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차’,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1위 “감동”
● “‘화차’는 ‘아름다운 영화”
● ‘배우’…가장 좋아하는 수식어
배우 김민희(30)는 ‘아름답다’는 말을 자주 썼다.
그는 “지인 분이 ‘화차’ 속 제 연기가 아름답다고 해요!”라며 수줍게 말했다. 새롭고 시적인 표현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김민희는 영화 ‘화차’(8일 개봉)에서 남의 인생을 훔친 여자 선영(또는 경선) 연기했다. 속옷에 피 칠갑을 하고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 “언니, 택시비 좀 내주세요”라며 한없이 여린 양도 되고, 아버지의 죽음을 간절히 기도하는 표독한 악마도 된다.
잔을 양손으로 감싸고 조심스레 커피를 마시는 우아한 그의 모습에선 상상할 수 없는 얼굴을 변영주 감독은 용케 발견했다.
그리고 변 감독의 혜안은 빛을 발했다. ‘화차’는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14일까지 누적관객 수는 93만 8,690명. ‘뜨거운 것이 좋아’, ‘여배우들’, ‘모비딕’ 등 김민희의 전작들이 평단의 반응에 비해 흥행이 부진했던 만큼, 그는 들떠 있었다. 수시로 예매율을 확인했다.
- 반응이 좋아요. 기분이 어떤가요?
“처음인 것 같아요. 관객 분들께 보여 드리려고 열심히 작업한 거잖아요. 우리끼리 좋으려고 만든 게 아니니까요. 이런 반응이 처음이어서 그런지 감동이에요. 무대인사 갔을 때 객석에 관객들이 가득 차 있는데 좋더라고요. 꽉 채워진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최종목표는 사랑받으려고 만든 거니까요. 그래서 더 잘됐으면 좋겠어요.”
- 하지만 정작 촬영할 때는 매 장면 격정적이고 극단적입니다.
“펜션 신이나 기도 장면은 정말 힘들었어요. 그 순간만은 감정을 제가 고스란히 안고 있는 거니까요. 혼자 있으면 계속 그 장면이 떠올랐을 거예요. 하지만 현장 분위기가 정말 좋았어요. 제가 외롭지 않게 편안하게 해주셨어요. 그런 배려가 있어서 금방 빠져나온 것 같아요. 또 두 가지를 같이 못 해요. TV 틀어놓고 컴퓨터를 한다거나. 그런 걸 못 해요.”
■ 김민희, 미워할 수 없는 그 여자의 얼굴
- 만약에, 정말 만약에 그런 상황에 실제 처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 것 같나요?
“저라면 더 현명하고, 슬기로웠을 거예요. 처음에 시나리오 받았을 때 차경선이란 인물이 답답했어요. ‘다른 방법도 있잖아!’라는 의문을 잠깐 가졌어요. 경선이는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고통과 빚을 다 떠안은 거잖아요. 그만큼 미련하고, 그만큼 보호받아야 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 원작에서 경선은 그림자만 존재합니다. 영화에선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려지죠. 화면에는 감정의 절정만 있지만 연기할 땐 더 큰 그림이 있었을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받을 때나, 원작을 읽을 때도 그랬어요. 머릿속으로 선영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기쁨이었어요. 제가 아름답고 느낀 영화에서 등장하는 여배우의 모습과 닮아 있었어요. 표현의 폭이 넓어지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채업자에게 도망쳐 택시에서 내릴 때는 마치 홍콩 누아르 한 장면 같잖아요. 물론 선영의 감정은 깊고 우울하지만 표현되는 방식들이 흥미로웠어요.”
- ‘화차’는 한 여자의 잔혹사예요. 그런데 정작 본인은 “아름답다”고 표현했어요.
“저는 이상하게 비극을 보면요, 마지막에 여운이 많이 남잖아요. 그게 아름다움으로 승화되는 것 같아요. 음…이상한가요? 슬퍼서 눈물이 나지만 전 그 감정이 아름답다고 느껴져요. ‘화차’를 보고 나면 선영이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가엽고 불쌍하게 느껴지잖아요. 그런 게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물론 현실이라면 그렇지 않지만 ‘화차’는 영화니까요. 영화 속에서의 표현이나 감정들이 아름다운 것 같아요.”
■ “결말은 최선의 선택…더 많은 여운을 줬길”
- 원작에서는 선영을 찾는 것으로 끝납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좀 더 명확한 결말입니다.
