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 ‘적도의 남자’ 이준혁 “이장일, 나도 네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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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8일 07시 30분


‘적도의 남자’ 이준혁 “이장일, 나도 네가 싫다”

"'적도의 남자', 처음에는 못 하겠다고 했었죠. 너무 힘든 역할인 데다 장일이라는 캐릭터가 엄청 싫었거든요."

아버지의 죄를 덮고, 자신의 성공을 위해 유일한 친구(엄태웅 분)의 뒤통수를 쳤다. 그리고 20년 동안 ‘정의’로 포장한 스타검사로 살았다. 결국 살아 돌아온 친구의 복수에 의해 아버지를 잃었고, 자신 또한 벼랑 끝으로 몸을 던졌다. 5월 24일 종영한 KBS 2TV ‘적도의 남자’속 ‘이장일’의 모습이다.

“두 번은 못할 작품이죠.”

이준혁에게 ‘적도의 남자’에 관한 얘기를 꺼내자 가장 먼저 돌아온 대답이었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마주 앉은 얼굴에도 피곤함이 짙게 묻어났다. 드라마의 여운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듯했다. 게다가 쉴 틈이 없었다. 밀려든 인터뷰 요청으로 드라마 종영 후에도 바쁜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고왔던 흰 피부가 까칠하게 일어났다.

하지만 연이은 인터뷰 스케줄이 싫지 않은 눈치다. 2007년 '조강지처 클럽'부터 '수상한 삼형제', '나는 전설이다', '시티헌터' 등 쉬지 않고 달려왔지만, 이토록 큰 반응을 얻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쁜 놈이었는데도 이렇게 연기 평이 좋은 적은 처음이에요. 그동안 브라운관 속 제 모습을 보는 게 싫어 모니터링을 안 했는데 이번 드라마에서는 객관화된 시선으로 장일이를 보려고 방송과 기사를 챙겨봤어요.“

이준혁은 예상하지 못했던 호평에 얼떨떨했다. 힘든 역할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관심에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이준혁은 어렵게 얻은 인기를 맛보기도 전에 입영열차에 올라야 한다.

밀려드는 차기작들의 출연 요청을 뿌리쳤다. 아쉽지만 한 번은 겪어야 할 상황이기 때문에 담담했다. 오히려 이준혁은 ‘적도의 남자’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입대할 수 있는 것에 감사했다. 팬들에게 사랑 받는 법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는 것은 이준혁에게 더 없이 좋은 경험이기 때문이다.

이장일에서 이준혁으로 돌아온 그와 좀 더 많은 대화를 나눴다. 차갑고 예민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털털하고 대범한 남자임을 머지않아 느낄 수 있었다.

<다음은 이준혁과의 일문일답>

▶ "나쁜 놈 이장일, 나조차 싫었다"

- '수상한 삼형제', '시티헌터', '적도의 남자' 등 '사'자 직업을 맡았을 때 반응이 좋은 것 같아요.
"앗! 그런가? 다음엔 의사 역할을 맡을게요. 의학 작품 해보고 싶거든요. 검사, 형사를 맡아도 제대로 된 직업 연기는 해본 적이 없어요. 이번에도 검사 역할인데 법정신이 한 번도 안 나왔잖아요. "

- 입대 전, 마지막 작품으로 '적도의 남자'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사실 그냥 입대하려고 했었어요. '적도의 남자' 시놉을 처음 봤을 때는 못하겠다고 했어요. (웃으며) 군대 가기 전에 너무 고생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리고 장일이라는 캐릭터가 엄청 싫었어요. 나쁜 짓임을 알고도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모습이 싫었죠. 그런데 대본에서 마음에 드는 두 장면이 딱 있더라고요. 그때 결정했죠."

- 말씀하신 두 장면은?
"선우(엄태웅 분)에게 '내가 너 공부 가르쳐 주고 답안지 보여 줄 테니 날 보호해줘'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장면과 수미(임정은 분)가 부경그룹 딸이 아님을 알고 감정이 달라진 장면. 이 두 장면입니다. 냉정한 면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살려고 치열하게 노력하는 장일이가 매력 있었어요. 저는 장일이가 동물 같았어요. 위협을 가하거나 죽음 앞에서 살려고 하는 생존본능이 공감됐죠. 누구나 가진 욕망 아닐까요?"

- 등장인물 중 가장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지은 인물은 누굴까요?
"드라마 후반에는 모두 죄질이 커지죠. 각각 특정 인물이라기보다는 마치 한 인물 같아요.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을 나눠서 보여주는 거죠. 사랑을 얻기 위한 집착, 성공에 대한 욕망, 복수 등 모두 한 사람에게 나올 수 있잖아요. 그놈이 그놈! 그래도 선우가 제일 착하죠? (웃음)"


▶ "엄태웅과 10살 차, 문제없어"

- 엄태웅 씨와 극 중에서는 친구지만, 실제 10살 차이더라고요. 나이가 많은 선배 배우와 연기하는 것에 부담은 없었나요?

"연기생활을 해오면서 항상 느껴왔던 거라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요, 오히려 어린 친구들하고 촬영하면 더 이상해요. 태웅이 형과 나이를 맞추기보다는 오히려 나이가 애매하길 원했어요. 장일이는 지원(이보영 분)을 사랑할 때 마치 어린애 같아요. 고등학생의 사랑법에 멈춰있는 거죠. 그래서 뱀파이어 같기를 원했어요. 귀신같은 느낌. 판타지를 주고 싶었죠."

- 엄태웅 씨가 일명 '동공 연기'로 화제를 모았다면, 장일은 떨리는 손과 눈동자 등 섬세한 표현이 돋보이는 '멘붕 연기'가 압권이었어요.
"영화 '에비에이터', '리플리', '아메리칸 싸이코' 같은 참고 자료가 많았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극 중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받으려고 했어요. 예민한 여자캐릭터를 연기하는 느낌이었죠."

- '적도의 남자'는 이준혁에게 어떤 작품인가요?
"장일이는 소비형 캐릭터에요. 배우 인생에 두 번 하기는 힘들 거예요. 하정우 선배가 영화 '추격자' 같은 캐릭터를 또 하면 이상하잖아요. 물론 이만큼 예민한 캐릭터는 많겠지만 친구의 뒤통수를 때리는 놈은 참…."
▶ "예쁜 역할은 사양합니다"

- 쉬지 않고 달려왔어요. 휴식이 필요할 것 같네요. 입대 전 계획은 뭔가요?

"군대 가서 쉬어야죠. 하하. 요즘 아무 생각 없이 이상한 짓(?)들을 하고 있어요. 쇼핑도 했고요. 어제는 고가의 카메라를 사서 공부하고 있어요."

-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드라마 장르는요?
"저 같은 노안은 깊이감이 있다고 생각해요. 꽃미남 친구들이 예쁘고 어린 역을 잘 해주니까 저는 제 장르를 구축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분명 휴 그랜트도 훌륭하지만 크리스찬 베일도 훌륭하죠. 앞으로 인간에 대해 다루는 드라마를 하고 싶어요."

- 장일이를 떠나
보내며
"왜 그랬을까? 다음 생애에서는 성공이 아닌 제대로 된 행복을 아는 아이가 됐으면 좋겠어. 물론 노력으로 찾은 행복이었으면 한다."

동아닷컴 한민경 기자 mkhan@donga.com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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