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괴행성 외계인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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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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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25일 맑음. 지구 종말과 멜랑콜리아.
트랙 #15 Klaatu ‘Little Neutrino’(1976년)

정신을 차려보니 학교 앞은 아비규환이었다. 혼비백산한 사람들이 여기저기로 내닫고 있었다. 나도 뭔가에 이끌리듯 학교 앞 실개천을 따라 뛰기 시작했다. 실개천은 전에 없던 커다란 교회를 향해 뻗어 이상한 원근법으로 소실되고 있었다. 교회 종탑에서 믿을 수 없이 커다란 종소리가 울려왔다. 핑크 플로이드의 ‘타임’에 나오는 소리 같았다. 사람들의 뜀박질은 더 빠르고 정신없어졌다. ‘지구가 오늘 끝장나는데 살아남으려면 초등학교 운동장에 대기 중인 우주선에 올라타는 수밖에 없다’는 사람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다급했다. 방향을 돌려 학교 정문을 향해 뛰었다. 아니, 잠깐만.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장소가 왜 하필 우리 학교로….

꿈이었다. 열 살 무렵의 그 꿈은 내 생애 가장 생생한 꿈이다. 그 후로 10년간이나 ‘이건 분명 예지몽이며, 세상은 반드시 그렇게 끝날 것’이라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었을 정도로.

지난 주말, 라르스 폰 트리에르 감독의 영화 ‘멜랑콜리아’를 봤다. 멜랑콜리아(우울증)라는 괴행성이 지구의 공전 궤도로 근접해 들어오면서 등장인물들이 느끼는 극도의 불안과 정신이상을 다룬 괴이한 영화였다. 밤하늘에 노란 달과 푸른 멜랑콜리아가 함께 떠있는 장면은 몽환적이어서 열 살 때 꿈을 떠올리게 했다.

캐나다 록밴드 ‘클라투’는 멜랑콜리아처럼 등장했다. 1976년 데뷔 앨범 ‘3:47 EST’를 내놨을 당시, 유려한 멜로디와 특이한 스튜디오 효과, 멤버들의 신비주의로 ‘클라투는 비밀리에 재결합한 비틀스’라는 루머까지 돌았다. 팀명은 SF영화 ‘지구 최후의 날’(1951년)의 외계인 이름에서 가져왔고, 앨범명은 그 외계인이 미국 워싱턴에 도착한 시간에서 따왔다. 음반은 ‘행성 간 비행체 탑승자는 응답하라’는 노래로 시작해 ‘리틀 뉴트리노(작은 중성미립자)’라는 곡으로 끝났다. 음악 속에서 미지의 행성인들은 서로 반목하다 결국 솔루스라는 항성의 충돌로 멸망을 맞았다.

마야력(曆)의 끝장이라는 2012년이 절반쯤 지나갔다. 우리 태양은 별문제 없겠지? 다가오는 혜성은 없고? 후유. 여섯 달간 더 열심히 살자꾸나.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임희윤 기자의 싱글 노트#음악#대중음악#멜랑콜리아#클라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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