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간 ‘강림’ 연구했는데 대중은 외면 나의 역량 부족…전우치로 배운 점 많아 도전 거리 없으면 내 배우인생도 멈출 것
기존과 다른걸 보여주자는 노력이 대중들에게 낯설게만 비춰질 때, 배우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종영한 KBS 2TV 퓨전 무협 사극 ‘전우치’에 출연한 배우 이희준(34)도 그랬다. 그는 ‘전우치’에서 율도국 도사였지만 심한 열등감과 경쟁심, 지배욕을 지닌 ‘강림’을 연기했다. 촬영 전 캐릭터를 준비하는 기간까지 합쳐 약 4개월 동안 치열하게 고민해 강림이라는 새로운 악인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이희준의 노력은 극 초반 대중들에게 ‘낯섦’으로 다가왔다. 데뷔 14년차인 그에게 연기력 논란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전작인 ‘넝쿨째 굴러온 당신’을 통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지 몇 달이 채 지나지도 않은 시점에서,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뻔한’ 연기는 본능적으로 싫어한다. 사극 속 인물을 연기하더라도 대하사극 톤을 쓰지 않고 새로운 느낌을 주고 싶었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천재용처럼 새로운 것을 ‘창작’해 내고 싶은 욕심이었는데. 마음이 조금 앞섰던 것 같다.”
‘다름’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원망 보다는 먼저 내 안에서 문제를 찾기로 했다. 캐릭터에 여러 가지의 욕심을 덧입혔다면, 모두 줄여 한 가지만이라도 가져가기로 나름의 합의점을 찾았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 맞춰졌던 논란들은 불식됐지만, 여전히 아쉬움은 남아 있다.
“결론적으로는 내 부족이었다. ‘사극에서도 저런 연기를 할 수 있네?’라는 평가를 듣고 싶었는데 결국은 실패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잘 해냈다는 것 자체가 뿌듯하다. ‘전우치’는 배우 이희준이 반드시 겪어야 했을 작품이고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무한한 캐릭터 변신에 굶주린 이희준의 고집에는 실제 그의 모습이 그대로 묻어난다. 평소 등산과 여행을 즐기는 이희준은 “과거에 이미 갔던 길을 다시 걷는 게 싫다. 어디쯤에 나무와 바위가 있다는 것을 알고 가는 그 길은 참 심심하다. 같은 길이다 싶은 생각이 들면 바로 발걸음을 다른 방향으로 옮긴다”고 했다.
“새로운 것을 즐기는 마음이 없다면 아마 나는 평생 형사, 깡패 역만 했을 것이다”며 웃는 그의 얼굴에서 그동안 겪었을 치열한 고민의 흔적들이 느껴졌다.
최근에는 취미삼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솜씨가 궁금하다는 말에 이희준은 선뜻 휴대전화에 저장된 그림 몇 점을 내보였다. 미대 출신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미술이 친숙한 그이지만 ‘전우치’ 촬영장을 스케치한 풍경화나 주변 사람들을 그린 인물화는 꽤 그럴듯해 보였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사물에 집중하는 시간만큼은 ‘명상’을 하는 것 같다. 어느 유명 화가가 ‘나의 유일한 미래계획은 안전하게만 간다는 생각이 들 때 멈추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는데, 나의 생각과 많이 닮아 있다. 나 역시 배우로서 계획이 ‘도전 거리가 없으면 걸음을 멈추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