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규가 만난 사람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24일 16시 31분


"누구, 지지하세요?"

그가 방송에서 하듯 기자도 직설적으로 물어봤다. 22일 서울 역삼동의 레스토랑에서 만난 그는 대답 대신 "배가 고프다"며 샌드위치부터 주문했다. 피곤에 찌든 얼굴이 31년 간 예능계 정상을 지키며 '꼬꼬면'으로 대박까지 터트린 주인공으로 보이진 않았다.

코미디언 이경규(52).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의 공동 진행자로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문재인 민주통합당 의원 등 유력 대권주자를 모두 인터뷰한 유일한 방송인이다. 그가 샌드위치를 천천히 씹으며 운을 뗐다.

"박 대표가 물어볼 때도 이야기 안 했어요. 전 항상 '집권당(지지)'이에요. 하하."

●그가 만난 대권주자들

강호동 유재석에게 밀려 한때 '한물 갔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던 그는 힐링캠프를 진행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힐링캠프가 치료한 사람은 초대손님이 아닌 이경규'란 말이 나올 정도다. 그에게 "뒷이야기 좀 해 달라"고 졸랐다.

"박 대표는 카리스마 그 자체던데요. 그 분 만의 매력이 있어요. 정말 나라를 위하고 있다는 느낌이 컸습니다." 카리스마에 눌려 인터뷰하기 어렵지 않았냐고 묻자 그는 "그래도 거리낌 없이 물어보고 싶은 거 다 물어봤다"며 "왜 정권말기에는 측근비리가 나오냐고 묻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 이렇게 말해도 되나. 대통령 후보들에 대한 발언 자체가 부담스러운데"라며 잠시 망설이면서도 말을 이어갔다.

"안 위장은 딱 드는 생각이 '참 똑똑하구나', '책을 정말 많이 읽었구나'라는 거였어요. 이룬 게 많고, 유력 대통령 후보인데도 무언가 여유가 있어 보였어요." 그는 "출마 여부를 계속 물어봐도 확답을 안 하더라. 실제로 결정을 못 해서 이야기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방송 뒤 안 원장에게서 '고맙다'는 문자메시지가 왔다고 했다.

문 의원에 대해서는 "벽돌 격파를 제대로 했다"며 웃었다. "그분 참 솔직하고, 털털합디다. (대권주자 중) 가장 소박하고 서민적인 것 같았어요." 문 의원은 방송 당시 MC인 이경규 못지않은 유머감각을 선보이고 일반인이 접하기 어려운 청와대 뒷이야기 등을 허심탄회하게 밝혀 화제가 됐다.

"보통 오후 3시에 만나 2시간 인터뷰해요. 5시부터 저녁 먹을 시간 줘요. 7시부터 2시간 녹화 더 합니다. 녹화 시간 외에는 출연자들과 거리를 뒀어요. 왜? 계속 얼굴 보고 이런 저런 이야기하면 정작 인터뷰 할 때 김이 빠지거든요. 게스트 챙기는 건 김제동이 했습니다."

이경규는 "나는 우파도, 좌파도 아니다. 연예인이 정치에 휩쓸리면 훅 갈 수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출연하고 싶다'며 몇 다리 건너서 물어보는 정치인들 때문에 한동안 전화도 안 받았어요. 정치하지 않겠느냐는 제안도 받았죠. 근데 할 능력 없어요. 남 웃기는 일 만 계속 합니다."

●그를 치료한 사람들

'힐링 캠프'에서 거물급 출연자들은 민감한 질문에도 대체로 순순히 대답한다고 그는 말했다.
"야외에서 모닥불 피우고, 온화한 느낌이 들게 분위기를 세팅합니다. 소주 한잔 하면서 물어보는 것과 비슷해요. 개인적으로는 '춤추거나 개인기하는 것도 없이 가자'고 자주 요구했어요. 게스트들이 웃겨야 한다는 부담이 생기면 자기 이야기를 못 합니다. 자기 얘기 술술 풀어내도록 편하게 해줬어요."

이경규는 "가장 인상적인 출연자는 대권주자들이 아니라 골프선수 최경주(42·SK텔레콤)와 영화배우 최민식(50)"이라고 했다.

"최 선수는 집념 그 자체에요. 최민식은 연기에 대한 열정, 혼이 대단했어요. 법륜스님은 연륜과 내공으로 어떤 질문을 해도 거침이 없더군요. 추신수 선수는 지난해 음주사건 때문인지 녹화 내내 미안함을 표시했어요. 이효리는 핑클 때부터 봐왔는데 이제는 정말 성숙해졌더라고요."

그는 "박칼린과 김태원은 워낙 가까운 사이라 별로 이야기 할 게 없다"고 웃었다.
"인터뷰를 통해 배우는 게 많아요. 기성용 선수는 '런던 올림픽 8강 영국전 승부차기를 할 때 떨리기보다 영웅이 되고 싶었다'고 말하더라고요. 이전 세대 선수들은 '팀원들 덕분에 승리했다'며 성공을 남에게 돌렸는데…. 건방져 보이는 그의 자신감을 본받고 싶었어요. 근데 차인표는 바른생활과 선량함의 끝이라, 어휴 저는 그렇게 못 삽니다. 싸이는 딱 내 과(科). 말이 필요 없어요."

힐링캠프에 초대하고 싶은 인물로 그는 뜻밖에도 오래 전 고인이 된 윤동주 시인을 꼽았다.
"윤동주 시와 작품을 많이 읽었습니다. 고인의 생애도 궁금하고, 요즘 사람들과 어떻게 다르게 생각하는지도 비교하고 싶어요. 50살 넘어 책을 많이 읽었어요. 이 나이에 또 슬럼프가 오면 그냥 퇴출로 봅니다. 매 순간이 절박하니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고민하는데 독서가 도움이 돼요. 인터넷 악플도 챙겨 봅니다. 악플을 보다보면 왜 나를 욕하는지, 제 단점이 보여요. 아! 살아있는 사람 중에는? (12월에 나올) 대통령 당선자를 모시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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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종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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