화 ‘송곳니’. 컴퍼니 엘 제공
김정은 북한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2009년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서 대상을 받은 그리스 영화 ‘송곳니’를 추천합니다. 어느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자식들을 울타리 안에 철저하게 가둬놓은 채 평생 통제하는 부모와, 그들에게 길들여진 채 묵묵히 살다가 점차 자유를 갈망하게 되는 세 남매의 이야기예요. 왜 추천하는지는 알겠지요?

⑧ ‘애정남’ 최효종=송강호 신세경 주연의 ‘푸른소금’을 그대에게 추천해 드립니다잉. 이거 안 본다고 쇠고랑 안 찹니다잉. 경찰 출동 안 해요잉. 하지만 한번 보세요잉. 주인공 남녀 간의 감정이 에로스 사랑인지, 아가페 사랑인지, 동지애인지, 아니면 부녀간의 사랑 같은 것인지 영 애매합니다잉. 최근 엄태웅이 주연한 ‘특수본’이나 ‘네버엔딩 스토리’ 같은 영화들도 적극 추천합니다잉. 이거 보면 재미있는 건지 재미없는 건지 영 애매해서 속 터져요잉.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무비홀릭#안철수#안현수#엘#제시카#천지#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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