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열린 아카데미상 시상식. 최다 후보에 올랐던 ‘링컨’은 남우주연상(대니얼 데이루이스)과 미술상 트로피를 쥐는 데 그쳤지만 이 영화를 연출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 의미심장한 미소 속으로 들어가 보자.
‘링컨’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우선 스필버그답지 않다. 스필버그가 잘하는 ‘크게 만들기’에서 한발 벗어나 있다. 제작비는 6500만 달러(약 700억 원). 전작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의 2억5000만 달러(2700억 원)에 비하면 껌값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비교해도 한참 작은 영화다.
전작들과 달리 블록버스터 액션물도 아니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인 링컨을 정치인으로서, 또 아버지로서 그려낸 드라마다. 극 중 링컨은 노예해방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야당 의원들을 매수하는 마키아벨리적인 인물이다. 전장에서 죽어가는 병사들의 희생에 가슴 아파하지만, 뒤로는 참전하겠다고 철없이 날뛰는 아들 때문에 속 태우는 보통 아버지이기도 하다. 박제된 역사적 인물에 피와 살을 붙였다.
관성을 벗어난 스필버그에게 관객은 환호했다. 전 세계 관객은 ‘링컨’에 2억 달러(약 2160억 원)가 넘는 돈을 쓰며 스필버그의 주머니를 채워줬다.
전작 ‘워 호스’와 ‘틴틴…’이 잇따라 흥행에 참패하자 “스필버그의 시대가 갔다”는 말이 나왔지만 ‘링컨’이 스필버그를 살렸다.
‘공화당은 보수, 민주당은 진보’라는 지금의 공식은 영화의 시대적 배경에는 맞지 않는다. 공화당은 흑인 해방에 앞장선 이상주의자들이고, 민주당은 노예제로 유지하는 미국 경제를 파탄에 빠뜨릴 수 없다고 맞서는 현실주의자들이다. 노예제 폐지에 한평생을 바친 공화당 급진파인 새디어스 스티븐스 의원(토미 리 존스)도 나온다.
공교롭게도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 ‘링컨’이 상을 받았다. 링컨은 신념에 찬 인물이지만, 때론 유머와 부드러운 미소로 위기를 돌파해 간다. 증류수 같은 이미지 때문에 주변에 사람이 없을 것 같은 박 대통령. 링컨의 ‘허허실실’을 참고하는 것도 국정에 도움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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