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4일 월요일 맑음.
어둠, 달의 뒤편보다 어두운. 트랙#11 Pink Floyd ‘Eclipse’(1973년)
어둠.
그가 날 찾아온 건 며칠 전 밤이었다. 정확히는 1일 오전 3시 45분 일본 도쿄 P호텔 2815호실.
욕조에 있었다. 샤워기의 물을 맞으며. 룸메이트인 후배의 외침이 욕실 문을 넘었다. “저, 옆방 좀 다녀올게요.” 경쾌하게 답했다. “그래요!” 쏟아지는 물에 벗은 몸을 맡긴 난 반쯤 취기가 올라 콧노래마저 흥얼거리던 참이었다.
그 순간, 암전. 그 후배가 문 옆 키홀더에서 출입문 카드를 뽑아든 순간 실내의 전원이 모두 나간 것이다. 순식간에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에 휩싸였다. 공포가 엄습했다. 머리 위 어딘가 있을 샤워기는 상상의 흑막 위로 일련의 영상을 들이부었다. 처음은 ‘링’(1998년) ‘주온’(2002년) 같은 일본 공포 영화. 흠뻑 젖은 물막이 커튼은 해조류처럼 발목에 감겨왔다. 다음은 ‘캐리’(1978년). 머리 위로 쏟아지는 게 진홍색 혈액이라면…. 마지막은 ‘사이코’(1960년)였다. 커튼 뒤에 날카로운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까. 소름이 돋았다. 비눗기는 웬일인지 아무리 닦아내도 닦이지 않았다.
3분쯤 흘렀을까. 공포는 잦아들고 괴이한 평화가 왔다. 시각 대신 예민해진 후각은 샤워 젤의 베리 향을 깊이 빨아들였다. 다시 콧노래가 흘렀다. 이제 몸에 감긴 액체는 양수(羊水)로 느껴졌다. 태어나기 전의 어둠과 습기가 이랬을까. 알 수 없는 행복감이 욕조 밖으로 흘러넘쳤다. 샤워 커튼을 열어젖혔다.
젖은 머리칼이 곤두섰다. ‘보이지 않는 세면대 위 거울은 지금 어떤 상을 비추고 있나’라는 생각에 다급해졌다. 물기 흐르는 나신으로 욕실 문을 열어젖혔다. 세월이 지나가듯 동작은 느리게 흘렀다. 옷걸이를 향해 필사적으로 손을 뻗쳐 재킷에 든 방 키를 찾아냈다. 키를 키홀더로 가져갔다. ‘됐다.’ 어둠이여, 나의 비수를 받아라. ‘철컥.’
승리의 맛은 기대와 달리 씁쓸했다. 어둠이 걷히자 꿈을 깬 아침처럼 형용 못할 박탈감이 찾아왔다. 10분 동안의 ‘상상극장’은 끝이 났다. 음악을 틀었다.
진공 같은 침묵은 소용돌이치며 한 점으로 수렴해 사라져갔다. 영국 록 밴드 핑크플로이드의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 앨범(사진)이 떠올랐다. 내 뇌를 억죈 건 암흑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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