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문에 출품된 ‘강선장’의 원호연 감독. 부산|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남과 다른 걸 찾는 일은 창작자의 운명이다.
축제가 한창인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인 와이드앵글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문 초청작 ‘강선장’(제작 민치앤필름)은 그동안 봐온 다큐멘터리와 표현 방식이 달라 낯설지만 그래서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단 한 줄. ‘하반신 장애를 지닌 선장과 그 아들의 삶’이다.
하지만 작품이 담은 인간애를 설명하려면 꽤 긴 시간이 필요하다. 연출자 원호연(37) 감독이 ‘강선장’에만 쏟아 부은 시간은 5년. 시간은 기록을 남겼고 그 기록이 모여 울림 강한 영화로 탄생했다.
‘처음’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처음’ 초청받은 원호연 감독과 이 작품을 함께 만든 김민철(35) 프로듀서를 8일 부산 광안리 해변에서 만났다.
원호연 감독은 3년 전부터 매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 상영 다큐멘터리를 모조리 챙겨봤다고 했다.
올 때마다 바다를 향해 “내년엔 꼭 내 작품으로 와야지” 결심하기도 여러 번. “결심만 하다 결국엔 왔다”며 웃던 그는 “꿈 가운데 하나가 실현됐다”고 했다.
○‘인간극장’ 연출하며 만난 ‘강선장’…잊지 못해 영화로
‘강선장’은 출발부터 발상의 전환이었다. 원 감독과 김 PD는 찍는 내내 “판타지 영화로 여겼다”고 돌이켰다. 리얼리티가 중요하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시작한 새로운 방식의 ‘다큐 영화’ 도전이다.
원호연 감독과 ‘강선장’의 인연은 2008년부터다. 당시 KBS 2TV ‘인간극장’ PD로 일하던 그는 ‘강선장’ 이야기를 5부작으로 제작해 방송했다.
원 감독은 이듬해 ‘인간극장’을 떠났다. “다큐멘터리를 제대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도 컸다.
“‘인간극장’ 편당 제작 기간은 3개월 정도다. 어느 인물을 바라보기에 너무 짧다는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아쉬움이 남은 인물이 강선장님이었다.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 ‘금방 끝나겠지’ 싶어 강선장님이 사는 목포로 갔는데…. 하다보니 3년이나 걸렸다.”(웃음)
“만만치 않은 작업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즈음 원 감독은 김민철 PD를 찾아갔다.
한국 작품 최초로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아이언 크로우즈’(중편부문·2009년)와 ‘달팽이의 별’(장편부문·2011년)이 모두 김 PD의 손을 거친 때였다.
둘이 만난 뒤부터 작업은 가속이 붙었다.
“헌신적인 아내? 장애를 극복하는 이야기는 뻔하잖아. 강선장과 아들은 갈등을 겪고 있었고 결국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로 가야 했다. 아버지의 사고로 야구선수의 꿈을 버려야 했던 아들은 카메라 앞에 서지 않겠다고 고집했다. 아들이 마음을 열고 카메라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꼬박 4년이 걸렸다.”
‘강선장’에는 내레이션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야기 진행도 시간 순서를 따르지 않는다.
특별한 사건도 없다. 인물들이 갈등을 겪다가 극적으로 화해하는 ‘휴먼 공식’도 따르지 않는다. 두 다리를 잃은 강선장이 거친 바다로 나가는 모습에서조차 담담한 시선을 지킨다.
익숙한 스타일을 버리기로 결심한 원호연 감독이 할 수 있던 건 ‘기다리는 일’ 밖에 없었다. 목포 앞 바다로 출항하는 강선장의 작은 배를 타고 길게는 열흘씩 동행했다. 아예 목포에 월세 15만원 샛방까지 얻고 1년간 살았다.
“다큐는 관계의 예술이다. 가족 위주의 다큐가 많은 이유도 가장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관계이기 때문 아닐까. ‘강선장’은 인물을 일부러 멀리서 찍는 걸 고집했다. 주인공들이 전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이유? 처음 만나고부터 5년 동안 쌓아온 관계의 힘. 시간을 이길 방법은 없다. 그건 설득의 차원이 아니니까.”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문에 출품된 '강선장'의 원호연 감독, 밀레나 페트로비치 편집감독, 김민철 프로듀서(왼쪽부터). 부산|이해리 기자 ○배급사 잡지 못하면 목포에서 시작, ‘커뮤니티 상영’ 고려
‘강선장’은 꿈에 관한 이야기다. 도입에 장자의 꿈 이야기인 ‘호접지몽’이 등장한다. 예기치 않은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강선장의 삶 역시 꿈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원 감독은 “‘워낭소리’ 이후 극장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높아졌고 ‘강선장’도 극장에 걸어야 하는데 늘 하던 방식이라면 경쟁력이 없다고 믿었다”고 했다.
옆에서 듣던 김민철 PD는 “주인공의 장애는 이 영화에서 부각되지 않는다”며 “흘러가는 대로 찍으면서 결말을 열어 놓았다. 촬영을 마친 뒤 감독이 해석한대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이었다”고 설명했다.
후반 작업은 세르비아에서 진행했다. 편집감독으로 참여한 밀레나 페트로비치는 ‘블루 버드’라는 단편영화로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에 진출했던 경력자. 부산에도 함께 왔다.
‘강선장’이 독특한 다큐 영화로 완성될 수 있던 데는 김민철 PD의 영향이 상당하다.
네덜란드 유학 시절 커뮤니케이션 매니지먼트를 전공하며 시작한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일이 벌써 10년째. 프로듀서로 참여한 두 편이 ‘다큐멘터리의 칸 영화제’로 불리는 암스테르담 영화제에서 연속해 대상을 받으면서 실력도 인정받았다.
그는 좀 더 적극적인 다큐 영화 제작에 도전할 계획. 현재 벨기에인 감독과 손잡고 한국 프로 게이머들의 이야기를 준비 중이다. 원 감독과도 한 편 더 하기로 약속했다. “홍콩 느와르를 표방한 퀵 서비스 이야기”라고 김 PD는 설명했다. 20대 중후반의 퀵서비스맨이 주인공이다.
김 PD는 “‘강선장’을 부산국제영화제에 가장 먼저 출품한 건 국내 관객에게 먼저 보여주고 싶다는 뜻”이라고 했다. “만약 모든 배급사가 이 작품을 거절한다면 목포에서 시작해 광주로, 전주로 커뮤니티 상영을 이어갈 계획”이라고도 했다.
“진심은 통한다”고 이들은 확신하고 있다.
해운대(부산)|스포츠동아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트위터@madeinh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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