“음…. 저는 선영이 죗값을 치러서 관객들이 오히려 연민을 느끼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것 같아요. 만약 그 여자(선영)가 마지막에 용산역에서 도망갔다면 그런 마음이 안 들 것 같아요. 그렇다면 악인으로 끝나는 거잖아요. ‘화차’가 재미있는 점은 선영이 살인을 저지른 악한 인물이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처음부터 감독이랑 선영이란 인물이 선인지 악인지 헷갈리게 하자고 했어요. 그래서 지금의 결말이 최선의 선택이고, 관객들에게 더 많은 것을 줬다고 생각해요.”
- 변영주 감독이 방송 프로그램에서 “김민희는 (자기 분량이 없어도) 소풍 온 아이처럼 현장을 돌아다닌다. 그러다 기다리는 게 지치면 길바닥에 주저앉아 자기가 싸 온 삶은 고구마를 뜯어 먹기 시작한다”고 말했습니다.
“(웃음) 제가 고구마를 좋아해요. 그런 곡물 종류를 좋아해요. 촬영장에 종종 싸갔어요. 전 아침에 밥보다 고구마 먹는 게 좋더라고요. 많이는 못 싸가고 먹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드실래요?’하고 물어보는데 꼭 싫다고 하세요. (웃음) 그렇게 고구마 먹는 모습이 감독님이 보시기에 웃겼나 봐요. 저에게 PD님이 요리 잘하느냐고 했어요. 그래서 ‘손맛이 좋아서 대충 해도 다 맛있어요’라고 답했더니, 막내냐고 물으셨어요. 그렇다고 했더니 저 같은 성격의 애들이 다 조금씩 잘한다고 하시더라고요.”
- 요즘 홍보를 목적으로 많으면 서너 개의 예능프로그램을 출연하기도 하는데, 변영주 감독, 이선균, 조성하와 함께 MBC 예능프로그램 ‘놀러와’에 출연한 정도입니다.
“전 털털하지만 말투나 행동은 여성스러운 사람이에요. 낯을 좀 가려서 예능에 나가서 잘 못 해요. 제가 하면 이상해져요. 반응도 썰렁하고.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면서 더 못하게 되고. 사실 말을 많이 하는 게 불필요하다고도 생각하고요. 전 제 이야기를 나가서 많이 하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 “10대 모델 시절, 가장 거칠었던 시절”
- 10대에 일찍 모델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가 김민희에게 준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준 게 너무 많아요. 그때가 없었으면 지금이 없었을 테니까요. 과거에 후회는 없어요. 자꾸 되돌아보는 편도 아니고. 서른이란 나이 때문인지, 재발견이란 것 때문에 인터뷰하면 과거를 많이 물어보시더라고요. 사실 기억이 뚜렷이 없어요. 너무 빨리 보내버려서 그런지, 좋은 것만 기억해서 그런지 좋은 기억만 있어요. 물론 그때부터 신체를 잘 쓰고, 콘셉트에 맞는 분위기를 잘 만드는 건 제 장점이었어요. 그런 부분이 이번 영화에서도 잘 활용됐고요. 몸으로 눈빛으로 하는 연기가 많았으니까요. 그런 연기가 힘들기보다 오히려 많이 즐기는 편이었어요. 옛날에는 막연하게 무용수 같은 역할도 해보고 싶다 생각했어요.”
- 선영(경선)처럼 모진 면이 혹시 있나요?
“모질었다기보다 거칠었던 순간을 꼽자면 10대 때요. 뭐라고 하지. 질풍노도의 시기였어요. 사춘기라고 하잖아요. 그때 일기를 보면 참 비관적이에요. 내가 이랬었나 싶을 정도예요.”
- 패셔니스타 등 여러 가지 수식어가 있잖아요. 어떤 수식어가 가장 좋은가요.
“음…. (한참 고민을 하다가) ‘배우’요. 아. 저 자랑 하나 할게요. 혼내시려나. 윤여정 선생님이 문자를 보내셨어요. ‘장하다’고. 매우 기뻤어요.”
- 마지막으로 ‘화차’를 홍보하자면?
“누가 그러시더라고요. ‘화차’는 2번 봐도 재미있다고요. 처음 봤을 때는 문호(이선균)의 감정을 따라가고, 나중에는 선영을 따라가는 거예요. 느낌이 많이 다를 거예요. 많이 봐주시면 좋겠어요.”
글 동아닷컴 김윤지 기자 jayla3017@donga.com 사진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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