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마음이 너무 불편한 시네마… 다 보고나면 멘붕의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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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14일 03시 00분


보고 나면 찝찝함에 한동안 잠을 이룰 수 없는 확실한 ‘각성용’ 영화 ‘그을린 사랑’.
보고 나면 찝찝함에 한동안 잠을 이룰 수 없는 확실한 ‘각성용’ 영화 ‘그을린 사랑’.
‘잠을 확 쫓아주는 영화’가 필요할 때가 있다. 이번 런던 올림픽 기간처럼 빅 매치를 생중계로 보기 위해 오전 3∼4시까지 졸음을 쫓는 데는 영화가 최고이기 때문이다. 반면 ‘잠에 확 빠지게 만드는 영화’도 필요하다. 올림픽 경기를 보느라 어느새 낮과 밤이 뒤바뀌어 버린 몹쓸 라이프사이클을 바로잡기 위해선 보자마자 꿈나라로 가게 만드는 영화가 큰 ‘약효’를 발휘하는 것이다. ‘각성용’ 영화와 ‘수면용’ 영화를 소개한다.

▽잠 깨우는 영화=‘호스텔’ ‘악마를 보았다’와 같은 ‘피 칠갑’ 영화들은 처음에는 눈을 휘둥그렇게 만들지만 비슷한 살인 패턴이 반복되어 전시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잠에 빠질 수 있다. 잠깨는 데는 역시 ‘더럽고 지저분한’ 영화가 최고. 지난달 29일 막을 내린 제16회 부천 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된 ‘지네인간 2’를 추천한다. ‘인간지네’를 만들고 싶어 하는 주차관리원이 10명을 납치한 뒤 항문과 입을 서로 이어 꿰매어 거대한 인간지네를 만든다는 구토 쏠리는 상상력을 담은 B급 영화다.

너무 저질스러운가. 작품성이 뛰어난 동시에 사람 마음을 완전 불편하게 만드는 영화도 있다. 겨우 초등학생이나 될까 말까 한 아이들이 서로 머리에 총질을 해대며 현실 속 끔찍한 지옥도를 그려내는, 브라질 출신 페르난두 메이렐리스 감독의 영화 ‘시티 오브 갓’, 전쟁이 만들어낸 기구한 근친상간의 운명을 다룬 캐나다 영화 ‘그을린 사랑’, 인류 멸망 이후 한 가닥 희망을 찾아 길을 떠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절망적인 결말을 보여주는 ‘더 로드’를 추천한다. 이들 영화를 보고 나면 협심증이 일어난 듯 가슴이 답답하고 며칠간 ‘멘붕’ 상태가 지속되면서 일이 손에 안 잡힌다.

구하기 어렵긴 하지만, 북한에서 만들어진 동물 다큐멘터리로 국내에 비디오테이프로 출시된 바 있는 ‘동물의 번식’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되는 각성용 영화. 북한 산하에 서식하거나 동물원에 있는 각종 짐승의 교미 장면을 모아 전시하는 이 영화를 보다 보면 “보십시오. 수놈들의 기분이 절정에 오를 때 떨기 속도는 참으로 볼만합니다. 떨기 속도에서는 개가 제일이라고 하지만 토끼에는 비할 바가 못 됩니다. 재봉기(재봉틀) 바늘처럼 고속으로 떨다가 명중하면 눈을 딱 감고 뒤로 발딱 자빠집니다” 하는 북한 성우의 내레이션에 깃든 풍자정신에 배꼽을 잡으면서 한동안 잠을 이루기 힘들다.

▽잠재우는 영화=국산 영화를 먼저 꼽자면, 일단 제목부터 졸린 ‘서서 자는 나무’와 더불어 ‘수면영화의 전설’로 불리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추천한다.

서양영화를 꼽기 전에 일단 거스 밴 샌트와 미셸 공드리라는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 이들 감독의 영화들만 골라 보면 십중팔구 상영 시작 10분 안에 거의 ‘기절’에 가까운 깊은 잠에 빠져들 수 있다. 특히 거스 밴 샌트의 ‘라스트 데이즈’ ‘파라노이드 파크’ ‘엘리펀트’는 영화 평론가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명작인 동시에 놀랍도록 졸린다. 상상과 현실을 뒤섞은 몽롱한 장면만 105분간 계속되는 미셸 공드리의 ‘수면의 과학’을 보면서 잠에 빠지지 않기란 불면증 환자라도 참으로 힘들다.

영국 비밀첩보원들의 세계를 기존 첩보영화들과 달리 액션도 거의 없이 무겁고 느리고 평평하고 모호하게 그려내는 토마스 알프레드손 감독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제목을 읽는 순간부터 무료함이 밀물처럼 밀려들어 온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영화#영화 리뷰#그을린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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