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올해 쇼킹했던 8개 포스터… 멈칫하는 순간 바로 낚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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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11일 03시 00분


포스터는 영화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얼굴’인 동시에 영화의 내용이나 마케팅적 지향점을 암시하는 창(窓) 같은 역할을 한다. 때론 해당 영화의 예술적 감각과 수준을 가늠하게 만드는 잣대이기도 하다. 올해 국내 개봉한 영화의 메인포스터 중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매우 ‘놀라운’ 것들을 손꼽아본다.

①간기남=도저히 눈을 딴 데 둘 수 없게 만드는, 놀라운 흡인력을 가진 포스터. 특히 고양이처럼 발가락으로 말을 거는 박시연의 팜파탈적 매력에 미혹되지 아니할 수 없다. 연기도 이만큼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간통을 기다리는 남자’라는 완전 저질스러운 제목과 달리 흑백 모노톤과 기하학적 문양이 어우러진 포스터는 뭔가 깊고 프로이트적인 심리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만 같(지만 실제로 보면 영 유치한 수준이)다.

②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어떤 표정도 짓지 않으면서 모든 표정을 짓는 이 순간!

③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딱 한 컷의 사진으로 영화의 모든 것을 담아내는 화룡점정! 단연 올해 최고의 포스터라 할 만하다. 한껏 뻐기는 캐릭터들은 백인백색 모두 제 인생의 주인공인 듯하지만, 알고 보면 시대의 무겁고 부조리한 공기에 갇힌 똑같이 하릴없는 희생양들임을 암시한다.

④네버엔딩 스토리=병원에서 동시에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남녀의 사랑을 담은 로맨틱 코미디. 뚜껑이 열린 관 위에서 포개진 남녀의 모습과 관 밖으로 무심코 삐져나온 정려원의 종아리가 묘하게 마음을 흥분시킨다.

⑤송곳니=뭔가 노골적이고 처절한 이야기를 매우 차갑게 말하는 듯한, 미학적 밀도가 높은 포스터. 섹스는 있되 욕망은 없고, 무지(無知)는 있되 순수는 없다!

⑥프로메테우스=아, 이렇게 깊고 명상적이며 수수께끼를 가득 담은 포스터가 있을까. 하지만 위대한 포스터는 ‘양날의 검’. 관객의 기대치를 한껏 높이는 탓에 막상 별 깊이도 없는 이 영화 내용을 확인하고 나면 실망감이 500배로 커지는 부작용을 어찌하리.

⑦피에타=김기덕 감독의 회화 재능이 깃든 이 영화의 모든 것. 순간에 영원을 담는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표현이 아닐까. 고통은 곧 신이 내린 영원의 빛이니….

⑧대학살의 신=올해 관객을 가장 제대로 ‘낚은’ 포스터. 영화광이라면 조디 포스터와 케이트 윈즐릿의 오묘한 표정을 보고 어찌 이 영화를 선택하지 않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 80분의 러닝타임 동안 오로지 거실 한 곳에서 배우 네 명이 무차별 수다만 떠는, 놀랍도록 지루한(좋게 말하면 ‘연극적’이고 ‘실험적’인) 영화임을 이 포스터로는 도저히 추정할 수가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포스터를 자세히 들여다보라. ‘대학살의 신’이라는 스펙터클한 제목 바로 위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입만 살아있는’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지 않은가. 큰 제목과 포스터만 보고 이 영화를 보았다가 돈 아까워 속이 뒤집히게 될 관객을 위한 살뜰한 배려? 이 영화, 정말 입만 살아있네.ㅠㅠ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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