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이야기’가 무려 네 편이다. 심지어 그 네 편을 이어주는 또 하나의 ‘무서운 이야기’도 있다.
늦은 밤, 어린 남동생과 집에 남은 소녀. 낯선 남자의 침입을 받는다. 남매의 비명이 잠든 아파트를 채운다.(‘해와 달’)
모든 걸 가진 언니와 탐욕스러운 이복동생. 계모와 의뭉스러운 회장은 돈을 매개로 이들 자매를 이용해 각자의 욕망을 채우려 한다.(‘콩쥐 팥쥐’)
여성을 잔인하게 살해한 살인마가 붙잡힌다. 그를 호송하기 위해 하늘에 뜬 비행기 안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살인 게임.(‘공포비행기’)
좀비로 가득 찬 세상. 좁은 이차선 도로를 달리는 앰뷸런스에 모녀가 탄다. 이들이 좀비에 감염됐다고 의심하는 의사, 딸을 지키려는 엄마, 정의를 선택하자는 간호사의 반전을 거듭하는 대결.(‘앰뷸런스’)
그리고….
이들 네 편을 한 데 엮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연쇄살인마에게 붙잡힌 소녀는 “알고 있는 가장 무서운 이야기를 해주면 풀어주겠다”는 제안에, 무서운 이야기 네 편을 차례로 꺼낸다.
25일 개봉하는 공포영화 ‘무서운 이야기’다.
●STRENGTH(강점)… 단점 찾기 어려운 ‘웰메이드 호러’ 탄생
오랜만에 만나는 잘 만든 공포영화다.
옴니버스로 구성된 네 편은 탄탄한 이야기에 상당히 짜릿한 긴장까지 내세운다. 전래동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해와 달’(감독 정범식), ‘콩쥐 팥쥐’(감독 홍지영)는 익숙한 구전동화를 공포로 재구성해 색다른 맛을 안긴다.
심리를 자극하는 공포부터 좀비, 연쇄살인에 이르기까지 공포에 관한 다양한 장르를 한 번에 감상하는 ‘종합선물세트’ 역할로도 충실하다. 즉, 이들 네 편 가운데 ‘선호하는 장르’가 한 두 개쯤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 그러므로 후보가 많아 실망할 가능성은 낮다.
홀로 남은 남매가 느끼는 극한의 공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현실감을 더한 ‘해와 달’, 국내서는 흔하지 않은 좀비 영화를 짧은 상영시간 안에 탄탄하게 구현한 ‘앰뷸런스’(감독 김곡·김선)가 특히 돋보인다.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공포로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연출법도 탁월하다. ‘앰뷸런스’, ‘공포비행기’(감독 임대웅)가 이 길을 택했다. 일
단 이야기에 빠져들면 수백명이 함께 앉아 있는 극장이 아닌 밀폐된 공간에 홀로 있는 착각마저 든다. 공포영화 팬들에겐 반가운 일. 공포와 친숙하지 않다면 상당히 곤혹스럽지만….
● WEAKNESS(약점)…‘부실한 다리’(?)
네 편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연쇄살인범에게 납치당한 여고생의 사연(감독 민규동). 여고생은 오직 살아남기 위해 무서운 이야기를 하나씩 꺼낸다. 영화와 영화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 하지만 제 임무를 충분히 해내지 못했다. 한 소녀의 입을 통해 나오는 네 개의 이야기이지만 이를 관통하는 공통분모를 찾기 어렵다.
다양한 공포 장르를 접할 수 있지만 반대로 여러 편의 이야기가 한 데 모여 있어 ‘편차’가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 OPPORTUNITY(기회)…인정받은 공포전문가 집결
공포영화는 탄탄한 마니아 관객을 보유한 장르로 꼽힌다. 공포 마니아들에게 ‘무서운 이야기’는 그래서 더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영화. 앞서 공포영화로 실력을 검증받은 전문가들이 집결한 이유도 호기심 자극에 힘을 더한다.
‘기담’의 정범식, ‘여고괴담2’의 민규동, ‘화이트:저주의 멜로디’의 김곡·김선, ‘스승의 은혜’ 임대웅 감독까지. 공포 전문가들이 한 편의 영화로 모여 각자의 기량을 뽐내고 이를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는, 흔하지 않은 기회다.
그동안 공포영화는 신인 감독들의 등용문으로 자주 이용됐고 여전히 그 방식이 유효한 상황에서 ‘무서운 이야기’는 노련한 경험자들이 여유롭게 펼친 새로운 ‘판’이다.
● THREAT(위협)…18세 관람가
여름 시장을 노린 공포영화는 중고교생 관객까지 폭넓게 겨냥해야 하지만 아쉽게도 ‘무서운 이야기’는 출발부터 다르다. 18세 관람가 등급.
당초 15세 관람가로 심의를 신청했지만 반려되자 제작진은 ‘강렬하게 보여주겠다’는 의지로 ‘18금’ 기준의 영화를 다시 편집했다. 이를 통해 공포 효과는 한층 강화됐지만 더 넓은 관객층 공략은 놓친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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