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한 지 7년이 넘었지만 김옥빈은 ‘예쁜’ 역할을 맡은 적이 별로 없다. ‘박쥐’에선 맨얼굴로, ‘고지전’에선 흙을 묻히고 나왔고 ‘시체가 돌아왔다’에서는 핑크색 헤어와 올 블랙 복장이다. 그는 “예쁘기보단 느낌이 있는 역할을 맡고 싶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29일 개봉하는 영화 ‘시체가 돌아왔다’는 한탕을 노리고 시체를 훔치는 주인공들과 시체를 되찾으려는 무리, 이들의 뒤를 캐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군상이 시체를 사이에 두고 쫓고 쫓기며 펼쳐내는 소란을 그렸다. 범죄사기극을 표방했지만 치밀한 구성이나 엄청난 반전보다는 주인공부터 악당까지 어딘지 ‘정상적이지 않은’ 캐릭터들이 주는 웃음이 포인트다.
“시나리오를 봤는데 정말 ‘×맛’(내용이 이상하고 말이 안 되는 만화 등을 일컫는 비속어)같은 거예요! 제가 원래 B급 코미디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데 이거다 싶었죠. 너무 재밌어서 감독님께 끼워달라고만 했어요.”
하얗고 조막만 한 얼굴에 커다란 눈을 반짝이던 여배우가 느리고 걸걸한 목소리로 낄낄거리며 웃었다. 26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 영화의 여자 주인공 김옥빈(25)은 인형 같은 외모 너머에 ‘반전’이 있는 배우였다. 평소에도 국내 코미디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외국 코미디 프로그램까지 섭렵한다는 그는 “저의 코미디 DVD 컬렉션에 넣을 만한 영화에 출연하게 돼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이 영화에서 선배 이범수, 류승범 등과 호흡을 맞춘 김옥빈은 ‘뼛속까지 다크한’ 인물인 동화 역을 맡았다. 핑크색 머리에 검은색 펑키한 복장이 인상적인 동화는 자신의 아버지를 혼수상태에 빠지게 한 회장 일행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회장을 납치하려다 그가 죽자 대신 시체를 훔치는 시체도둑이다. 데뷔작인 ‘여고괴담4’에서부터 그를 지켜본 제작사 씨네2000의 이춘연 대표는 시나리오를 보고 “동화는 옥빈이다”며 미리 정했다고 한다.
“영화 속 동화를 보면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점에서 제 데뷔 시절과 닮은 것 같아요. 처음에는 무서워하는 것 없고, 열정만 가득한 어린애였죠. 그래서 상처도 많이 받고, 울기도 많이 울었고요. 글쎄, 지금은 좀 변한 것도 같은데….(웃음)”
과거에 비해 달라졌다지만 그의 ‘남다른’ 취향은 여전하다. 데뷔 당시 태권도 2단, 합기도 3단 등 무술유단자 경력으로 화제가 됐던 그는 여전히 운동을 즐기고, 오토바이 등 빠른 것에 열광하며 록 음악을 좋아한다. 최근에는 ‘오케이 펑크’라는 프로젝트 밴드를 결성해 이끌었고, 공연 무대 위에서 연인과 공개키스를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남들은 파격적이라고 하는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억지로 ‘가짜 나’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사람 사는 자연스러운 모습 아닌가요?”
올해로 데뷔 7년 차인 그는 ‘청순’을 무기로 삼는 또래의 충무로 여배우들과 다른 길을 선택했다. 몇 편 안 되는 출연 영화 속에서 그는 귀신이 된 여고생(‘여고괴담4’)이거나 혹은 뱀파이어가 되는 팜파탈(‘박쥐’), 북한 인민군 저격수(‘고지전’)처럼 흔치 않은 여성 캐릭터들을 연기했다. 혹시 평범한(?) 멜로 영화에 출연할 생각은 없을까.
“아직 눈물 쏟고 사랑을 외치는 스토리에는 자신이 없어요. 재미있고 특이한 소재에 더 끌리더라고요. 멜로는 30대 넘어서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때가 되면 사랑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좀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이 독특한 여배우가 앞으로 보여주게 될 ‘반전’ 있는 멜로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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