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 인천국제공항에서 가수 서태지 씨(왼쪽)가 김성태 씨(오른쪽)의 경호를 받으며 입국하고 있다. 김대표는 “그의 신비주의적 이미지는 경호전문가로 안전 관련 금기사항을 늘린 제 탓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최근 서태지 데뷔 20주년 기획 기사를 준비하면서 기자는 ‘그를 가장 가까이서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은 누구일까’를 고민했다. 정답에 가까운 열쇠를 쥔 인물을 얼마 전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경호업체인 티알아이인터내셔널의 김성태 대표(43). 서태지 경호와 관련해서는 언론과의 첫 인터뷰였다.
김 대표는 1993년 서태지와 아이들 콘서트를 시작으로 20년째 서태지 옆자리를 지켜온, 말 그대로 최측근이다. 올백 머리를 하고 짙은 눈썹 아래 동그란 눈을 빛내는 그는 작은 카페 안에서 금방 눈에 띄었다.
“스키드로 같은 해외 록밴드를 좋아하다 1992년에 (서)태지 씨를 TV에서 보자마자 ‘광팬’이 됐죠.”
1993년 당시 25세였던 그가 경호업체를 차릴 때만 해도 우상 서태지가 클라이언트가 되리라는 상상은 못했다. 그는 “잠이 안 왔어요. 소풍 전날처럼”이라며 서태지와 아이들의 경호 의뢰가 들어온 순간을 회상했다. 그는 보름간 밤을 새워 30쪽에 이르는 ‘서태지와 아이들 경호 매뉴얼’을 직접 만들었고 이후 서태지는 그의 20년 고객이 됐다.
그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공식 일정마다 서태지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 움직였다. “아무도 안 믿었으니까요. 경호의 제1원칙이 ‘서태지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의심하라’였어요.” 서태지 관련 일정이라면 직원들에게조차 당일에야 내용을 알렸다.
김 대표가 꼽은 일생일대의 임무는 2000년 서태지 컴백 현장 경호. 김포공항 제1청사는 수천 명의 팬과 취재진으로 가득 찼고, 서태지가 ‘탈출’할 틈은 없어 보였다. 김 대표는 공항 직원용 주차장 쪽 출구를 비밀 퇴로로 확보했다. 접선 장소도 2안, 3안으로 여러 곳을 뒀다. 천신만고 끝에 빠져나온 서태지는 눈에 띄지 않도록 준비한 허름한 쏘나타 차량에 올라 공항을 빠져나왔다. 4년 만에 재회한 서태지의 첫 인사는 “오늘도 고생이시네요, 실장님.” 김 대표의 머릿속에는 1996년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기자회견의 기억이 겹쳐졌다. 회견 뒤 취재진과 팬들을 따돌린 서태지가 자주색 밴 안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이던 모습이.
김 대표는 서태지를 ‘친구, 동생, 은인이자 나의 스승’이라고 했다. “태지 씨의 걸음 폭과 속도로 어떤 동선이 몇 분 몇 초 만에 주파되느냐를 계산하고, 3안까지 마련한 퇴로 중 어떤 것을 선택할지는 이동 직전에 결정해야 했죠. 그런 경험 덕에 지구상의 누구든 경호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노하우가 생겼어요.”
그는 서태지 경호를 시작으로 HOT, 동방신기, 신승훈, 슈퍼주니어, 이승환, 에릭 클랩턴, 메릴린 맨슨, 메탈리카, 빌 클린턴, 존 F 케네디 주니어, 국가대표 축구팀 등 숱한 국내외 스타와 대형 이벤트의 경호를 맡아 왔다.
김 대표는 “태지 씨와 누구든 3일만 같이 지내면 팬이 되지 않을 수 없다”며 “처음과 끝이 똑같은 유일한 클라이언트이고, 주변엔 관대하면서 음악적으론 스스로를 혹독하게 다루는 진정한 프로”라고 말했다. 그는 “제 기사는 최대한 작게 써 달라”며 기자에게 악수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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