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주월의 맛깔나는 문어체 대사…하정우가 아니라면
● ‘베를린’, ‘앙드레 김’ 올해에도 차기작 줄 이어
브라운관의 대세가 MBC ‘해를 품은 달’의 김수현이라면, 스크린에선 하정우다.
하정우는 이달 초 개봉한 영화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섹시’를 담당했다. 그는 절제된 행동과 말로 카리스마를 내뿜는 조직의 두목 최형배로 분했다. “여성 관객은 나의 몫”이라고 자칭할 정도. 그 덕분에 ‘범죄와의 전쟁’은 남녀 관객을 고루 끌어 모으며 누적관객 수 300만 명을 넘겼다.
영화 ‘러브 픽션’(감독 전계수, 29일 개봉)에서 다시 만나는 하정우는 정반대다. 그가 연기하는 구주월은 ‘평범’ 그 자체인 31살 소설가다. 특이사항이라면 채식주의자이며, 입담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 정도. 밤길 최형배와 부딪치기라도 한다면 바로 줄행랑을 칠 법한, 소심한 면도 있다. 남자다운 매력은 없지만, 그런대로 정이 간다.
주월은 글이 좀처럼 써지지 않자 ‘뮤즈’의 필요성을 깨닫는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세련된 커리어우먼 희진(공효진)에게 빠진다. 희진에게 잘 보이기 위해 손 편지를 쓰고, 실없는 농담도 던진다. 결국 희진의 겨드랑이 털까지 사랑하기에 이르지만, 어느 순간 어느 연인들처럼 싸우고, 서로 상처주기를 반복한다.
‘쥐뿔 없지만 입만 산’ 구주월은 과거 ‘멋진 하루’의 병운을 닮았다. 하지만 주월은 병운보다 덜 얄밉다. ‘깨알 같은’ 생활 연기와 문어체의 대사는 주월을 도리어 귀엽게 만들었다.
특히 희진에게 자신의 감정을 처음으로 고백하는 신은 꽤 인상적이다. 독백에 가까운 대사는 2분 가까이 이어지고, 단어들 역시 ‘우아, 숭고’ 등 남다르다. ‘연습벌레’ 하정우는 좀처럼 입에 붙지 않았을 문어체 대사를 체화시켰고, 그 덕분에 굉장히 연극적인 이 장면은 영화 속에서 자연스럽고, 사랑스럽게 녹아 들어갔다.
전계수 감독은 “이 장면을 여러 각도에서 찍었지만, 하정우는 NG 한 번 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정우는 “연습 밖에 없었다. 오랜 시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담담히 답변이지만, 지난해 하정우의 ‘살인적인 일정’을 살펴보면 또 다르다. 2011년 ‘황해’와 ‘의뢰인’을 내놓았고, 그 사이 ‘범죄와의 전쟁’과 ‘러브픽션’, 프로모션 용 단편을 찍었다. 홍보일정과 촬영을 병행했으며, 자서전을 냈다.
단순히 바쁜 것만 따지면 아이돌에 비할 바 못된다. 하지만 하정우는 작품의 흥행과는 별개로 항상 연기 면에서는 호평을 받았다. ‘양과 질’ 모두 최대로 이끌어 내고 있는 셈이다. 그야말로 치열하다.
하정우의 이런 행군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그는 ‘의뢰인’ 인터뷰 당시 “‘러브 픽션’ 끝나면 확실히 쉬겠다”고 했지만, 결국 거짓말(?)이 됐다. 3월에는 영화 ‘베를린’(감독 류승완)에 들어가고, 그 후엔 ‘앙드레 김’(가제)이 기다리고 있다.
하정우 씨, 밥은 먹고 다니시는 거죠?
동아닷컴 김윤지 기자 jayla3017@donga.com 사진제공=삼거리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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