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화차’ 김민희, ‘나는 배우다’의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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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29일 10시 00분


영화 ‘화차’(8일 개봉, 감독 변영주)는 누군가의 인생이 얼마나 박복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다.

앞서 우리는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마츠코를 통해 깊고도 진한 우울함을 맛본 적이 있다. ‘화차’ 역시 행복해지길 간절히 바랐지만, 결국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한 여자의 한 많은 인생을 담고 있다.

원작인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화차’는 거품 경제가 무너진 90년대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혼마 형사는 조카의 부탁을 받아 조카의 사라진 약혼녀를 찾기에 나서는 데, 그 과정에서 ‘그녀’의 믿을 수 없는 과거가 파헤쳐진다.

소설의 특이점은 ‘그녀’를 비난하거나 동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야베 미유키는 혼마를 빌어 ‘그녀’가 왜 남의 인생을 훔치려고 했는지 그 원인에 주목한다. 이는 일본의 시대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독자로 하여금 애절한 마음을 자아낸다.

변영주 감독은 이 매혹적인 이야기를 2010년대 서울로 가져오면서 자신의 방식으로 현실성을 부여했다. 원작에서는 다소 미미한 선영(김민희)과 문호(이선균)의 관계가 부각이 되고, 전직 형사 종근(조성하)의 비중은 줄었으며, 결말이 좀 더 명확하다. 무엇보다 영화는 사회적 문제가 아닌 개인에 초점을 맞췄다.

이 때문에 영화 자체로 완성도 높은 미스터리물이지만, 소설에 비해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아쉬움은 피할 수 없다. ‘그녀’는 소설에선 시대의 희생물이라면 영화에선 조금 벗어나 있다. 선영은 그저 행복을 바랐던 한 여자에 머물며, 문호는 선영의 경악스러운 실체에도 그를 포기 못하는 ‘집착’을 보여준다.

허나 영화는 직접 지옥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유리하다. 변영주 감독 역시 “성찰적으로 설명해주는 것보다 어떤 것이 지옥과 같은 상황이고 이것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소설에선 누군가의 이야기 혹은 혼마의 추리로 ‘그녀’의 과거가 한 조각 한 조각 맞춰지지만, 영화에선 충격적 과거가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표현됐다.

그리고 김민희는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냈다. 어쨌거나 ‘화차’는 여주인공이 얼마나 흡인력 있게 이야기를 이끌어갈 수 있는지가 흥행의 관건이다. 김민희는 그간 보여주지 않았던 광기 어린 모습으로 애절한 여인을 연기한다.

가냘픈 몸매와 도회적인 외모. 김민희의 기존 이미지는 문호가 기억하는 선영의 모습과 닮아 있다. 그런 김민희는 극중 지문을 지우기 위해 강박증에 시달리는 여자처럼 온 집안을 청소하고, 펜션 신에서는 표정과 최소한의 동작으로 목표물을 제거한 기쁨과 두려움이 표현해낸다. 황량한 소도시에서 온갖 상처를 받으며 굴러다니기도 한다.

그 극단적인 순간들은 상당히 인상적이며, 심장을 죄여오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또한, 세련된 패션 감각과 모델 출신에 가려져 김민희의 진지한 연기 욕심을 보지 못했던 관객들에겐 신선한 경험이 될 것이다.

더불어 ‘귀신같은 섭외력’을 보여주는 공간과 낮게 깔리는 음악, 불안한 앵글로 구성된 화면 등도 흥미롭다. 특히 이선균, 조성하가 이희준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진해의 흑백다방은 작품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진다.

동아닷컴 김윤지 기자 jayla3017@donga.com
사진제공=영화제작소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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