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오후 일본 도쿄의 번화가 아오야마에 위치한 JYP 저팬 사무실. 대형 음반사인 아리오라 저팬의 가루베 시게노부 대표(52)와 정욱 JYP엔터테인먼트 대표(41)가 이곳에서 만났다. 아리오라 저팬은 일본 최대 음반사인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 저팬의 자회사 중 하나. ‘4월 이야기’ ‘고백’ 등으로 유명한 배우 마쓰 다카코와 정상급 R&B 스타 미시아 등이 소속돼 있다. 양측은 2PM과 2AM의 일본 현지 활동을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서로가 바라보는 일본 대중음악 시장과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의 현주소가 궁금했다.
정 대표는 일본 아이돌의 긴 역사를 언급하며 운을 뗐다. 그가 “미국에서 1950년대부터 존재했던 아이돌의 개념이 일본에서 시스템으로 체계화됐다”고 하자, 가루베 대표는 “케이팝이 일본 음악 시장을 바꾸고 있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일본 시장에서 전통적으로 먹혀온 ‘아이돌=가와이(귀엽다)’의 등식을 케이팝이 깨고 있습니다. 안무만 봐도, 일본 아이돌은 누구든 따라할 수 있는 것을 하는 반면, 한국 아이돌은 보는 이를 압도하는 질 높은 것을 추구합니다. 이런 것이 대중의 숭앙을 끌어냈죠.”
일본 대중음악 시장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로 꼽힌다. CD 등 실물 음반 시장은 최근 미국마저 넘어섰다. 아리오라가 속한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 저팬은 지난해 1743억 엔(2조6000억여 원)의 매출을 올렸다. 가루베 대표는 제이팝(J-pop·일본대중가요)의 힘으로 ‘다양성’을 꼽았다.
그렇다면 한국의 비(非)아이돌 뮤지션들의 일본 시장 입성도 가능할까. 가루베 대표는 “잠재력이 충분하다”면서도 “노랫말에 대한 한국 정부의 엄격한 제재는 장애가 될 수 있다. 아티스트로서 자신만의 세계관이 확고한 이들이 일본 시장에서 마니아를 확보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또 그는 케이팝의 성공 배경으로 제이팝 시장의 정체를 지적했다. “일본 시장은 갖가지 트렌드가 돌아 제자리에 왔다. 성숙한 만큼 신선도가 떨어졌다. 이 사이 새롭고 강한 임팩트를 지닌 케이팝이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두 대표는 양국을 포함한 세계 음악 시장의 축소에 공감하면서 유럽과 북미 시장 공동 진출에 대해 의견을 모았다. “미국 팝스타나 일본 애니메이션과의 과감한 협업 등 대담한 시책이 필요합니다. 관건은 슈퍼스타 발굴이죠. 일본에서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스타 이시카와 료 한 명이 골프업계 전체의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음악 시장에서도 같은 모델이 필요합니다.”(가루베 대표)
“향후 음악, 애니메이션, 영화, 게임 등 여러 콘텐츠가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될 겁니다. 기술이 통합을 요구하고 있죠. 기본은 역시 좋은 콘텐츠를 보유하면 플랫폼이 아무리 변해도 살아남을 거라는 겁니다. 잘 만든 콘텐츠의 극대화된 예가 슈퍼스타죠.”(정 대표)
두 사람은 제이팝과 케이팝의 경계가 모호해진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가능성을 도모할 때라는 데 공감했다.
“요즘 같은 적극적인 문화 합작은 한일 관계 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중요한 건 케이팝, 제이팝의 구분과 경쟁이 아니라 공존과 협력이죠. 문화는 반드시 ‘양방향’이어야 합니다.”(정 대표) “두 나라의 협력이 더 공고해지면 네트워크와 콘텐츠가 합쳐져 아시아뿐 아니라 유럽과 북미 시장에서도 선전할 수 있습니다.”(가루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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