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코다요, 고코(여기야, 여기)!”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 도산대로 89길과 압구정로 79길이 교차하는 작은 사거리. 일본인 관광객 사토 씨(24)와 친구 둘이 멈춰 섰다. JYP엔터테인먼트 사옥에 걸린 원더걸스와 2PM의 사진을 향해 연방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도산대로를 타고 청담사거리에서 영동대교 남단 쪽으로 가다 프리마호텔 조금 못 미쳐 동북쪽 샛길로 접어들면 비스트, 포미닛, 지나 등이 소속된 큐브엔터테인먼트 본사 건물이 먼저 나온다. 더 안쪽으로 40m쯤 들어가면 JYP 사옥이다. 여기서 빌라촌을 지나 북쪽으로 3분만 걸으면 올림픽대로 변의 SM엔터테인먼트 오피스 사옥을 만난다. 반경 350m 내에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동방신기, 2PM, 원더걸스, 비스트 등 케이팝(K-pop·한국대중음악) 아이돌 첨병들의 아지트가 밀집해 있는 셈이다.
○ 350m 일직선상에 대형 기획사 셋
청담동 일대에 가요 기획사들이 둥지를 틀기 시작한 것은 2002년 2월 JYP 사옥이 들어서면서부터. JYP 출신의 홍승성 대표가 길 건너에 2008년 큐브엔터테인먼트를 세우면서 이곳은 가요 팬들의 순례지이자 집결지가 됐다. 2010년에는 올림픽대로 변에 SM의 오피스 사옥이 들어섰다. 아직 해외 팬들에게는 덜 알려졌지만 차를 타고 지나다 발견하고 내려서 사진을 찍는 이들이 적잖다는 게 SM 관계자의 귀띔이다. 20m 서쪽엔 씨엔블루, FT아일랜드의 FNC뮤직 사옥이 10월 입주를 목표로 공사 중이다.
JYP 앞 던킨도너츠나 큐브 1층의 커피숍 아마폴라는 순례 팬들의 쉼터가 됐다. 16일에는 큐브엔터테인먼트가 본사 사옥 뒤편에 마련한 연습실 겸 작업실 건물인 큐브스튜디오 1층에 ‘큐브카페’를 오픈하며 본격적으로 관광상품화에 나섰다.
가요가 케이팝으로 발전하고 해외 팬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이 지역은 이처럼 필수 답사코스가 되고 있다. 큐브엔터테인먼트 안효진 대리는 “1, 2년 전엔 스타를 육안으로 보기위해 찾아오는 국내 팬들이 많았는데 최근엔 사옥 앞에서 사진만 찍고 가는 해외 팬들이 많다”고 말했다.
JYP 사옥 앞에서 만난 사토 씨는 “‘앙앙’처럼 일본 젊은이들이 많이 보는 잡지와 일본 인터넷 블로그 등에 이곳이 많이 소개돼 있어 찾아왔다”며 “블로그에서 본 근처 맛집 ‘ㄱ’ 식당에 갈 차례”라고 자리를 떴다. 그의 일행은 압구정동 ‘에브리싱’(SM이 직영하는 노래방)에서 스타 상품을 사오는 길이었다.
○ 패션 거리-미식 타운 거친 30년
과거 주거지와 함께 드문드문 논밭이 있었던 청담동은 1980년대 중반 패션 타운이 들어서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명동의 유명 디자이너들은 새 고객을 찾아 잇달아 한강을 건넜다. 1990년대 이후 청담사거리에서 한양아파트 앞 사거리까지 610m 구간이 이른바 ‘청담동 명품거리’라는 이름으로 블록화됐다. 카르티에, 루이뷔통 등 세계적인 브랜드 매장이 줄을 섰다. 웨딩숍도 집중됐다.
90년대 초반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에 이목이 쏠린 뒤 좀 더 사적이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원하는 이들은 윗동네(청담동)로 올라왔다. 90년대 후반 벤처 붐 때 재미교포 등 젊은 부유층이 몰렸으나 이후 거품이 빠지면서 일주일에 술값을 500만 원씩 쓰던 ‘마이클’들은 사라졌다.
명품거리 안쪽 블록에는 미식 거리가 형성됐다. 청담동에 20여 년 거주한 최지영 ‘소 트루’ 레스토랑 대표는 “고급 레스토랑은 청담초등학교를 중심으로 90년대 후반부터 들어섰고 2000년대 초반 최고 호황을 누렸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최 대표는 “5, 6년 전부터 신사동 가로수길과 이태원 경리단길, 삼청동길 등으로 레스토랑들이 분산되면서 미식 중심으로서 청담동의 역할은 줄고 있다”고 말했다.
○ “문화관광 중심 탈환” 나서
청담동은 케이팝 붐을 견인차로 패션, 미식 등을 아우르는 문화관광 중심의 탈환을 노리고 있다. 6월 말경 예정된 한류스타거리 지정이 신호탄이다. 김광수 강남구 공보실 마케팅팀장은 “SM, JYP, 큐브를 잇는 구역을 1차로 조성한 뒤 도산대로 방면으로 한류스타거리를 확대할 예정”이라면서 “스타들의 핸드프린팅과 포토존, 상징물 등을 설치하고 맛집, 쇼핑가 등을 담은 지도를 제작해 배포하는 등 해외 홍보에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20년째 이 일대에 살고 있는 이방섭 씨(65)는 “가요기획사들이 들어서면서 청담동의 이미지가 새로 채색되고 있다”며 “상권의 변화에도 청담동이 지닌 아우라는 당분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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